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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묘호랑 Jan 10. 2019

[확장] 로렌스 애니웨이

자기 세계 확장: 우리는 다른 사람이 되는 법을 모른다

로렌스는 고등학교 문학 교사다. 그가 쓴 소설은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여자친구인 프레드와 행복한 동거 생활 중이다. 치매를 앓는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가 어려움을 겪고 있긴 하지만, 로렌스가 부모님을 부양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런데,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이는 로렌스는 문제를 일으킨다. 사실, 그는 줄곧 여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시달려 왔다. 프레드와의 행복한 생활도 그런 욕망을 억누르지는 못한다. 참고 참다 폭발한 그는 프레드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무척 놀라지만, 그녀는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로렌스를 지지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가 예쁘게 여장하도록 돕는다. 곱게 화장을 하고, 여성복을 차려 입는 것을 지켜 본다. 여자 화장실에서 낑낑대며 스타킹을 신고 있는데, 문 밖에서는 여학생들이 자기를 섹시한 선생이라고 평가했다는 일화를 이야기할 때는, 웃으며 들어준다.  


하지만 인간은, 연인과 가족과 친구들끼리만 살 수 없다. 타인들에게 자기 주장을 관철시키고, 자기 스타일을 전파할 수 있는 미래를 기대하지 못하는 삶은 고통스럽다. 영원히 연인과 가족과 친구들끼리만 아무런 변화가 없는 지상 낙원에서 사는 것은 행복이 아니다. 소설을 쓰던 로렌스가 여장을 시작한 다음에는, 소설가가 아니라 시인이 되어 명성을 얻게 된다는 설정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로렌스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가 더 잘 맞듯이, 소설보다 시가 자기 스타일에 더 적합하다고, 세계의 자기화에 더 잘 어울린다고 여겼을 것이다. 여장을 하는 것과 시를 쓰는 것은 모두 자기화 활동의 연장선상에 있다. 자기화는 끊임없이 이어져야 하고, 이는 알 수 없는 과거가 축적되어 나타난 습관과 스타일을 통해 실현된다. 인간은 자기화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느낄 때, 행복해진다. 오백 캐럿짜리 다이아몬드를 손에 넣는다고 평생을 행복하게 살 수는 없다. 오히려, 오백 캐럿짜리 다이아몬드를 사기 위한 적금이 매달 차곡차곡 쌓여갈 때, 보다 오랫동안 행복을 지속할 수 있다.


그래서, 로렌스는 여자가 되려는 욕망을 억누른 채로 프레드와 함께 영원한 낙원에 머무는 것이 불가능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게 될지라도, 세계 확장은 계속되어야 한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그것이 선악을 알게 해주는 열매라서, 금지된 것이어서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기대 때문이지 않았을까. 선악과 이전에는 똑같은 일상만 반복되었을 것이다. 미래가 없으면 낙원이 아니다.)


아무리 이해심 깊은 프레드라 하더라도 다른 사회 구성원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프레드는 지쳐 간다. 여장 때문에 학교에서 해고 당한 로렌스를, 여장 때문에 시비가 붙어 주먹 다짐 끝에 상처를 입고 집으로 돌아오곤 하는 로렌스를 지켜 보는 프레드는 지쳐 간다. 동네 식당에서는 여장 남자인 로렌스를 신기한 구경거리 쯤으로 여기는 사람들 때문에 분노가 폭발하기도 한다. (왜, 남장 여자는 패션 피플이 되고, 여장 남자는 구경거리가 되는 걸까?)


결국, 불안정한 미래가 너무나 걱정스러웠던 프레드는 낙태를 한다. 결정적으로, 이때 큰 상처를 받는다. 불안했던 미래가 현재로, 현실로 분명히 도착한 것이다. 아이라는 확실한 미래는 지워야 했고, 자신의 육체에는 분명한 생채기를 내야 했다. 이제 현실은 감당할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프레드는 이별을 통보한다. 이별 통보를 받은 로렌스의 입에서는 나비가 날아오른다.


프레드는 미래가 확실한 남자와 결혼하고 애도 낳는다. 로렌스는 새로운 여자친구와 동거 생활을 하며 시를 쓴다. 하지만, 그는 프레드를 잊지 못한다. 그녀를 생각하며 시를 쓴다. 시집을 내고, 프레드에게 부친다. 프레드는 시를 읽고, 그가 자기를 잊지 못해 집 앞에까지 왔었다는 증거를 발견한다. 결국 두 사람은 재회한다.


그들은 변치 않은 마음을 확인하고는 충동적으로 여행을 떠난다. 여행지는 그들이 오래 전부터 고대하던 블랙섬이었다. 하지만, 행복했던 순간은 잠시, 로렌스와 동거하던 여자가 프레드의 남편을 찾아가는 바람에 이 사실이 알려진다. 불안한 미래가 두려워 로렌스를 떠났던 프레드였기에, 남편의 전화를 받고는 이내 가정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그녀는 또다시 불안한 미래를 맞이하기가 두려웠을 것이다. 말다툼 끝에, 프레드가 자신의 아이를 낙태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로렌스는 다음날 아침, 그녀를 홀로 숙소에 남겨둔 채 긴 머리와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홀로 배에 오른다.


두 사람은 일상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로렌스는 다시 또 프레드를 그리워한다. 그래서, 우연히 만난 그녀의 여동생에게서 연락처를 알아낸다. 하지만, 어렵게 프레드와 재회한 로렌스는 자기 세계가 너무나 확고해진 상태였다.


