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속에 숨은 감정
“됐어.”
그 말은 짧았다.
하지만 그 짧은 말 한마디에
나는 자꾸만 마음이 걸렸다.
처음엔 단순히 “괜찮아”의 다른 말쯤으로 여겼다.
도움이 필요 없다는 의미 거나, 그 순간은 그저 혼자 있고 싶다는 뜻.
하지만 아이가 자꾸 그 말을 반복할수록,
나는 조금씩 그 말 뒤에 숨은 감정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됐어”는 자주 쓰는 말이지만
감정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더 복잡하고 아프다.
엄마의 말을 듣고 반발해 보지만
어차피 내 말은 들어주지 않을 거라는 가벼운 포기,
자세한 설명을 하고 싶지 않은 귀찮음,
그보다 더 밑바닥에는
이미 기분이 상해버렸다는 침묵의 항의가 숨어 있을 때도 있다.
"됐어"는 감정을 표현하는 말이 아니라,
감정을 숨기는 말인 것 같다.
표현 대신 닫기, 말 대신 끊기.
그리고 그 안에
아이의 실망이나 피곤함, 상처 같은 것들이 살짝 고개를 내민다.
어른인 나는 익숙하다.
기분이 상했을 때
자세히 설명할 힘이 없을 때
상대가 이해할 거라 기대하지 않을 때
“됐어”라고 말하고 돌아서던 순간들.
아이도 그걸 배운 걸까.
아니면, 원래부터 알고 있었던 걸까.
나는 종종 그 말 뒤에
설명해 봤자 소용없다는 작은 체념을 본다.
말하지 않아도 엄마는 안다고 믿고 싶었지만
말해도 바뀌지 않을 걸 아는 순간,
아이의 말문은 닫히고 “됐어” 하나만 남는다.
그 말을 들을 때
나는 이제 예전처럼 바로 말을 던지지 않는다.
그 짧은 말에 상처받았다며 더 상처 주는 말은 하지 않으려 한다.
아이의 "됐어"는
내가 꺼낸 말보다 앞선 감정의 반응이고,
들어주지 못한 타이밍에 대한 조용한 시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끔은 그냥
같이 가만히 있어주는 것으로,
대답 대신 존중의 침묵으로,
아이의 ‘됐어’를 받아들이려고 한다.
설명하지 않아도
사랑받는다는 걸
조금 늦게라도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
딸의 “됐어”는
감정을 삼킨 말이었다.
나는 이제,
그 말속에 담긴 하지 못한 말들을
천천히 기다려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