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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딩굴딩굴공작소 Sep 03. 2023

배움으로 삶을 디자인하는 #평생교육사

일본 月刊社会教育 No.808(2023년 9월호)에 수록된 글


  일본의 공민관 민간에 위탁하기 시작하면서 직영 공민관의 사회교육주사(공무원)처럼 사회교육 전담인력에게 '사회교육사'라는 칭호를 사용하게 했다. 아직은 제도화되지는 않았기에, 우리나라 평생교육사 제도를 벤치마킹하고 있다. 이에, 작년부터 여러 경로를 통해 교류를 하고 있으며, 그 일환으로 평생교육사의 삶에 대한 원고 요청이 있어 이 글을 작성했다.



  2003년 평생교육사로 첫발을 내디딘 지 20년이 되었다. 평생교육사로서의 삶이 그리 녹록지 않았지만, 나름 즐겁고 의미 있는 생활이었다. 물론 앞으로의 삶도 평생교육사로서 더 의미 있는 삶을 만들어갈 생각이다.  지난 20년을 되돌아보면 크게 세 가지의 삶으로 집약된다. 평생학습도시를 중심으로 평생교육 현장에서 전문가로 활동했던 1기와 한국평생교육사협회를 중심으로 한 평생교육사 권익보호를 위한 시민활동의 2기에 이어 현재 살고 있는 부산에서 소규모의 평생학습공동체 활동을 통해 일상의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3기의 삶이다.           


평생교육사로서의 삶 1기 : 평생교육 현장 전문가     

  2000년 대학을 졸업하면서 ‘평생교육사’ 자격증을 받았다. 1982년 사회교육법이 제정되고 ‘사회교육전문요원’ 자격증을 발급했었는데, 1999년에 사회교육법이 폐기되고 평생교육법이 제정되면서 평생교육사 자격 제도가 만들어졌다. 2000년에 처음 자격증 발급이 시작됐는데, 그 첫 자격증을 받은 것이다.      

  생애주기가 늘어나고 새로운 지식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성장기 일정 시기 동안만 배우는 학교교육은 한계에 다다랐고 이를 대안할 수 있는 것이 평생교육이라고 배웠기에 평생교육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직무를 수행하는 평생교육사에 대해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2001년부터 시작된 ‘평생학습도시 조성사업’에 내가 살고 있는 부산 해운대구가 2002년에 선정되었고, 2003년에 나는 해운대구 평생학습센터(해운대구청 소속)에서 평생교육사로 근무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당시 관공서에서 평생교육사를 채용한 사례가 거의 없었기에 1년 계약직으로 채용했지만, 조건보다는 미래를 보며 평생교육사의 삶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참고할만한 모델이 없어 막막했지만, 연구자료와 해외 사례 등 다양한 정보를 접하면서 나름의 체계를 만들어 평생학습도시 조성사업에 필요한 평생교육사업 및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평생학습도시 초기에는 저변 확산을 위해 일을 도와줄 주민들이 필요해서 ‘평생학습 자원활동가 양성’을 통해 많은 주민들이 동참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들과 함께 많은 활동을 펼쳐나가며 자연스럽게 평생학습동아리 활동으로 연결되었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평생학습을 생활화할 수 있는 평생학습동아리 활동은 여전히 ‘평생학습의 꽃’으로 불리고 있다. 평생학습동아리 회원들이 모이면 못해낼 것들이 없었다. 당시 주 5일 근무제가 시작되면서 매월 넷째 주 토요일에 학교도 쉬었다. 학교를 안 간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맞벌이 가정의 아이들은 가정과 학교, 지역사회의 사각지대에 놓일 우려가 컸다.     

