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작심삼일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딩굴딩굴공작소 Sep 03. 2024

[작심(作心)3일] 30편. '공동체'

매월 3일, 마음에 담아 마음을 담는 DDF 프로젝트 작심(作心)3일

이제 만들어보자! ‘평생학습동아리 지원센터’

전하영     


평생교육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 중 하나가 ‘평생학습동아리’라 불리는 시민들의 자발적 학습모임(학습공동체)이다. 교육을 통해 배움의 기회를 가진 후 심화 배움과 함께 실천으로 이어지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공동체를 만들어 활동하는 것이기에 대다수의 평생학습도시에서 평생학습동아리 지원사업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2003년 평생학습도시 평생교육사로 입문하여 평생학습동아리 지원사업을 핵심사업으로 추진하면서 많은 평생학습동아리 회원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이후, 그들과 다양한 이벤트를 만들어 지역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활동들을 펼쳐왔다. 그러던 중 일본에 견학을 갈 기회가 생겨 다녀온 후 공동체에 대한 나의 인식의 큰 전환점이 생겼다. 일본의 NPO 지원센터의 운영 방식을 도입한 소위 ‘평생학습동아리 지원센터’가 필요함을 크게 느꼈고, 이 중 평생학습동아리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시스템이 매우 중요함을 깨달았다.     


몇 해 전에 부산평생교육진흥원과 함께 평생학습동아리 컨설팅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일본의 NPO 지원센터와 같은 시스템을 구상했으나, 여러 가지 제약으로 인해 쉽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 프로젝트였다. 올해 일본 마쓰야마시 여행을 갔을 때 우연히 발견한 마쓰야마 NPO 지원센터를 방문한 후 평생학습동아리를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다시 기획하고 싶어졌다.     

 

우선 평생학습동아리 컨설팅부터 재설계하려 한다. 배움에서 실천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탐색하고 시도할 수 있는 내적 역동을 만들어내는 방법과 대외적으로 연계하고 확산하는 외적 역동을 만들어내는 요소들을 구체화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량이 ‘기획’과 ‘성찰’이기에 이를 컨설팅의 핵심 가치로 둔 나만의 컨설팅 모형을 만들어 보고자 한다.     


평생학습동아리 컨설팅 모형이 만들어지면,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나만의 ‘평생학습동아리 지원센터’가 설립될 수 있을 것 같다. 명칭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꿈은 이루어진다^^




함께하면 알게 되는 것     

한성근     


공동체는 삶의 방식이다. 가족공동체로부터 시작한 공동체적 삶은 친족, 또래, 학교, 종교, 직장, 마을, 취미, 이익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공동체를 통해 살아가는 방법을 깨닫는다. 역할과 책임, 관계와 도리, 나눔과 받음, 봉사와 헌신, 이익과 배분, 공정과 상식, 자유와 평등, 만족과 행복, 질투와 화해, 불만과 해소, 나와 남, 모두를 위한 처신과 처세, 자신을 위한 안정과 보안, 시작과 끝, 만남과 결별 그리고 또 만남. 공동체는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준다.     


선택을 할 수 없는 공동체가 있고, 선택으로만 가능한 공동체가 있다. 가입과 탈퇴는 관계의 횟수와 관련된다. 관계가 없다면 탈퇴가 된 것이다. 하지만 전자는 횟수와 상관없이 유지되는 속성이 있다. 후자는 그렇지 못하다. 그러므로 내가 선택한 공동체일수록 속성에 대한 적응과 반응이 중요시된다. 개인을 강제하는 공동체는 더 이상 공동체가 아니다. 개인과 공동체의 상호 긍정적 효과가 발생하여야 존속과 존재 이유가 된다.      


함께하면 알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미 함께하기 때문에 앞에서 이야기한 사실들이 내게 일어나고 있다. 내가 공동체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개인적 이기심과 이타심이 작용하면서 공동체는 요동친다. 개성과 취향에 따라 선택의 어려움이 따른다. 무엇이 선택되었다면 그 선택에는 모두의 만족이 포함된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그래도 공동체가 잘 운영된다면 회원들의 배려와 우정이 매우 돈독하다는 증거다. 선택에 관여된 사람들의 생각과 판단도 중요하다. 모두의 의견을 들었을 것이고, 균형을 맞추려고 했을 것이다.      


함께한다는 것은 기적이다. 다른 것을 다르다고 이해하는 것. 여럿의 개인 취향을 이해하는 것. 자신의 취향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선택을 하는 것. 평등과 자유의 그 어디쯤을 아는 것. 공평과 불공평의 균형을 잡는 것. 불완전함을 극복하는 것. 때로는 어정쩡한 시간을 견뎌내는 것. 이와 같은 공동체적 삶의 역량은 기적을 가능하게 한다. 함께하면 알게 된다.




