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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들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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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이름은빨강 Nov 09. 2020

욕구와 선택 사이 아이는 자란다.

소비요정의 좌충우돌 육아

  지난 7년간 아이를 키우며 갖은 육아용품을 사고 실패했다. 옷도 장난감도 많이 사 주지 않은 엄마지만 출산 직전에는 막연히 가슴에 품은 낭만주의적 로망에 기대거나 인너넷과 주변 사람들의 경험에 의해 이런저런 물건들을 사들이고는 했다. 그중에는 유용한 것도 있었지만 쓸모없는 물건도 많았다. 육아를 해 본 적이 없었고 주위에 출산하고 몇 년 안의 경험을 한 이들이 많이 없었던 데다 소비 요정의 욕구를 육아용품 구입이라는 이유로 죄책감 없이 풀 수 있었다. 덕분에 그 시절 구매한 것들은 쓰지도 못한 채 정리되거나 지인의 손에 넘어간 것들이 꽤 많다.


  그때는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소비욕을 조절하기가 어려웠지만 지금은 사뭇 달라졌다. 평생의 숙제이던 옷에 대한 욕구가 확연히 줄었다. 여전히 옷을 좋아하지만 '저걸 입고 어딜 가겠어?'라고 실질적인 생각을 하는 순간, '그럼 다음에 또 보자!'며 쿨하게 안녕을 고할 수 있는 멘털을 장착하게 되었다. 가끔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거나 캐럴송이 울려 퍼질 때면(왜 그럴 때면 옷 지름심이 찾아오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적당히 흔들려주면서 니트나 슬랙스 한두 벌 정도 질러보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옷차림에 무심하기만 할 수는 없으니 그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자기 합리화를 한다.


  분명 이제는 아이 것을 챙긴다며 실은 나의 소비욕구를 충족시키는 일도 많이 줄었다. 3~6살 사이에는 여기저기에서 입던 옷을 많이 받기도 해서 내복 3벌 정도나 준비해 돌려 입혔다. 종종 직구로 아우터나 바지 등을 사 주긴 하지만 요즘은 바쁘고 귀찮아 그것조차 뜸해진 지 오래. 집 근처 아웃렛 백화점에 들러 철마다 적당한 상하의를 두어 벌 준비해 한 계절씩 나는 걸로도 아이는 잘 크고 있다. 여러 벌 있다 해도 입는 것만 입는 확고한 취향의 소유자인 아들 덕분에 옷값도 거의 안 든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 고집 꺾느라 고생은 좀 하지만.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몸무게는 3년째 그대로지만 팔다리가 자꾸 길어지고 키도 커서 올해는 겨울 아우터를 제대로 장만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작년부터 노래를 부르던 롱 패딩과 경량 패딩 조끼를 인터넷을 통해 마련해 주었다. 몇 주 전 시골 갔을 때, 임시로 빌려 입은 할아버지의 플러피 조끼도 원해서 하나 사주마 했지만 올해는 경량패등 조끼만으로도 충분할 듯해서 주문하지 않았다. 이제 겨울용 바지 두세 벌만 챙겨주면 이번 겨울은 문제없을 것이었다.


  바빠서 커피 떨어진 것도 모르고 있다가 주말 산책 겸 단골 커피집에 갔다. 아이가 작년 롱 패딩을 처음 발견했던 ZARA 매장 앞을 지나게 되었다. 아이는 매장에 들러보고 싶다고 했고 롱 패딩은 얼마 전에 샀으니까 잘 넘어갔는데 예정에 없던 베이지 컬러 코듀로이 재킷을 하나 구입하게 됐다. 코디가 딱 내 서타일이었고, 지금 계절에 입힐 겉옷이 마땅찮기도 했다. 마음에 든다고 사달라고 조르는데다 주말 근무, 야근까지 한 미안함+평소 옷을 잘 사주지 않아서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마음이 두루 작용한 쇼핑이었다. 오랫동안 핍박받던 소비요정의 본능이 자극을 받아 깨어난 것이기도 했다. 마침 거리에는 이른 캐롤송 마저 울려퍼지고 있는 게 아닌가?


