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려온 고양이

위에서 부어지는 경험

by 묘연한삶


동물은 주인에게 버려졌을 때, 버려진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주인을 놓쳤다고 믿는다고 한다. 그리고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선택을 한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주인에게는 잘못이 없다는 강한 믿음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A는 마치 나를 고양이처럼 대했다. 늘 주도적으로 나의 일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일들을 처리해야 했던 나에게는 처음 경험하는 것이었다. 그저 있는 그대로, 사랑받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역할. 한 주간 여러 전쟁터에서 투닥거리며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와도 그의 집에는 아무래도 괜찮은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매번 이리저리 바쁘게 보내는 성향의 나도 그곳에선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해가 저물면 느지막이 드라이브를 가는 주말을 보낼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받으면 머릿속으로 조용히 기억해 두었다가 그만큼 돌려줄 것을 고민하는 성향이었던 나를 포기하게 만든 사람. 잔 위로 수도꼭지를 틀어둔 것처럼 끊임없이 물이 부어지면 넘친 물의 양은 계산이 불가능해진다.


이제는 나의 일부로 남은 조용한 그림자.

좋은 사랑을 했던 경험은 나를 또 어디로 데려다줄까

그리고 어느 부분에서 나의 발목을 잡아끌어낼까

여전히,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고 싶다.



바람이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둬.
작은 살랑임이든, 어느 순간 커져버릴 태풍이든
모든 건 또 변하고 바람의 그림자 또한 네가 될 테니




난 여전히 네가 행복하길 바라



:+: 2026.04.28

클로버가 물었지. 나에게 위에서 부어주는 사람이 있냐고. 나는 잠시 고민한 뒤 단호하게 말했어 “없어”라고.

지속적이지 않았더라도 나에겐 분명 그런 순간들이 있었을 거야. 그리고 그것들이 이미 나의 일부가 된 것이 지금 이 순간이겠지.


방금 클로버의 지난 편지​를 뒤늦게 확인했어. 정해져 있던 25회의 목차들의 제목이, 순서가 그리고 문체가 이리저리 변하는 모습이 재미있다고 생각했어.



“그날 밤에, ‘마을’을 만들고 싶다던 이유에 대해서 말해줬잖아. 마음에 안 드는데 내게 주어진 거 말고 ,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것 말고 내가 원하는 것을 만들어서 원하는 것을 갖고 싶다고.. 맞나? 난 이렇게 들렸는데:) “


며칠 전 이 말에 이어서 나에게 엄청난 창조의 힘이 느껴졌다고 말해줬지. 나는 지금 클로버의 글에서 그 힘을 느껴. 잠들어 있던 것들이 깨어나는 시기가 되었네. 하지만 알지? 잠들어 있을 때나 깨어 있을 때나 그대는 늘 나에게, 그리고 누군가에게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는 거.


클로버가 추천해 준 드라마 Ripple​ 에서 고이 받아 적어 두었던 문장으로 13화를 끝내고 싶어졌어




사랑을 택하면 상실을 피할 수 없다
위험을 알면서도 하는 선택

우린 늘 시간이 더 있다고 생각해요
그저 사랑을 있는 그대로
혹은 있었던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어떨까요?
그것이 남긴 흔적이 존재한다는 걸 알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