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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이름은빨강 Nov 10. 2020

평가와 가치

평가를 매기는 주체는 누구인가?

  지난 주말, 회사의 주요 내부 고객이 될 이들을 선발하기 위한 평가 지원 때문에 출근을 했다. 8시부터 지원자들이 전원 출석해야 하기에 직원들은 7시 반까지 사무실에 모여 간단하게 김밥으로 요기를 하고 8시부터 시작된 일정을 소화했다. 하루 전 평가장 세팅을 완료해 놓아 시작과 동시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1시간 동안 신원확인 등을 마치고 오전 9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평가는 10분 단위로 돌아갔고 정확히 저녁 7시 10분에 끝이 났다. 검수팀, 평가장 정리팀으로 나뉘어 마무리를 하고 나니 이미 시간은 8시 반이 되어 있었다.  

   

  150명가량의 지원자들이 조를 이루어 인솔자와 함께 도착한 뒤 순서에 따라 평가장으로 들어간다. 10분 단위로 1시간 동안 한 조가 평가를 받고 다시 대기장소까지 인솔자와 함께 움직인다. 나는 복도 감독을 하다가 평가가 끝나면 대기장소까지 그들을 데리고 가는 업무를 맡았다.

      

  기계적인 업무의 반복 사이, 자꾸만 그들에게 눈길이 갔다. 긴장감을 가득 실은 걸음으로 빠르게 뛰듯 걸어와 제 자리를 찾아 앉아서는 앞으로 던져질 질문을 준비하며 초조하게 생수병을 열고 마르는 입을 축이던 입들, 열망과 열심, 초조함 같은 것을 잔뜩 보여주던 옆모습과 뒤통수들과 나를 따라오는 종종걸음들... 오래전 바로 그들 중 하나였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의 나도 마치 지금의 저들처럼 여리고 앳되고 힘이 가득 들어가 부자연스러운 옆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수없이 여러 번 누군가로부터 평가를 받아왔다. 학창 시절 늘 성적이나 상 같은 성과로 순위가 매겨졌고, 취직할 때는 많은 평가 방식을 두루 경험했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2분 동안 주어진 주제에 시사상식을 동원해 15분 동안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했던 평가도 있었고, 하루 종일 발표와 연극과 조별 합동 만들기, 경매, 판매도 해 봤고 식사와 노래방 면접도 보았다. 1박 2일간의 합숙 평가에서는 1일 차에는 협동을 강조하다가 다음날은 서로를 죽이는 마피아 게임 같은 평가장에서 마음이 씁쓸해지기도 했다.   

   

  서류 전형과 필기고사라는 관문을 거친 뒤, 1차와 2차 실무전형을 통과하면 드디어 대망의 최종 면접이 있다. 그 복도에 무수히 서 보았지만 늘 평가는 떨리고 익숙해지지 않았다. 누군가로부터 비교당하고 점수화되고 서열화되는 일이 태어나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제아무리 모든 것을 다 꺼내어 뿌듯하게 평가를 마쳤다 한들 충만감은 없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속의 몸과 마음은 계단을 수없이 오르내린 내 발바닥처럼 뻐근하고 욱신거리며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과연 이번엔 선택받을 수 있을까 간절한 기다림과 기대가 매일의 평온을 흔들었다.   

   

  그 평가가 과연 업무에 얼마나 실질적인 영향이 있었던 것일까? 그걸 우수하게 통과하면 업무 역량도 높을까? 적어도 우리 회사에서는 그리고 나의 경우는 잘 모르겠다. 한정된 가능성과 한정된 업무가 주어지고 거기서도 실수하고 지적받으며 좌충우돌 더디게 나아간다. 그 과정에서 여전히 직간접적으로 많은 평가를 받는다. 이젠 일종의 체화가 되어 그 기준으로 나를 보고 삶에까지 연장시켜 보게도 된다.     

     

  중년에 접어들면서 이제는 일에서 얼마나 이루었고 어느 위치에 왔으며 무엇을 가졌는 지로 평가와 가치가 매겨지는 일이 많아졌다. 소유한 물적 자산뿐만 아니라 무형의 지적 자산과 경험도 포함해서. 종종 '절대 그런 걸로 한 존재를 다 가늠할 수는 없는 거야.'라고 조용히 중얼거려 본다. 여전히 부서장의 평가, 회사에서의 내 위치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아이의 성적에 무심할 자신이 없으며, 물질이든 경험이든 남이 가진 것과 나를 비교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평가자의 시선에 울고 웃으며 나와 삶을 판단하는 날들이 반복된다. 외딴섬에 홀로 사는 삶이 아닌 이상, 여러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고 사회의 기준과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으니까.      


  그럼에도 여전히 한 사람과 그의 삶의 가치를 최종 결정하는 건 바로 자신으로부터 비롯되어야 한다는 걸 믿고 싶다. 잘나고 능력 있는 사람 많은 이 거대한 조직과 사회에서 평범하고 작은 나는 그저 좌표의 한 지점에 불과하게 여겨질 때가 있고 종종 의기소침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작은 점들 속에도 우물같이 깊고 조용한 공간이 있음을, 밝고 환한 작은 빛이 비치고 그 속에는 무수히 많은 삶이 지닌 이야기가 맑게 찰랑이고 있다는 걸 떠올린다.     


  그것을 길어 올려 자세히 들여다보고 맛도 보고 향도 맡으며 즐겨보는 과정이 세상의 방식에서 벗어나 자신을 가늠해 보는 하나의 길이 되어주지 않을까? 좌표의 위치에서 흔들리고 회의하면서도 끝내 스스로 그 좌표를 벗어날 든든한 힘이 되어주지 않을까? <토선생 거선생>의 토끼와 <모자를 보았어>의 두 거북이들처럼.      


  마지막 조의 지원자들을 대기장소로 안내하고 '수고하셨다.' 인사를 건네며 돌아서는 순간, 후회와 아쉬움과 후련함과 무표정을 모두 담고 있던 그들의 얼굴과 등을 마지막으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지난 12년과 그전의 수없이 많은 평가들이 스쳐갔고 그것이 나의 일부가 되었음을 부인할 생각은 없지만 조금 다른 식으로 나의 좌표를 가늠하기 시작한 지금 이 길을 더디게 하지만 꾸준히 걸어갈 용기가 가슴속에서 조용히 샘솟는 것을 느꼈다. 그들의 행운을 빌며 나도 다시 계단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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