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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들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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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이름은빨강 Oct 13. 2020

놀이터에는 드라마가 있다

아이라는 가장 궁금한 이야기

매주 토, 일요일 오후 2시부터 저녁 7시 사이, 아이와 나는 놀이터에서 산다. 세련된 젊은 전업맘들이 많은 동네에서 이 시간 아이는 할머니 대신 엄마 손을 잡고 나오는 아이들을 보며 느꼈을 부러움을 채우고, 난 주중의 미안함을 만회한다. 킥보드나 자전거를 끌고 작은 축구공도 하나 챙기고 간식과 물을 싸서 동 사이 자리 잡은 놀이터 몇 군데를 종횡무진하다 보면 네다섯 시간은 순삭이다.


운 좋은 날은 유치원을 함께 다니는 친구나 동생, 누나와 형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혼자인 날도 많다. 더 어릴 때는 함께 뛰어놀아주어야 했기에 저질체력의 몸이 열 일했다. 이제는 몸을 움직일 일은 별로 없는 편이다. 갈수록 체력이 상승하는 자신과 반비례해 순발력이 떨어지는 엄마와 노는 것이 재미있을 리가 있나? 같이 놀 상대를 찾거나 혼자서 노는 경우가 많아진다. 그대로 하늘 속으로 사라질 것처럼 아찔하게 그네를 타거나 줄로 꽈배기를 만들어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팔과 다리가 닿는 한 최대한 높이 올라가는 걸로 시간을 보낸다.


일곱 살인 아이는 초등학교 3, 4학년 정도나 되어야 자유자재로 뛰고 매달릴 수 있는 높이까지 미끄럼틀 같은 놀이기구의 여기저기를 타고 올라가는데 심취해 있다. 형들이 하는 것을 유심히 봤다가 수차례 도전해 결국 성공한다. 오히려 초등학생 형들이 '재 뭐야?' 하며 돌아볼 정도다. 용기와 끈기를 지녔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아찔한 높이에서 매달리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콩닥거려 나도 모르게 벤치를 박차고 달려가 밑에서 도돌이표처럼

"다치지 않게 조심해."를 외치고 있다.


우아하게 놀이터 한구석에 앉아 줌파 하라리의 소설 같은 것을 읽고 싶은 나의 주말 오후 로망은 늘 좌절되는 대신 아이는 엄마가 잠시라도 한눈을 팔지 못하게 시선을 사로잡는데 항상 성공한다. 들고 간 책을 여유롭게 읽기란 그저 희망사항에 불과하지만 아주 가끔씩 드물게 허락된 기적의 순간을 바라며, 캔버스 천가방에 한 권을 넣어 주말 놀이 짐을 싼다. 언제라도 꺼내 읽을 수 있도록. 다른 짐에 부딪혀 책 모서리의 예리한 각도가 무뎌지고 구겨질 걸 알면서도. 읽지 못한 뒷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을 가슴에 품은 채 아이의 쉴 새 없는 움직임을 감상하고는 한다.


이 시간은 분명 '사로잡혀 있는 시간'이지만 힘겹거나 무용하지만은 않다. 아이라는 결코 읽기를 포기할 수 없는 책을 더 자세히 여러 면으로 읽어가게 되니까. 집이라는 공간에 갇힌 내 시각을 벗어나 아이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다면적으로 이해하게 되는 시간이니까. 더군다나 아이가 놀이터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관계와 거기서 벌어지는 일들은 웬만한 드라마 못지않게 흥미진진하다. 장르도 다양하다. 판타지, 코미디, 로맨스, 추리 등이 눈앞에서 펼쳐진다. 어른들은 어린 시절을 훈훈하고 아름다운 동화 장르로 퉁치길 좋아하지만 사실 우리의 어린 시절이 어디 그렇기만 하던가.


혼자서 하는 상상의 놀이가 같이 할 누군가를 만나면 재미가 배가 되고 농담과 재치가 흘러넘치다가도 이내 서로의 생각과 무관하게 입김이 센 누군가의 주장으로 룰이 정해지고 그것이 갈등이 되어 다툼으로 번지기도 한다. 주거나 받거니 훈훈하던 공놀이가 후반부에 가서는 격렬한 피구 같은 축구가 되어 타임아웃을 외치지만 이미 승부욕에 불탄 남자아이들에게 그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여자 아이들은 또 어떤가? 함께 놀고 싶어 짠한 구애의 몸짓을 보내지만 이미 누군가와 놀고 있는 아이들은 그 메시지를 너무 가볍고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거나 그 대상의 구애를 즐기며 소비하는 냉정함을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 아이들도 아직은 어리다. 갈등이 일어나 어른들이 중재를 나서면 그 말에 두려워하며 이내 속에 감춰 두었던 맑간 아이의 모습을 드러낸다. 아직 무르익지 않아서 거칠고 날 것의 모습들을 보여줄 뿐, 막장 드라마의 악역처럼 작정하고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배척하려는 마음은 아니었던 거다. 그러나 어른들의 교훈적 개입에도 결국 아이들은 놀던 데로 놀뿐이다. 이런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정글 같은 틈에서 과연 아이가 잘 버틸 수 있을까? 걱정부터 드는 건 내가 대부분 '강'보다는 '약'에 가까운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럭저럭 친구들과 나쁘지 않은 그때를 보냈지만 돌이켜 보면 그건 운이 좋았을 뿐이고 어떤 피로감이 늘 있었기에 나는 친구보다 책과 음악으로 도망쳤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사연들이 펼쳐지는 놀이터에 앉아서 아이를 눈으로 좇는다. 우리 삶은 드라마처럼 기승전결이 뚜렷하지도 않고 석연찮고 애매모호하다. 정확한 선도 악도 없이 때로는 내가 때로는 상대가  입장에 선다. 욕구가 부딪히고 깎이고  모서리에 베이기도 하지만 어느새 둥글어져 있기도 하다. 그러면서 어느새 자라 놀이터를 떠난다. 이곳에는 드라마가 있고 그것을 통해 아이는 삶과 타인을 조금씩 배워나간다. 어느새 나도 가방  책은 잊고  앞의 이야기에 몰두한다. 드라마는  속에도 있지만 정말 궁금한 다음 이야기는 여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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