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기에 있어

그림책과 삶 : 한해를 관통한 연결과 이어짐의 의미

by 내이름은빨강

어느덧 금요일입니다.

유난히 추운 한 주였지요.

이제 12월도 열흘 남짓 남았네요.


글을 쓰고 그림책을 읽으며 살아가겠다 마음먹은

저에게 그것을 펼칠 장이 되어준 2020년.

오늘은 그 모든 시간의 의미를 담아

한해를 돌아보며 함께 읽고픈 그림책을 골랐습니다.


아드리앵 파를랑주의

<내가 여기에 있어>입니다.


내가 여기에 있어



책 표지부터 안의 내용까지

거대한 뱀의 몸통이

화면을 가득 채운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한 소년이 잠에서 깨어나

우연히 방안을 가득 채운

거대한 뱀의 꼬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따라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예요.


소년은 뱀의 몸통을 따라

사람들, 동물들, 도시와 숲을 지나갑니다.

그 끝에 뱀의 얼굴을 마주하게 되지요.


소년과 뱀은 어떻게 될까요?






올해 초 상상도 하지 못했던 바이러스로

우리의 일상은 뒤흔들리고 위협받았습니다.


제 경우 해외에 나가 있는 남편의 거취부터

회사에서 부여한 대응 업무까지

코로나와 무관할래야 할 수 없는 날들이었어요.


막막하고 답답함도 있었지만

올초부터 거의 1년째 이어진

담당하는 일 외 추가로 부여된 방역관련 업무에

불평불만 거의 없이

동참해준 구성원들을 마주하며

깊은 감사와 감동을 느꼈습니다.


서류상 또는 업무상의 이름으로만

존재하던 많은 분들에게

방역업무 안내를 매일 하면서

카톡 프사에 올라온

아이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고

키우는 강아지의 이름을 알게 되었고

요즘 마음을 담은 글귀를 눈에 담았습니다.


의미없는 점으로 존재하던 이들이

선으로 이어졌습니다.


어디 그뿐이었나요.

좋은 행사가 있어도

시간관계상 가 보지 못했던 좋은

프로그램이나 워크샵을

방구석에서 참여하게 되면서

그림책 세계의 다정한 연결은

더 깊고 단단해졌지요.


해의 시작엔 코로나에 속수무책

당황스러웠고 막막했던 심정이

지금에 다다라서는

소통을 이어가자는 마음으로

찾아온 기회를 디딤돌 삼아


단독 그림책 테라피와

<우리의 언어가 그림책이라면> 송년모임까지

온라인으로 시도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동기생들과의 모임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상황은 달라졌지만 그림책을 사랑하고

그것을 함께 나누고픈 마음은

서로와 이어진 작고 거듭된연결로

더 깊고 단단해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마지막으로 매일 쓰며

일상을 나누고 함께 울고 웃었던

저의 글벗들과의 시간도

어느덧 짧게는 몇달, 길게는 2년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올해는 <라떼처럼>이라는

개인적으로 오래 기억에 남을

의미있는 프로젝트 모임을 통해

글을 넘어선 사람의 의미를 배우기도 했고요.

어떤 모습이든 제 자신을

비로소 조금 더 마음 편히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이 모든 연결은 예전에도 가능했던 일이지만

다음을 기약하기 어려운 상황이 거듭되며

더 큰 의미로 다가왔던 한해였습니다.






이야기의 시작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거대한 곡선, 뱀의 몸통은

소년에게 새로운 존재들의 모습과

세상의 풍경을 마주하게 하는 통로이자,

또 세상 어딘가에 혼자 있는 존재를 자각하며

관심을 기울이게 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전작에서와 마찬가지로

단순명료한 판화 기법의 그림과 색채에 끌려

뱀을 따라 세상을 보며 소년이 획득하게 된

타자와 세계에 대한 관심처럼

주의를 기울여야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시각적 구성을 지닌 대화장면에 다다르면


한해를 스쳐 지나오며

제게 오고 갔던 수많은 연결과 교차를

파노라마처럼 떠올리게 됩니다.


그 어느 때보다 단절과 거리두기가 절실했기에

일상적으로 큰 의미없이 지나쳤던 이어짐의 가치를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가 역으로

알려준 것은 아니었을까요?


언제 끝이 날지 기약이 없어 막막해 하면서도

각자의 자리에서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허락된 방식의 연대를 끊임없이 시도하며

찾아나가고 있는 2020년, 한 해의 끝에


무심결에 스쳐갔던 존재들과 나는

어디선가 만나며 이어져 있었고

문득문득 찾아든 외로움을

위로받았구나 알게 됩니다.


저 또한 어떠한 교차점에서

작은 위로를 전할 수 있었기를 바라며

말씀드리고 싶네요.


"내가 여기에 있어."

주말 잘 보내세요.


내 이름은 빨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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