  카페에 들러 커피를 사고 나니 이번에는 종종 갔던 단골 피제리아에 가고 싶다고 했다. 마침 점심으로 파스타를 마들어 주겠다고 말을 해 둔 상태였다. 맛있는 마르게리따 피자도 곁들여 먹고 싶다나 뭐라나... 카페에 가는 김에 한달에 한번 꼴로 들러보는 동네 서점에도 가기로 한 터라 가느느 길목에 있는 식당을 지나치다 결국 아이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식사의 질에 비해 가격이 바싼 건 아니지만 둘이 한끼 먹기에 저렴한 식사는 아니다. 예정에 없던 소비이기도 하고.


  갑작스러운 재킷 쇼핑과 식사. 그건 아이가 원했지만 결국 내가 선택한 일이었다. 넉넉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 엄마는 늘 용돈을 받아 사고 싶은 것을 다 사고 나중에 돈이 없어 필요한 것에 쓰지 못하고 쩔쩔매는 무계획적 소비를 우려하며 야단을 많이 치셨다. 그때의 경험 때문에 그럭저럭 넉넉해진 지금도 작은 소비에도 죄책감 같은 감정을 느낀다. 아이가 나처럼 무계획적 소비를 할까 봐 걱정을 하며 무언가를 사 줄 때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전혀 사주지 않거나 무언가를 충동적으로 사주기도 하면서 여전히 그 시절처럼 시행착오를 거듭해 나가고 있다.


  품질 좋은 후추 조각과 트러플 오일로 마감한 토마토 미트 소스, 라고 파스타와 신선한 모차렐라 치즈와 바질이 가득 올려진 마르게리따 피자(모든 것은 아들의 취향. 나는 선택의 권한이 없다.)를 나눠먹으면서 아이가 내게 말했다.


  "크리스마스 때 산타 할아버지가 펜타스틱 XXX(로봇인 것 같은데 이름이 어려워 기억나지 않음)를 선물로 주실 거니까 엄마는 내게 할아버지 거랑 같은 조끼를 선물로 줄래?"


  아이의 눈을 마주 보면서 오늘 산 재킷과 책들, 먹고 마시는 것들로 그 조끼를 사는 기회비용임을 아이의 언어로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이어서 나의 바람을 말했다.


  "갖고 싶은 물건을 다 가질 수 없으니 뭔가를 선택하는 일이 필요해. 엄마는 무조건 마음에 따랐는데 실패가 많았어. 갖고 나면 처음 마음만큼 좋거나 필요한 게 아닌 물건이 많더라고. 지금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그러면서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알아가게 되는 것 같아. 헷갈리기도 하고 다 가질 수 없어서 아쉽기도 하지만 선택을 하면서 내가 뭘 더 원하는지 잘 알게 되니까 멋진 일이기도 해. 엄마는 얼마 전에야 그걸 알았지만 너는 지금부터 천천히 알아갈 수 있으면 좋겠어."


 무수히 많은 소유욕의 욕망과 부딪히며 순간의 기쁨과 잦은 실망을 거듭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 자본주의 세계에 사는 우리의 숙명이다. 장강명 작가가 <5년 만의 신혼여행>에서 가난한 집 딸인 아내의 가성비를 따지는 여행 방식을 진솔하게 표현한 글을 봤는데 형편이 취향을 결정하는 일이 서글프면서도 그것으로 인해 자신을 만들어 가는 과정의 기쁨과 슬픔을 누리며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아이의 그 시간들이 궁금하고 기다려진다.

  

  자본이 무차별적으로 반복해 내보내는 소비와 소유의 환상에 빠지기도 하면서 나의 경험과 감각으로 소비를 해 보고 실패를 거듭하면서 자신을 알아가는 일은 40년을 산 내게도 아직은 어려운 노력이지만 아이가 그 시간을 통해 한층 성장할 것을, 내가 그랬듯이 결국 완벽하지 않아도 자기만의 답을 찾아갈 것임을 지켜보며 기다리고 싶다. 그 끝의 너는 어떤 선택으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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