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설계가 끝난 후, 건축주의 할 일 목록

나, 아내, 고양이, 그리고 묘화당(猫花堂)

by 소한

5월 말에 설계가 끝나고, 잠시 글쓰기를 멈추었다. 집의 시공이 시작되기 전까지 건축주가 할 일은 기다림이 대부분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쓸거리가 마땅치 않을 테니, 시공할 때까지 기다리자는 생각이었다. 이때만 해도 빠르면 두 달, 늦어도 세 달 후에는 집을 짓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인생은 내가 생각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설계 단계가 희망으로 가득 찬 꿈이라면, 시공 단계는 걱정이 끊이지 않는 현실이었다. 왜 집 짓다가 십 년 늙는다는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던, 지난 몇 달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다.


251030_03.png 10월의 끝자락이 되어서야 시작된 시공
집 짓다가 정말 십 년 늙을지도 몰라

마지막 설계 미팅이 끝난 후, 설계사사무소에서 전달받은 개략적인 일정은 아래와 같았다. 작년 말에 설계사무소 문을 두드리면서 예상한 일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더위가 끝나고 추위가 찾아오기 전, 초가을에 건축을 시작하는 것이 아내와 나의 목표였다.


- 5월 말: 구조/설비 외주작업

- 6월 말: 허가접수 및 시공견적 요청 (견적작업에 2~3주가량 소요)

- 7월 중순: 시공견적 취합 및 시공사 선정

- 7월 말~8월 초: 착공


건축주와의 논의를 통해 기본 설계를 마치고, 설계사사무소는 실시설계에 돌입한다. 실제로 시공이 가능한 도면을 만드는 과정이다. 이 작업이 완료되어야 시공사가 견적을 낼 수 있다. 시공사를 결정하기 전까지 건축주가 할 일은 두 가지 정도이다.


- 건축허가 접수를 위한 서류 준비. (신분증 사본, 인감증명서, 주민등록등본, 대리인위임장)

- 제작가구 업체 선정


집을 지으면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는 설계사사무소와 계약한 것이다. 건축가가 설계를 제외하고도 도움을 주는 일이 정말 많기 때문이다. 그중에 하나가 건축허가 대행이다. 대리인위임장을 쓰고, 신분증 사본을 비롯한 서류를 전달하면 귀찮고 복잡한 행정 처리를 대행해 준다.


시공 과정에서 필요한 다양한 조언과 필요한 정보도 제공한다. 이때는 믿을만한 제작가구 업체 목록을 알려 주었다. 빌트인 가구가 시공되어 있는 아파트와 달리, 단독주택은 건축주가 직접 가구 업체와 계약을 맺고 시공을 해야 한다. 아파트에서 작업을 주로 하는 한샘, 리바트 등의 대형 업체는 아무래도 단독주택에 익숙하지 않다. 내가 직접 제작가구 업체를 처음부터 찾아야 했다면, 여러모로 고생했을 것이다.


건축가는 적절한 조언, 다양한 정보, 행정 대행을 제공한다

나는 일을 시작하는 아침에 오늘의 할 일 목록을 적는다. 그리고, 일의 우선순위를 정한다. 특별히 급한 일이 있는 게 아니라면, 보통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일을 먼저 처리한다. 내가 일을 처리해 줘야 상대가 작업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소 습관처럼 가능한 한 빨리 건축허가 접수를 위한 서류를 준비했다. 건축허가 접수는 두 달 정도 뒤의 일이겠지만, 먼저 해두는 게 마음이 편했다. 건축사사무소에 메일로 서류를 전달하고, 제작가구 업체 목록을 훑기 시작했다.


목록에는 총 다섯 개의 업체가 적혀 있었다. 연락할 수 있는 전화번호와 홈페이지 또는 블로그 주소가 함께 있었다. 아내와 나는 건축사사무소와의 미팅도 세 곳만 했다. 많이 만나는 건축주는 수십 곳과 만나기도 한다는데, 우리에게는 그런 에너지와 열정은 없었다.


홈페이지나 SNS에 있는 포트폴리오를 보고, 만나고 싶은 업체를 한 두 군데 정도로 추리기로 했다. 이때만 해도 아내와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우리가 다섯 곳의 업체를 모두 만나게 될 거라고는 말이다. 그리고, 집 짓기를 시작한 이후로 처음 겪는 엄청난 스트레스가 찾아올 거란 사실도...

keyword
이전 24화23. 집의 재료를 결정할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