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과 삶 : <연남천 풀다발>
또... 어느덧 금요일입니다.
오늘은 10월의 마지막 금요일이고
며칠 뒤면 11월에게 자리를 내어주겠군요.
이번 주 <라떼처럼>의 구독 서비스가
시작되었습니다.
10명의 글벗들이 모여
세 계절에 걸쳐 썼고
함께 읽고 고치고 또 고쳐
고민과 망설임 끝에
세상에 내어놓은 글.
오래 품었기에 잘 읽혔으면 하는 욕심과
부끄러움이 교차하며
후회스러운 순간이 자꾸 찾아왔습니다.
아마 다른 글벗들도 그렇지 않았을까 합니다.
일찍 잠자리에 든 어느 아침,
밤 사이 그러한 심정을 남겨둔 글벗의 말에
눈길이 머무르다가
<연남천 풀다발>이 떠올랐습니다.
모든 것은 가을로부터 시작되었다.
로 시작하는 아주 아름다운
그림책 한 권이요.
손바닥을 대고 훑으면
종이의 질감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표지를 살짝 열어봅니다.
속면지 없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책 등 덕분에 한 장 한 장 잘 열려
여백 가득한 아름다운 그림과 글에
깊이 빠질 수 있는 그림책입니다.
<적당한 거리>의 전소영 작가가
홍제천을 거닐며 관찰한 풀꽃들의 모습을
특유의 감수성으로 담아냈습니다.
떨어진 단풍 사이로
노란 꽃이 피었는데
모두가 질 때 피는 꽃이 있다는 것이
모두에게 저마다의 계절이 있다는 것이
이렇게나 반가울 수가.
이슬아 작가의 글이
봄과 여름에 피는 화사하고
모두의 눈길을 끄는 꽃이라면
나의 글은, 그리고 우리의 글은
가을에 시작되는
풀꽃의 이야기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모든 것은 가을로부터 시작되었다.'는 한 마디가
고요한 호수에 작은 조약돌이 만든
동그란 파문처럼 퍼지고 또 번져나갑니다.
모든 것이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
이 가을에 시작하는 일...
언젠가는 시들고
떨어져야만 하는 게 삶이지만
한 번쯤은
가득 피어나 보고 싶었던 마음에
'저마다의 계절이 있다.'라고
나지막이 이야기를 건네는
노란 풀꽃, 산국의 말에
왠지 눈물이 날 것만 같습니다.
앙상한 가지 끝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던 것들이
첫서리를 맞이해
반짝이는 구슬처럼 빛이 났다.
언젠가 한 번은
반짝일 날이 있겠지...?
가슴속에 작은 소망 하나 품으며
눈길, 손길 머물지 않는 곳에서
때를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에
'툭. 힘을 내. '라고 응원하는
시든 나팔꽃과 터져 나온 씨앗의 목소리에
'피고 지는데도 생김새에도
이유 없는 일은 없으니'라고
깨닫게 되는 일...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마주하게 될까요?
미처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앞만 보고 걷는 사이에
뒤를 돌아보는 사이에
삐죽이 고개를 드는 봄.
항상 되돌아 오지만
결코 전과는 다를 새로운 봄을.
그리고 여름과 가을을...
'둥근 풀이 뾰족한 풀이되고자
애쓰지 않는 모습...
세 계절을 함께 써오며
가슴에 품게 된
그 무엇보다 소중한 배움이었어요.
씨앗에 날개를 달아서
혹은 힘차게 멀리 터뜨리기도 하고
밟히는 대로 납작하게
줄기를 뻗어 휘감아 기댄다.
저 마다 다르게 살아가는 방법.
어떤 것은 힘차게 멀리 날아갈 것이고
또 어떤 것은 땅에 바짝 엎드려
사람들의 발길에 몸을 내어주더라도
그것은 살아가는 방식일 뿐.
정신없고 시끄러운 세상에서도
제 자리에서 묵묵히 뿌리를 내리고
잎을 올려 꽃과 열매를 피워내는
풀꽃들을 통해
지난 세 계절과
세상에 내어놓은 글이
제게 준 것들을
하나하나 살펴봅니다.
다시 시작을 꿈꾸어 봅니다.
가을은 꿈꾸기 좋은 계절,
이 그림책과 함께
저마다의 피기 좋은 계절을
찾아가 보시기를 바라 봅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늘 감사합니다.
내 이름은 빨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