  이러한 사회적인 이슈가 생겼을 때, 평생학습동아리 회장들과 함께 해결방안을 논의하고 한 학교에 연락해 쉬는 토요일에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로 했다. 10여 개의 평생학습동아리가 참여해 즐거운 체험학습을 성공적으로 운영한 후 성과가 좋아 예산을 확보하게 되고 매월 ‘평생학습광장’이라는 이름으로 해운대지역을 순회하면서 지역사회 문제 해결형 활동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지역주민들의 평생학습참여는 평생교육사로서 천군만마를 얻는 것과 같았다. 평생학습동아리, 평생학습 자원활동가, 평생학습강사 등 다양한 주민 전문가 육성을 통해 파트너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은 평생학습도시 평생교육사가 현장 전문가로 성장하는 디딤돌이 되었다. 이러한 역량을 기반으로 광역단위 평생교육진흥원 설립을 설계하는 등 전문적인 활동으로 이어졌다.       

   

평생교육사로서의 삶 2기 : 평생교육사 권익 활동가     

  2012년 6월 울산평생교육진흥원 설립 계획서를 작성한 것을 끝으로 관공서에서의 평생교육사 직무를 그만두었다. 프리랜서로 자리를 잡고 평생교육관련 연구, 컨설팅, 강의를 하면서 평생교육사 권익을 위한 활동에 적극 동참했다. 2004년에 사단법인 한국평생교육사협회 부산경남지부를 설립했지만, 다른 지역으로 이직하면서 연결고리가 끊어졌지만, 다시 부산으로 돌아온 후 2013년에 부산지회 설립을 재추진하여 부산지역 평생교육사 권익을 위한 활동을 펼쳐나갔다.     

  2017년에 한국평생교육사협회(이하 협회)가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면서 사무총장직을 맡게 되었다. 평생교육법이 제정된 지 20년 가까이 되었고 한국의 평생교육은 많은 성장을 이뤘지만, 정작 평생교육사의 일자리와 처우는 거의 개선되지 않고 있었기에 협회에서 해야 할 현안 문제들이 산적해 있었다.     

  내부적으로는 지역 간의 불균형으로 인해 지역 회원들과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전국적인 단체로서의 위상 정립이 쉽지 않았고. 대외적으로 평생교육사 권익신장을 위한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내고 있으나 허망한 메아리처럼 느껴졌다.     

  이 당시 한국은 소위 촛불혁명으로 박근혜 정부가 퇴진하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는 등 정치적 격동의 시기였다. 이때 문재인 정부는 촛불혁명의 가치를 계승하기 위해 국민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광화문1번가’를 개설했다. 협회는 전국의 평생교육사들을 규합해 평생교육의 가치를 세상에 전하기 위한 집회 활동을 펼쳤다. 이를 계기로 많은 지역에서 지회를 만들기 시작했고, 협회는 전국적인 단체의 면모를 갖춰가기 시작했다.     

  2019년에 (사)한국평생교육사협회 제5대 회장에 취임했다. 더욱더 평생교육사들에게 다가가고 평생교육사를 세상에 알리고자 ‘평생교육사’를 브랜드 네이밍으로 하는 활동을 만들어 냈다. 협회 활동을 알리는 월간 홍보지 ‘월간 평생교육사’, 유튜브 ‘평생교육사TV’, ‘평생교육사의 날 제정’ 등 다양한 정보 공유 채널과 회원들의 참여를 위한 이벤트를 통해 협회가 평생교육사 곁에 있음을 느끼게 했다.      

  대외적으로 ‘평생교육사 직렬 신설’ 및 ‘평생교육사 보수교육 의무화’ 등을 위한 정치 활동과 더불어 대한민국 평생교육 5대 단체와 공동으로 ‘보편적 평생교육 실현을 위한 100만인 서명 운동’ 등 시민단체로의 역할 또한 적극적으로 수행했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직접적인 만남이 어렵게 되었어도 온라인 소통 채널을 가동해 지속적인 교류에 힘을 쏟았고, 코로나19 극복 캠페인, 기부 활동, 공론장, 제3세계 교육물품 기부 등 평생교육의 사회적 기여를 위한 활동도 놓치지 않고 추진했다. 3년 임기 동안 2년 정도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해야 할 일들을 제대로 하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한 채 제6대 출범을 축하하며 회장 임기를 마무리했다.       

