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 글씨

당신의 ‘A'는 무엇인가요

by 묘연한삶


하루는 종종 나에게 퀴즈를 내곤 한다.

“엄마 엄마 맞춰봐.

한 사람이 자율주행차를 운전하고 가고 있었어. 그런데 쭉 가면 아이들을 치게 되는 상황이고, 피하려고 왼쪽으로 핸들을 돌리면 강이 있어서 차가 물에 빠지는 상황이야.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지 AI에게 물어봤대.

어떻게 대답했게?”


“글세, 어떻게 대답했을까?”


하루

“다른 AI는 모두 두 가지 답 중 하나를 선택했는데, 한 AI만 이렇게 답했대. 해당 자율주행차는 브레이크가 고장 나지 않았습니다. 브레이크를 밟으면 됩니다. 그래서 모두 살았대”


“그러네. 두 가지 중 반드시 하나가 답인 건 아닌데 말이야”


하루

“맞아. 그리고 선택하지 않는다는 답도 있지?”



우리는 흔히 선택의 오류에 빠지곤 한다. A와 B 중 무엇을 선택할까. 혹은 할 것인가 말 건인가. 눈앞에 보이는 두 가지 선택지 아래에 수많은 가능성이 열려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서랍 속 과거의 글에 현재를 덧입히는 글들의 발행이 끝나고 현시점의 live로 돌아온 지금 이 순간, 나도 클로버의 질문​에 처음으로 답장을 써보려 해.

“너에게 현재 산소 호흡기는 무엇이니?"


현실에서 나를 나아가게 하는 힘이 클로버의 답과 같이 ‘책임감'이라면, 그 사이사이의 틈에 숨을 불어넣어 주는 산소호흡기는 ‘혼자 있는 시간’이야.


어제 그런 이야기를 들었어. 나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직관적인 사람인 것 같다고. 사실 아직도 모든 순간 주변을 감지하고 있는 사람인데 말이야.


홀로 있는 나는 엄마일 자격을 재판받을 필요도, 내 눈앞의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sensing 할 필요도 없이 자유로워. 머릿속에선 끊임없이 나와 대화를 하고 있으니 외롭지도, 음악 한 점 없는 정적이 적막하지도 않아.


혼자 있을 때면 간혹 품 안에 숨겨 놓은 ‘A'를 들여다보곤 해. 수없이 따라 쓴 A. 새로 마음을 터놓고 싶은 상대가 나타났을 때 먼저 내보이는 가장 어두운 면. A가 수면 위로 떠올라 재판대에 올랐을 때를 상상해 봐. 나는 던져지는 돌을 맞을까 아니면 그렇게라도 도망치고 싶었다 변명을 할까.






사람들은 A와 B사이의 진실을 자신의 거울과 잣대로 읽을 거야. 괜찮아. 어찌 되었든 서쪽 마녀는 이제 스스로를 사랑할 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 요한복음 8: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