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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들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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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이름은빨강 Dec 07. 2020

아이에게 배운 사랑법

주말 동안 새벽 늦게까지 깨어 있었더니 컨디션이 망가져서 피로가 풀리지 않는다. 일요일은 8시가 넘도록 늦잠을 잤는데 자꾸 졸렸다. 식후가 가장 힘들다. 잠시 외출해 걷고 햇빛을    낫더니 집에 와서 앉으면 졸음이 쏟아진다. 요즘 아이가 낮잠을 전혀 자지 않기 때문에 하루 내내 둘이 붙어 있는 와중에 잠시  짬도 없다. 토요일은 어찌어찌 버텼으나... 일요일은 결국 아이이게 양해를 구하고 10 정도 알람을 맞춘  잠깐 눈을 붙였다.

그렇게라도 잠시 잠을 채우면 급한 졸음을 쫓을  있어서 가끔 너무 잠이   써먹는다. 함께 잠드는 일이 허다했지만 이젠  컸다고   일을 하다가 알람이 울리면 엄마를 깨우러 온다. 조느라 제대로 읽어주지 못한 엉탐을 들이밀기에 함께 읽고, 늦은 점심 때문에 역시 늦어진 저녁으로 떡볶이를 후다닥 만들어 주었다.  매웠는데도 야무지게  비워냈다. 우유 두 잔과 함께.

최근 이런저런 일로 온라인 모임에 참석하는 빈도도 늘고, 아이가 혼자 있게 되는 상황도 늘고 있다. 함께 하지만 아이를 위한 시간은 아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엄마 곁에 왔다 갔다 하다가 어느새 조용히  자리에 가서 잠들어 있는 아이를 보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 금요일 언택트 세러피는 내가 진행을 해야 해서 일부러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실패하고, 눈빛을 초롱초롱 빛내는 아이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해야 했다.

당황한 엄마의 표정이 읽혔는지  말없이 불이 환한 거실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이 들었는데... 요즘 드문드문 이어지는 온라인 모임 때문에 괜스레 미안했던지라 조용히 하려고 생각해 미리 양해를 구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그다음에 이어진 송년모임은 아예 아이가 잠든 후로 참석을 했다. 시간도 늦었고 졸음이 밀려와 중간에 나와 잠자리로 돌아가니 아이가 침대에서 떨어지기 일보직전이었다.

너무 좋은 강의도 모임도 많지만  참가할 수는 없다. 가끔 아쉬울 때도 있지만 어쩔  없는 일이다. 대신 아이에게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조금씩 나눠 보여준다. 지난 2주간 <칼의 노래> 필사도 아이가 좋아하는 이순신 장군의 마음과 상황을 조금씩 아이의 수준에 맞게 풀어 함께 했다. 마음이 우러나 쓰는  따라   두 번 밖에 없지만 아이는 엄마가 어떤 것을 하고 있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조금은 알았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요즘 심취한 미니카를 종류별로  접을  있게 되었다. 검도는  가르쳐 주는데 어렵다.

지난 5년간 아이는 챙겨야 할 보호 대상이기도 하지만  삶의 동반자였다. 가끔씩 함께 요리를 해서 밥을 만들어 먹었다. 화장실 휴지가 떨어진  몰랐을  부르면 '에휴'라는 반응과 함께 휴지를 가져다 주기도 하고,  마신 생수통에 라벨을 떼어주면 다용도실의 슬리퍼를 신고 발로 밟아주었다.  자신의 책을 함께 또는 먼저 읽어보며 먼저 감탄을 하는 나처럼 내가 읽는 책의 표지를 보고 자신도 알고 싶어 하고, 가끔씩 새벽 거실에 나와 글을 쓸 때면 조금 떨어진 자신의 지정석에 누워 자판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며 다시 잠을 청하고는 했다.

 시간 동안 우리는 함께 했고 종종 갈등하면서도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는 했다. 존중하고자  애를 썼지만 아이와 내가 평등한 관계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어른이고 엄마라는 이유로 제멋대로  것이  많을 테지만 분명한  정말 숱하게 나의 한계를 마주하고 후회하고 미안하면서  나은 모습을 꿈꿔왔다. 금세 나를 용서하고 이해하려는 아이의  덕분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이런 거구나... 아이를 통해 가득 배웠다.

이제 며칠 뒤면 남편이 오고 2주의 자가격리 기간이 끝나면 드디어 셋이 함께 살아가게  것이다. 많은 것들이 꿈꾸는 대로 되기도 하고, 예상했던 대로 좌절에 부딪히기도  텐데 이미 내게 5년간 다른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며 공존할지 가르쳐준 아이의 존재 덕분에 쉽지는 않겠지만 결국 잘해 나갈  있을 거라고 믿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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