   

평생교육사로서의 삶 3기 : 삶과앎 변화 촉진자     

  한국평생교육사협회 회장을 퇴임한 이후 원래 해왔던 일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프리랜서 생활을 하면서 ‘삶과앎 모두의 평생학습’이라는 개인회사를 설립하고 평생학습 공유공간 ‘딩굴딩굴공작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협회장이 된 후 다소 소홀해졌던 일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해야 하는 일보다 하고 싶은 일들을 더 많이 할 수 있어 홀가분해진 기분도 들었다.     

  6명의 회원이 거의 매주 만나 학습과 실천 활동을 해나갔다. 이전부터 해오던 인문학 독서모임 ‘여기 인문학 있네! 남다른 정도 있네!’와 기획 수다 ‘한술 더 떠’에 이어, 각자의 생각을 모아 영상으로 제작하는 ‘思考뭉치’와 매월 3일에 우리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作心3일‘ 프로젝트가 더해져 활동이 매우 풍성해졌다. 올해부터는 회원 개개인의 개성을 담은 ’브랜딩 드립 커피‘를 제작해 지인들에게 선물하고 있다. 그 외에도 학습탐방 등 다양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기획하고 실천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잠시 멈췄던 해외 학습탐방도 올해 재개했다. 2018년 마쓰다 무네아키의 책 『지적 자본론』에서 소개한 다케오시립도서관을 직접 방문했었고, 이듬해 2019년에는 후지요시 마사하루의 책 『이토록 멋진 마을』에서 소개한 일본의 3대 행복도시 중 하나인 후쿠이현을 방문했었다.      

  2020년에는 대만을 방문하기 위해 항공권까지 예매했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취소되었고 코로나 사태가 진정된 올해 3월에 싱가포르 탐방을 다녀왔다. 아시아의 여러 나라 문화를 한 번에 체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매력적이었다. 해외 탐방은 단순 관광이나 여행이 아닌 학습과 연계한 경험을 공유하는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다. 내년에는 2020년에 추진했다 취소했던 대만으로 갈 계획이다.      

  더불어 부산 평생교육 활성화를 위한 실천 활동도 계속 추진하고 있다. 대통령 선거,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때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평생교육 단체들과 연합해 정책 제안 및 질의서를 만들어 보내고, 공론장을 만들어 평생교육을 이슈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왔다. 원했던 성과를 만들어내지는 못했지만, 부산이 처한 평생교육 현황을 냉철하게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 공공기관 통폐합으로 인해 부산평생교육진흥원이 축소 통합되어 감에 따라 이를 저지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등 여러모로 아픔을 겪고 있다.     

  제대로 규합되지 못하는 평생교육계의 모습을 보면서 실망보다 경험 부족의 아픔이 더 컸기에, 더욱더 세밀한 실천 전략을 만들어가기 위한 새로운 준비를 하고 있다. 어떠한 문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뭉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지속적으로 교류하면서 실효성있는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작은 규모의 학습과 토론장을 만들고자 한다.     

  대한민국은 모든 것이 서울 중심으로 이뤄진다. 평생교육 또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 매우 활발하게 공론장들이 열리고 있다. 부산은 제2의 도시지만,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평생교육 또한 상대적으로 매우 열악한 편이다. 지금의 평생학습 공동체 활동을 더욱 확산적으로 추진해 부산에서도 서울 못지않은 평생교육 공론장을 만들고 싶은 마음에 지금도 새로운 활동을 기획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 평생교육사로서 지금까지 걸어왔던 삶을 간단하게나마 정리해 봤다. 20년 전 평생교육사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마음은 배움을 멈추지 않는 것이었다. 평생교육사는 평생학습자이어야 하고 배움을 통해 자신의 삶을 잘 디자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오늘도 내 일상을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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