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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묘호랑 Jan 10. 2019

[확장] 노아

자식을 통한 자기 세계 확장


두발가인의 미래

두발가인은 노아의 가족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사람이다. 그는 창조주를 불신하며, 노아가 보기에는 도무지 구원할 가치가 없는 인간의 무리를 이끄는 사람이다. 홍수가 시작될 때, 인간의 무리 중에서 유일하게 노아의 방주에 올라탄 그는, 노아의 둘째 아들인 햄을 자기화하려 한다.


그는, 아직 어려서 자기 세계가 확고하지 않은 햄에게 방금 전에 사람을 쳐죽이는 데 사용한 도끼를 쥐어준다. 지금까지 아버지인 노아 외에는 성인 남성을 접해 보지 못했던 햄에게, 두발가인은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 다른 미래를 제시한다. 햄은 아버지가 자신의 배우자를 구해주지 않자 스스로 인간 세계로 들어가 여자를 데리고 오려 하지만, 홍수가 막 시작되려는 통에 그녀를 군중 속에서 놓치게 되고, 그런 그녀를 돕지 않은 아버지를 원망하고 있던 참이었다.


노년에 접어들던 두발가인은 그의 세계를 이어받을 젊은이가 필요했다. 하지만, 전세계에서 살아남은 이는 노아의 가족과 자신뿐이었다. 영화에서 노아의 가족은 두발가인과는 다른 종족처럼 묘사될 정도로 이질적인 존재지만, 두발가인은 그들 중에서도 자기 세계를 이어받을 자를 찾으려 한다.


때마침 노아의 둘째 아들인 햄에게서 노아의 세계로부터 멀어지려는 조짐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고, 그를 자기화하려 한다. (이런 점에서, 급변하는 현시대의 노부모는 마음 한구석에 슬픔을 간직하고 살아가지 않을까. 자식은 마땅히 부모의 세계를 이어받아야 한다고 생각해 왔던 그들로서는, 급변한 시대 만큼이나 이질적인 자식들이 자기 세계를 온전히 이어받을 수 없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두발가인은 남의 자식 중에서 자기 세계를 이어받을 자를 찾는다. 현시대의 노부모는 친자식에게도 자기 세계를 온전히 물려주기 어렵다.)


두발가인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악한이지만, 그로서는 슬픈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그는 어느 정도는 햄을 자기화하는 데에 성공한다. 그래서 햄에게 거짓말을 시켜 노아를 자기가 있는 곳으로 유인하게 한다. 곧 두 사람은 결투를 벌이게 되고, 두발가인이 우위를 점하는 결정적 순간을 맞이하지만, 뒤에서 이를 지켜보던 햄이 방심하던 두발가인을 칼로 찌른다. 지구상에서 가장 선한 사람으로 창조주에게 인정 받은 노아의 어린 자식이 살인을 저지르게 된 것이다.


두발 가인은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만, 그것도 자기 세계의 확장을 이어갈 자식으로 삼으려던 햄에게 살해를 당하게 되지만, 그런 순간에서도 그는 자기 세계를 이어갈 젊은이를 바라보며 위안을 받는다. (그는 햄에게 남자가 되었음을 축하하며, 노아의 아버지를 죽이고 빼앗았던 뱀의 허물을 햄에게 건네준다. 햄은 살인을 했지만, 아버지를 살렸다. 스스로 삶의 방향을 선택하고 자기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제 그는 두발가인을 죽인 것을 정당화하거나 후회해야 한다. 자기 세계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 그는 이제 방관자가 아니다. 살인이라는 치명적인 행위를 실천한 자는 더이상 자기 삶을 방관할 수 없다. 그는 이제 노아의 둘째 아들이 아니라 한 남자가 된다. 인간이 될 수 있는 최초의 존재는 자기가 아니라 남자나 여자다. 자기가 되고 나서 성별을 정할 수는 없다. 자기가 되기 전에도 남자 화장실과 여자 화장실 중 하나는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두발가인은 자기화했다고 믿었던, 정신적 세계를 이어받을 거라고 믿었던 햄이 스스로의 세계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두발가인 자신을 두발가인의 방식으로 배제하는 상황에 처하고 만다.


노아의 미래

너무나 선한 의지를 지닌 노아는, 방주에 타기 위해 모여든 인간 군상의 악한 행동들을 살펴보고는, 이 세상에서 모든 인간은 사라져야 한다고 믿게 된다. 그래서 홍수가 끝나면, 방주 안의 동물들을 육지로 인도한 다음, 가족들을 모두 죽인 뒤에 자결하기로 결심한다.


이러한 신념은 자기가 이룩한 세계에서 비롯된다. 신념은 한 순간의 결심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반복하며 수정해 온 자기만의 스타일이라서, 미래도 좌지우지한다.

하지만, 인간은 피어나는 희망을 저버릴 수 없다. 갓난 아기를, 그것도 둘씩이나 마주한 할아버지 노아는 거대한 희망에 굴복하고 만다. 갓난 아기를 보지 못했어도, 노아는 결심을 실행에 옮기기 어려웠을 것이다.

흉악한 인간들은 모두 사라졌으며, 어린 시절의 사고 때문에 불임이었던 일라가 임신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떤 면에서도 노아를 절망으로 이끌 만한 것은 없었다. 다만, 노아의 신념만이 절망적이었다.

