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
클로버와 함께 했던 제주의 어느 겨울밤. 나는 울며 깊숙이 삼켜두었던 고백을 토해냈다. 내가 다 망쳤다고.
‘새 아이’가 가지고 싶노라고.
‘그날 밤’의 소동 이후, 그는 잘못이 없는 본인이 나가 있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며 무작정 짐을 챙겨 집으로 다시 들어왔고 다시금 불편한 동거가 이어졌다. 사실, 그 이후 한동안의 기억은 새까맣다. 사진첩을 뒤적여봐도 행복해 보이는 사진들만 가득하다. 그런 순간들을 붙잡으려 야무지게도 사진과 영상으로 남겨두었다. 다만, 해맑게 웃는 '하루'의 기억 사이에 이질감이 느껴지는 스크린샷들만이 채택되지 않은 증거 마냥 남겨져 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그가 알코올에 절여져 주차장까지 실려온 날, 나는 처음으로 그의 핸드폰을 열었다. 축 늘어진 손가락을 화면에 대자, 너무도 쉽게 보고 싶지 않았던 것들이 드러났다. 메신저 내용은 은연중에 알고 있던 것 상상 이상이었다. 그는 일거수일투족 엄마에게 상황을 보고 하고 있었다. 물론 변명이나 반발을 해보려는 조금의 반항은 있었으나, 지독한 가스라이팅 아래 그 의지는 바로 수그러들었다.
나, 그리고 우리 엄마를 향한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비난. 나에게 뱉어낸 미친 말들마저 그녀가 담고 있던 것의 극히 일부였다고 생각하니 화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났다. 내 편을 드는 척 알코올 중독인 아들 흉을 봤을 때조차도 뒤에선 나를 한마디 한마디로 찢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도망쳤다.
하루는 나보다 그 사람들을 사랑했기에. 아이는 본인에게만 쏟아지는 관심을 사랑이라 믿었기에.
우리 엄마를 집에서 내쫓으려 경찰까지 불렀던 사람으로부터. 공부를 하던 2년 동안 생계와 육아를 책임졌던 내게, 일이 우선인 엄마 때문에 하루는 7시까지 어린이집에 있어야 하냐고 따져 물었던 사람으로부터. 그리고 겨우 친정 도움을 받아 내 손으로 청약 넣어 당첨된 내 집에서 아이를 키우겠다는 걸 보고 집도, 아이도 불법점유하고 있다는, 모든 원인이 첨부터 장모가 개입되고부터 시작된 거처럼 몰아가라는 사람으로부터. 가족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사람들로부터.
온라인에서 좋아요를 수없이 받은 어느 13살 아이의 시가 있다. 도망쳤다고 혼나는 것은 인간밖에 없다.
나의 세상에서 ‘자유와 관계’는 어떻게 해석되냐고 물었지? 흔들리는 디스코팡팡 판 위에서 평온을 유지하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다고 생각해. 고수처럼 센터에서 리듬을 타며 중심을 잡거나, 창피함을 무릅쓰고 손을 번쩍 들거나. “저 좀 내려주세요!”
판 밖에서 한참을 구경하다보면 그 모습이 우습다가도, 어떻게 하면 즐길 수 있을지 알 것 같기도 해. 그럼 다음 판에 다시 줄을 서는거지. 한참이 지나고 깨달은 건, 자유롭기 위해 우리는 서로를 흘려보낼 수 있어야 한다는거야. 내가 그렇게 도망쳤지만 하루를 다시 만난 것처럼 말이야. 다시 함께 살게 되었을 때 하루가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나네. “엄마, 왜 그런 선택을 했어? 엄마는 나를 돌봐주지 않잖아”
우리는 각자가 존재로 자유로지고 서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고 나서야, 다시 관계라는 판에 올라서 그 흔들림을 즐길 수 있는 것 같아.
어떤 사람들은 자연이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호랑이를 가둬 두기로 해요.
어떤 사람들은 자연은… 호랑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호랑이를 그대로 둬요.
- <호랑이를 사랑하는 법>
나는, 여전히 시든 꽃들을 버리는 게 싫어. 그래서 꽃 선물이 아니라, 꽃을 함께 보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법이라 말했어.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나는, 이제 조금은 관계에 있어 성장한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