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부서장 면담을 신청하고 육아휴직 의사를 전달했다. '그래, 오늘은 꼭 말하는 거야!'라며 호기롭게 출근했는데 오전 내내 '그놈의 좋은' 타이밍만 노리다 점심 먹고 오니 용기가 쪼그라들었다. 월요일부터 마음만 먹고 퇴근하기를 5일째. 이 극도의 소심함을 어찌할까? 밤잠도 설치고 새벽에도 눈의 떠지고... 금요일엔 말한 후 홀가분하게 주말을 나고 싶었다. 절친 동생에게 힘을 얻고는 결재판을 들고 부서장 결재를 올린 뒤, 면담을 요청했다.
"무슨 일이야?"
라고 묻는 부서장에게 말하려는데 왜 눈물부터 나던지... 잘못한 것도 없고 못할 말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속에서 무언가가 울컥 올라와서 울먹거리며 겨우 운을 떼었다.
"육아휴직을 신청하고 싶습니다."
부서장은 의외의 쿨한 반응으로
"권리인데 가야지."
라며 말씀을 이어가셨다. 하지만 선도 그으셨다. 돌아오면 힘들 거라는 그 말은 에둘러하는 경고 같은 것이었다. 육아휴직까지 가면서 인사권에 영향이 없을 거라고 믿지는 않는다. 그건 돌아간 내가 또 잘 헤쳐나갈 것이다.
이슬아 작가는 <일간 이슬아>에서 과거, 현재, 미래의 자신을 과슬이, 현슬이, 미슬이로 표현했다. 재치만점 그 표현을 빌리자면 과강이(과거의 빨강)와 현강이(현재의 빨강)를 종종 후회하고 못 미더워하지만 미강이(미래의 빨강)에 대해서 묘하게 믿고 보는 여유도 가지고 있다. 물론 극소심답게 걱정스럽고 두렵지만 당장 눈앞에 닥치지 않아서일까? 그때의 내가 그럭저럭 잘 해낼 거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서일까? 미강이를 믿어보고 싶다.
부서장에게 의사를 전하고 자리로 돌아오자 '이게 뭐라고...' 싶었다. 괜히 긴장하고 요리조리 따지고 걱정했다. 저녁에 볼 테라피스트 동기생 선생님들께 드디어 질렀다고 말하고 응원과 축하도 듬뿍 받았다. 맥주 한 캔 하고 싶었지만 9시 반부터 그림책 스터디가 예정되어 있어 참았는데 무려 4시간이 이어져 새벽 1시 40분경에 끝이 났다. 제대로 피곤했다. 새벽에 글은 커녕 늦잠을 잤다. 컨디션이 회복되지 않아서 일요일까지 헤롱거렸다.
내친김에 푹 쉬었다. 하루 이틀 쓰고 말 것도 아닌데 비장해지지 말자고 스스로 달랬다. 책도 글도 잠시 쉬면서 머릿속으로 그림책 글 원고를 구상해 봤다. 떠오른 이야기를 어떻게 간결한 그림책의 글로 바꿀 것인가? 새로운 도전이 힘겹지만 또 나를 다른 곳으로 데려가 줄 거라고 예감했다. 1년간의 육아휴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과강이와 현강이가 미강이를 만들어 갈 것이다. 두려우면서도 자신만만한 미강이의 1년을 설레며 맞이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