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은 왜 이별 후에 더 자주 생각날까
1화. 다정하다
: 마음씨가 부드럽고 정이 많다.
: 다(多, 많을 다) + 정(情)
‘다정하다’는 이상한 말이다.
사랑할 때보다, 이별하고 나서야 더 자주 떠오른다.
그 사람은 참 다정했다.
지금은 곁에 없지만, 기억 속 어디를 건드려도
다정함의 조각이 부스러기처럼 떨어진다.
우산을 챙기지 않은 날 가방에 넣어둔 작은 접이식 우산,
추운 날 먼저 손을 감싸주던 따뜻한 손길,
언제나 내 속도에 맞춰주는 발걸음,
내 쪽으로 우산을 기울이며 걸었던 비 오는 저녁길,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나보다 먼저 웃던 그 표정.
그런 건 다 너무 작아서, 있을 땐 몰랐다.
다정함은 늘 조용한 방식으로 우리 곁에 머문다.
그래서, 잃고 나서야 그 존재가 얼마나 컸는지 알게 된다.
다정함은 눈에 잘 띄지 않고
오래 곁에 있을수록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우리는 자주, 다정한 사람을 당연하게 대한다.
마치 햇살 아래 있을 땐, 그게 따뜻한지도 모르는 것처럼.
그래서였을까.
나는 다정한 사람을 멀리했던 시절이 있다.
그들은 너무 쉽게 마음을 내어주는 것 같았고,
나는 그 마음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오히려 무심한 사람에게 더 끌렸고,
다정한 마음을 의심했고,
그 다정함을 소모해버리곤 했다.
하지만 어느 날,
비가 갠 늦은 오후, 카페 앞 벤치에서 숨을 고르던 순간이었다.
잔을 건네며 친구가 말했다.
“넌 다정한 사람이야.”
내가 웃음으로 넘기려던 찰나, 친구가 말을 이었다.
“너는 늘 문을 먼저 잡아주고,
뜨거운 컵을 두 손으로 건네고,
걷다 보면 속도 느린 쪽에 맞춰 서.
상대가 말을 고르는 침묵까지도 함께 있어주잖아.”
그 말은 장난처럼 가볍게 떨어졌는데,
이상하게 오래 귓가에 머물렀다.
집에 돌아와 신발을 벗을 때까지,
그 말의 온도가 발목까지 스며드는 기분이었다.
그 말이 나를 아주 천천히 바꾸어 놓았다.
나는 그 말을 오래 곱씹었고,
내 안의 다정한 부분을 믿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득문득,
나도 누군가에게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그 말이 내게 다정했기 때문에.
그제야 알게 됐다.
다정한 말 한마디가 얼마나 드물고,
그런 마음을 건네는 사람이 얼마나 귀한지를.
오래 지나고 나면 기억나는 건 늘 그런 순간이다.
이해받았다고 느낀 말투,
따뜻함을 감춘 듯 조용했던 눈빛,
설명 없이도 느껴지는 마음.
그런 다정함이 누군가의 삶을
천천히 바꿔놓기도 한다는 걸,
그 말을 들은 뒤에야 깨달았다.
요즘은 누군가를 ‘다정하다’고 말하는 일이
왠지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 말은 너무 따뜻해서,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는
조금 무거워져 버린 것 같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은 한 번 들으면 오래 남는다.
누군가에게 “넌 다정한 사람이야”라는 말을 들은 날,
그 사람은 자신을 조금 더 사랑하게 된다.
‘나는 다정해도 되는 사람’이라는 허락을 받기라도 한 것처럼.
이따금 나는,
내가 받은 다정함의 장면들을 마음속에서 재생한다.
그 장면들이 내일의 나를,
조금 더 다정하게 만든다.
오늘, 당신도 누군가에게
이 말을 건네보면 어떨까.
“당신은 참 다정한 사람이에요.”
그 말이 하루를 바꾸고,
어쩌면 어떤 삶을 바꿔놓을지도 모른다.
조용한 말이 세상을 바꾸진 못하더라도,
그 말은 분명히 한 사람의 온도를 바꾼다.
그리고 한 사람의 온도가 바뀌면,
그 곁에 있는 또 한 사람이
따뜻해지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