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연

사연 없는 서사는 없는 법이니까

by 묘연한삶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묻는 클로버의 질문​에 답해본다.

‘응,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 있어. 한 번은 포기해도 두 번은 포기하고 싶지 않아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으니까. 요즘은 그저 매일 아침을 맞이하는 것에 최선을 다하며 잎새뜨기를 하고 있어’





친구들에게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무작정 상경하게 된 10대의 시작부터, 집에서 빨리 독립하고 싶어 새벽엔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 생활을 병행했지만 가장 행복했던 20대의 시작. 누군가는 젊음이 저물어 간다며 앞자리가 바뀌는 것을 슬퍼할 때, 단축 근무를 하며 아이 하원 시간에 맞추어 달려가고 아이를 재운 뒤에는 못다 한 일을 새벽까지 더해보느라 정신없었던 30대의 시작- 바짝 다가온 40대의 시작은 어떨까.


이번 생에 후회는 없는 것 같다. 다시 돌아간다 해도 그보다 최선을 다할 자신은 없기 때문이다. 사연 없는 사람이 있겠냐만은, 아직 짧다면 짧은 내 삶도 꽤나 롤러코스터를 거쳐 왔다.


사연이라고 해봤자, 드라마에서 흔히 보는 뻔한 클리셰 같은 이야기다. 스물여섯. 뉴질랜드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고 출국 준비를 하던 어느 여름, 아이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 보겠다는 선택을 바로 포기했다.


만난 지 2년, 홀어머니에 외동아들인 남자친구. 의지가 약해 보인다는 부모님의 반대를 꺾고 두 달 만에 서둘러 결혼식을 올렸다. 해외 멀리가 아닐지어도 본가에서 독립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작은 기쁨이 올라왔지만, 정작 살 집을 구하지 못해 결혼식을 치르고도 한동안 따로 살아야 했다. 수중에는 워홀 준비로 모아두었던 300만 원, 친정의 도움을 받아 작은 집을 마련한 뒤에도 출산을 2주 앞둘 때까지 일을 했다.


결혼을 하고 나서야 남편 집이 기초생활수급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남편은 아직 학생이었고, 결혼 이후에도 남편은 취업 대신 시험 준비를 선택했다. 결국 육아와 생계, 심지어 남편 학비까지도 홀로 책임져야 했다. 그렇게 우리 역시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었다. 성실하지 못했던 남편은 이따금 몰래 독서실 대신 피시방이나 술집으로 향했고 두 번의 탈락 끝에 2년의 수험기간은 끝이 났다.


영상 편집 외주를 맡아 며칠간 밤을 새우며 30만 원을 벌었던 나와, 수험기간 비싼 위스키를 마시러 다니던 남편. 술에 취해 길에 쓰러져 있는 남편을 발견하고 경비실과 경찰서에서 연락을 받던 새벽의 여러 날들. 개인파산으로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없다며 내 카드를 빌려 성형수술을 한 시어머니. 친정엄마와 몸싸움을 벌이다가, 세 살짜리 아이를 무릎에 앉힌 채 차를 몰아 경찰서로 달려가 결국 엄마를 신고했던 일까지.


왜 그렇게 무모한 결혼을 했냐고 물어본다면, 그저 아이를 지키고 싶었다. 서둘러 세상에 내려온 너를 내가 막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예정일이 3월인 아이에게 다가올 ‘봄’의 의미를 담아 ‘하루’라는 태명을 붙여주었다.


하나 더 보태자면, 그를 사랑했다. 사랑해서, 아무런 준비 없는 그의 꿈을 지지해주고 싶었다. 그러면 나의 차례도 돌아올 거라 믿었다. 사실, 그보다 나를 믿었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드라마였다면 갖은 고생을 거친 여주인공은 끝내 보상을 받아 해피엔딩에 이르렀을까. 그저 가족 셋이 손을 잡고 장을 보러 가고 공원에 놀러 가는 평범한 하루. 그런 날을 바라며 보낸 나의 스물아홉은 그렇게 흘러갔다.





“나는 타자를 통하여 나 자신을 이해한다.”

자기 자신은 자신이 아닌 것으로부터 자신이 된다

- 타자로서 자기 자신 Oneself as Anot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