여기에 비해서, 시간의 노예인 인간에게, 무엇이 보다 찬란한 미래인지 빛보다 빠른 속도로 비교 선택할 수 있는 인간에게, 생기 넘치는 아기는 포기할 수 없는 존재다. 더군다나 직접 자기 손으로 칼을 들어 다가오는 미래를 해치는 것은 신념이라는 머릿속의 언어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그는 결국 칼을 들고 나서 아기들을 해치지 못하고, 머리를 숙여 그들에게 입을 맞춘다. 아기를 본 노아의 가슴에 넘쳐 흐르는 사랑은 일생에 걸쳐 다져 온 신념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노아는 방주에서 내린 다음에는 늘 술에 취해 시간을 보낸다. 그는 평생 동안 유지했던 자기 세계 확장의 방법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방주에서 내린 다음에도, 노아에게 시간은 끊임없이 다가온다. 미래의 노예인 노아는 끊임없이 자기 세계를 확장해야 한다. 그는 인류를 절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인간 생명을 선택했고, 이를 통해 미래를 추구하려 했지만, 평생에 걸쳐 다져 온 신념을 한 번에 부정했기 때문에, 갑자기 자기 세계를 전혀 확장할 수 없게 된다. 대홍수에 대비해 방주를 짓고, 모든 동물을 한 쌍씩 거기에 태우고, 홍수를 피해 배에 타려는 악한 인간들과 싸워 이긴 다음에, 마침내 비가 그친 뒤에 육지에 닿아 임무를 완수한 그에게는 시간의 고문이 시작된다. 자기 세계 확장의 요령을 잊은 그는 술에 취해서야 시간의 고문에 견딜 수 있게 된다.


햄의 미래

햄은 결국 아내로 삼을 여자를 얻지 못한 채로 방주에 오른다. 두발가인을 죽이고 마침내 남자가 된 그는 자기 세계 확장을 시작하는 어른이 되려 한다. 아내가 없는 그에게는 가정이 없으며, 여자를 구하지 못하면 아이도 가질 수 없다.


인터넷도 없던 그 시절에 그가 자기 세계를 확장할 수 있는 방법은 너무나 제한되어 있었다. 있다 해도 그의 게시물에 ‘좋아요’를 눌러줄 수 있는 사람은 자기를 포함해서 8명 뿐이다. (셋째 아들인 야벳은 너무 어려서 자기 세계 확장의 의지가 미미하다. 그도 햄의 나이가 되면 그와 같은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그는 노아와 정반대인 두발가인의 세계를 이어받았다. 더이상은 노아의 아들로서 함께 세계 확장을 도모하기 어렵다. 그러면 시간의 고문에 견디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햄은 여자를 구할 가능성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떠난다. 미래가 전혀 없는 곳에서 괴로움을 견디기 보다는 아주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찾기 위해 떠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런 가혹한 운명을 받아들이는 햄을 보고도 도와줄 방법이 없는 노아는 울음을 터뜨린다. 우리는 햄과 같은 운명을 타고났다. 물론, 우리는 인터넷이 있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 햄처럼 가혹한 환경에 놓여 있지는 않다. 하지만, 확장된 세계는 이내 당연한 것이 되고 만다. 햄이 보기에는 배부른 돼지인 우리는, 방금 전에 씹어 넘긴 음식은 이내 잊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치아와 턱관절과 혀를 괴로워한다. 우리는 가능성을 만들어 내서라도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품고 싶어한다.


인간의 미래

끊임없이 세계의 자기화를 위해 노력해야만 하는 인간은 수명이 다 하기 전에, 자기 세계를 이어받아 더욱 확장시킬 자식을 낳고 기른다. 자식은 부모와 같은 방식으로 세계를 자기화하게 되며, 가장 강력한 연합군이 된다. 하지만, 자기화의 끝은 오로지 ‘홀로’ 온 세상을 모두 차지하는 것이다. 온 세상은 단 한 번에 차지할 수 없으며, 생명이 있는 한 온 세상의 자기화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위해, 사소한 선택을 포함한 수많은 행위들을, 자기화의 연장선상에서 끊임없이 실천해야 한다.


노아와 두발가인이 혈투를 벌일 때, 햄은 결국, 노아가 죽도록 내버려 두든가, 자신이 직접 두발가인을 죽여야 한다. 햄은 선택해야 한다. 선택함으로써, 햄은 특정 방식의 자기화를 실천하게 된다. 과거에 실천한 자기화는 자기라는 완성도를 유지하기 위해 미래의 스타일에도 영향을 끼친다.


‘웨스트월드’ 시즌 2의 결론처럼, 시스템은 인간을 규정할 수 없다. (규정할 필요도 없다. 우주라고도 할 수 있고, 자연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이 세상의 체계는 인간의 모범 사례를 제시하지 않는다. 오로지 무수한 차이 속에서 비교하고 선택하는 자기화를 통해 팽창하려는 생명의 활동, 즉 젊음을 감상하려 할 뿐이다.) 인간에게는 규정으로서 주어진 것이 없다. 각각의 인간은 스스로 비교, 선택을 통해 팽창하면서 자기화의 맥락을 유지하고 스타일을 수정해 나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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