우리는 시간을 견뎌야 한다. 시간을 견딘다는 것은 자기화를 위해 무척이나 애쓰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에게는, 온 세상이라는 단 하나의 경품을 위해 아귀다툼을 벌이는 60억 명 각자에게는, 견뎌 온 시간이, 세월이, 너무나 뼈아프다. 우리는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고단한 희망을 버리고 안락한 절망에 몸을 맡기고 싶을 때마다, 마음을 다잡고 이빨을 꽉 깨물어 왔다. 혹시라도 작은 틈새로, 절망할 수밖에 없는 오만 가지 이유들이 마음속으로 밀려들까봐, 견고한 성벽을 쌓아 왔다. 나이가 들수록, 성은 점점 더 커지고 튼튼해진다.


시인으로서, 독자들에게 세상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야만 하는 로렌스도, 살아가기 위해서는, 진실이 아니라 구태의연한 방법으로 마음속 절망을 막아 내야 한다. 그래서 뻔뻔해진다. 여자가 되기로 결심한 로렌스 때문에 수없이 눈물을 흘렸을 프레드에게, 여장을 시작한 것이 그들의 이별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옛날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의사도 분명히 밝힌다.


오랫동안 지어 온 크고 아름다운 성은, 이제 허물 수 없다. 사과는 쉽지만, 철거는 어렵다. 인간은 늙어서가 아니라, 과거로 돌아갈 수가 없어서 과오를 인정하지 못한다. 그래서, 마음속에 만들어진 과거로부터 미래를 바라봐야만 하는 로렌스는, 세월을 견디며 쌓아 온 크고 아름다운 성벽을 허물 수 없는 로렌스는 어쩔 수도 없이, 프레드에게 둘도 없이 나쁜 놈이 되는 것을 마다치 않고, 스스로도 마음의 상처를 안은 채 돌아간다.


인간은 자기 미래를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사랑할 때는, 그가 자기와 같은 미래를 바라볼 때 뿐이다. 로렌스와 프레드는, 다시는 도저히 화해할 수 없는 사이가 된다. 이제 이야기는 끝이 나야 한다. 영화는 두 사람이 처음으로 만났던, 미래 가득한 순간으로 돌아간다.  

어쩔 수도 없이 당연히, 우리는, 우리들 각각은, 단 한 명의 사람으로서 살아간다.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 방법을 모른다. 우리는, 우리들 각각은, 비유하자면, 일종의 가시덩굴로서 자라난다. 가시덩굴에는 당연히 가시가 돋혀 있기 때문에, 그 속을 헤치고 들어가 볼 수가 없다. 그리고, 어른이 된 가시덩굴은 어린 덩굴처럼 나긋나긋하지 않다. 이제, 생기 가득한 수분이 빠져나가서 바짝 말라 버린 어른 가시덩굴은, 오직 자라온 방향 그대로만 뻗어 나가게 된다. 사춘기를 지나, 혹은 기특하게도 사춘기 시절에 자기를 돌아본다 해도, 이미 너무나 복잡하게 얽히고설키며 자라온 덩굴 속은 손도 댈 수 없게 된다.


이제, 가시덩굴은 오로지 자기가 자라 온 방향대로, 그 스타일대로, 그대로 뻗어나가기만 한다. 로렌스는 하나의 가시덩굴이다. 왜 그렇게 인생을 피곤하게 사느냐고, 제발 생각을 조금만 바꾸고 현명하게 처신하면 훨씬 편한 인생이 당신을 반기러 버선발로 뛰쳐나올 거라고 설득하려 든다면, 로렌스는 ‘로렌스, 애니웨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로렌스는, 이런저런 고난과 역경을 수없이 겪으면서, 프레드와는 서로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 마음을 완전히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만났다 하면 헤어지는 일을 반복하다가, 결국 ‘로렌스, 애니웨이’라는 말로 영화를 끝맺는다.


자기화 작용은 가시덩굴처럼 뻗어나간다. 만약 인간이 사춘기 이전의 일을 모두 기억할 수 있다면, 그리고 이미 굳어진 습관도 손쉽게 고칠 수 있는 존재라면, 자기화를 실천하기보다 자기를 수정하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일 것이다. (아무리 지독한 완벽주의자라 하더라도 과거를 수정할 수는 없다. 완벽주의도 결국은 그때까지 다져 온 과거와 습관을 기반으로 다가오는 미래의 세계를 자기화하려고 뻗어나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세상은, 자연은 이를 원치 않는다. 세상은 오로지 약동하는 생명력만을 보려 한다. 완벽한 가시덩굴이 아니라, 끊임없이 뻗어나가며 아비규환을 창조하는 온갖 가시덩굴로 뒤덮인 천태만상을 감상하려 한다. 우리 각자는,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원인과 과정을 잘 모른다. 하지만, 잠시라도 자기 세계 확장을 지속하지 못하면 괴로움을 느낀다. 그래서 일단은 자기 탐구 이전에, 자기 세계 확장을 지속해야 한다.


그래서 로렌스는 여장을 포기할 수 없다. 왜 여자가 되고 싶은지는 알 수 없지만, 자기화라는 가시덩굴은 계속 뻗어 나가야 한다. 프레드와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임을 의심하지 않는데도, 그렇게도 확실한 행복이 바로 저기 있는데도, 불확실한 미래, 즉 자신의 가시덩굴을 우선시 해야 한다.


프레드와 헤어지고 나면, 그는 언제나 세찬 바람에 긴 머리와 옷자락을 펄럭이며 어딘가를 응시하거나, 꿋꿋이 발걸음을 내딛는다. 프레드와의 이별에 가슴은 찢어졌지만, 그는 갈 길을 간다. 그는 로렌스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법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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