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결혼, 선택의 기로

미련과 확신 사이의 선택

by 봄앤

나는 일과 잘 맞았다. 완벽주의는 성과에는 큰 도움이 됐지만, 내 몸과 마음에 항상 친절하진 않았다.

마감이 몰리면 물 한 모금, 화장실 한 번을 미루는 사이 컨디션이 금세 기울었다.

점심도 저녁도 책상 앞 샌드위치로 때우고, 바깥공기는 밤 퇴근길에야 처음 맞았다.

몸은 곳곳에서 경고를 보냈다.


매일 야근이 이어지던 어느 밤, 특별한 일도 없었는데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이유 없이 눈물이 뚝 떨어졌다. 그럼에도—프로젝트를 끝냈을 때의 후련함과 보람, 그 순간의 맑은 기쁨이 좋았다.

그게 나를 다시 앉히는 힘이었다.


연애를 뒷전에 둔 건 아니다. 다만 시간이 없었다.

그런 나를 안쓰럽게 생각하는 주변 사람들의 소개가 들어오면 일정 사이에 꼭 끼워 넣었다.

야근이 길면 약속은 늘 회사 근처 혹은 다음 주로 밀렸다.
“죄송하지만 오늘 야근이라 회사 근처에서 뵐 수 있을까요?”
대화가 술술 풀려 다음을 기약하고 들어가는 길에도,

“너무 바쁘신 분은…”이라며 조용히 물러나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그게 내 연애사의 전부는 아니었다.

설레던 기억도, 오래 아팠던 기억도 나에겐 있다.

남들만큼, 아니 어쩌면 조금 더 열심히 사랑하려고 애썼다.




그 무렵, 근처 회사에 다니는 한 사람을 만났다. 그 역시 바빴지만 우리에겐 점심과 저녁이 있었다. 그는 다정했고, 나를 재촉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늦은 퇴근길이면 택시가 불안하다며 차를 몰고 와 집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따뜻함이라는 단어가 사람이 된다면, 아마 그의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말했다.
“몸만 와. 이사하면서 가전도 가구도 새로 맞췄어. 넌 들어오기만 하면 돼.”
그는 서른다섯, 나는 스물아홉. 그에게 결혼은 현실이자 계획이었다.

내게 결혼은 아직 멀리 있는 이야기였다.

그와의 연애는 좋았지만, 결혼은 한 번도 깊게 생각해 보지 않은 길.


그래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내 미성숙 때문이었을까. 결혼, 임신과 출산, 돌봄의 분배 같은 단어들이 눈앞에 놓이면, 지금 달리고 있는 트랙이 갑자기 높아진 허들로 바뀌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나는 회사에서 꽤 잘 나가던 ‘김연수’였다.

이 페이스로 조금만 더 가보고 싶었다.

결국 그는 알았다.

내가 당장 결혼할 마음이 없다는 것을.


“그래, 네 마음 알겠어. 가고 싶은 데까지 가 봐.”
떨리는 목소리. 그리고 잡았던 손의 마지막 온기.

그는 조용히 내 곁을 떠났다.

아끼던 사람이었기에 이별은 오래 아팠다.

그래도 우리는 다시 연락하지 않았다.

함께 그리는 미래가 다르다는 사실을,

서로가 너무 잘 알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자 나는 연애에 조금씩 소극적이 되었다.

결혼 의사가 분명하지 않은 채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 미안해졌다.

그 사이 나이는 차곡차곡 쌓였고, 사람들은 나를 여러 이름으로 불렀다.

“노처녀”, “골드미스”.

이상하게도 회사에서 결혼하지 않은 여자와 결혼하지 않은 남자에게 쏟아지는 말의 결은 달랐다.

“김 차장, 결혼해서 뭐 해~ 요즘 이혼도 많은데 혼자 자유롭게 사는 게 최고지.”


“박 차장, 언제 결혼해? 자리 잡으려면 가정을 꾸려야지. 그래야 남자가 안정감 있지.”


나는 멀티태스킹에 능한 사람이 아니다. 몰입할 땐 한 곳에 완전히 들어가는 편이고, 그건 일에서 장점이지만 생활에서는 조정이 필요했다. 결혼과 일을 동시에 완벽하게 해내는 슈퍼우먼들을 보며 존경했지만, 내가 그 역할을 바로 맡을 자신은 없었다.

그때의 나는, 그 선택(결혼을 미루는 일)이 나에게 최선이라 믿었다.


그럼에도—아주 가끔은 후회가 온다.
그 따뜻한 사람의 손을 놓았던 일,

주저하는 사이 흘러간 시간들.
그러나 후회는 오래 머물지 않는다.

지나가면 나는 다시 지금의 나로 선다.

내가 지킬 수 있는 하루를 챙기면서.


결혼을 선택하지 않은 건 누구를 부정해서가 아니다.

나한테 맞는 삶의 방식—돌봄을 어떻게 나누고, 일과 사랑의 속도를 어떻게 맞출지, 내 시간을 어디에 둘지—만 정한 것뿐이다.

어떤 날은 외롭고, 어떤 날은 홀가분하다.

둘 다 내 삶이다.


나는 여전히 사랑을 믿는다.

다만 사랑이 반드시 동일한 제도와 반지를 통과해야만 증명된다고는 믿지 않는다.

각자의 방식으로 충분히 진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마음이 바뀌면, 그때의 나도 환대할 것이다.

오늘은 여기서, 내가 고른 삶을 조금 더 다정하게 껴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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