“내 이야기 들어주어서 고마워.”                         

권창숙


상호 이익보다 상호 신뢰가 사람 사이를 더 튼튼하게 묶어준다.
- H.L. 멘켄


가장 작은 공동체는 부부다.

즉, 두 사람만 모여도 공동체라 할 수 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 있고자 결혼이란 제도를 선택했음에도 서로를 다 알지 못하여 살아가는 내내 서로를 알고 맞춰가는 여정을 함께 하는 것이 결혼생활이다.

결혼은 하는 것보다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렵다. 사랑이라는 감정과 별개로 누군가와 함께 생활하는 것은 받아들임의 마음이 필요하다.

우선 나는 상대와 함께 오는 가족을 다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은 지금껏 내가 가지고 있던 관념, 습관, 사고의 틀에 변화가 생기는 것이다. 문화의 차이는 생각보다 매우 크다. 같은 사건을 경험해도 느끼는 감정이 다르다. 남녀의 차이가 아니라 인식, 문화의 차이다. 특히 표현 방식의 차이는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기도 한다. 서로의 바램과 요구가 다르기에 받아들임은 한쪽만의 노력으로 되지 않는다. 모두의 이해와 노력이 필요하다.

나의 경우를 보면 남편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리고 “그래, 그럴 수 있어. 충분히 그렇게 생각될 수 있지.”라고 이야기한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다른 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자 하며 좋은 관계를 맺고자 하는 기본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기에 남편이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위안이 된 나는 가능하면 모든 것을 따라준다. 남편도 남편대로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완벽한 사람이 없듯이 완벽한 공동체도 없다. 서로의 진정성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공동체는 진화할 뿐이다.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이 존재하는     

최정연


말을 처음 알게 된 건 윤하의 노래 때문이었다. 즐겨 듣는 라디오에 자주 나오기도 했고 좋아하는 풍이라 따라서 흥얼거리기 시작했는데 끝자락에 나오는 사건의 지평선이라는 단어가 꽤 인상적이었다. 사건과 지평선은 도대체 어떤 상관관계가 있길래 사건의 지평선이 제목이 되었을까.      


하나 둘 추억이 떠오르면 많이 많이 그리워할 거야
고마웠어요. 그래도 이제는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그저 창작된 언어쯤으로 생각하던 나는 TV에 나온 어느 과학자의 설명에 감탄했다. 어떤 지점에서 일어난 사건이 어느 영역 바깥쪽에 있는 관측자에게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려도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때, 그 시·공간 영역의 경계를 사건의 지평선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특히, 우주의 어떤 지점에 있는 관측자가 영원히 기다려도 관측할 수 없는 먼 우주의 경계면을 우주론적 사건의 지평선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시간에 따라 점점 멀어지므로 사건의 지평선 너머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영원히 우리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어쩐지 이별 노래에 왜 그렇게나 많은 별과 빛, 유리병과 바람, 지평선 같은 과학단어가 자주 등장하더라니. ‘사라진 별의 자리 아스라이 하얀빛은 그리움으로 남겠지만, 서로의 끝이 아닌 새로운 길모퉁이 익숙함에 진심을 속이지 말자’란 의미도 그제야 제대로 알아차린 듯싶다. 그나저나, 이게 과학용어라니. 어쩌면 이렇게까지 인문학적으로 멋지게 표현했을까 생각할수록 감탄스러웠다.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 수밖에 없는 우리는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고, 또 누군가로부터는 받으며 산다. 특히,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가족은 누군가에게는 생명줄과도 같은 존재이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숨 하나, 표정 하나에도 미묘한 변화를 직감하고 살피게 되는데 가족이나 연인처럼 친밀함이 깊을수록 하품마저 전염력이 높다고 하니 틀린 말은 아니다. 어느 공동체든 가족만큼은 아닐지라도 구성원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때때로 부담과 피로감을 느끼기도 한다. 오래전 농경사회에서는 살아남기 위해 똘똘 뭉쳐야만 했다지만 다변화된 지식사회로 변화한 지금은 오히려 각자의 영역과 시간, 서로 다른 취향을 존중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앞으로도 어떤 공동체를 끊임없이 만들며 살아가겠지만, 그 모두를 나의 사건으로 오롯이 안고 살 수 없음을 이제는 안다. 그러니,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누군가의 지평선 너머에 있는지 가까이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사건의 지평선이 그어질 수 있는 여유를 가진 공동체가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별이 사건의 지평선인 것처럼 만남도 그럴 수 있으니 말이다.     




딩굴딩굴공작소(DDF; Dinggul Dinggul Factory)는 배움을 통해 자신의 삶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평생학습공동체 '삶과앎 모두의 평생학습'의 공유공간이자. 일상을 작당하는 실천공동체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작심(作心)3일] 29편. '발자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