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3주 살기
나 이렇게 오래 쉬어도 되는 걸까?
그런데 서울 다시 가고 싶지는 않다.
답답하다고 생각했던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면 행복할까?
내가 고민하는 것들이 해결될까?
챗바귀같은 일상을 벗어남에 대한 불안
주말부터 자꾸 불안함에 엄습해왔습니다. 3주나 휴가를 낸 것이 또다시 무섭고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걱정이 돼서 그런지 다시 무언가 하고 싶지 않은 무력감이 몰려왔습니다. 아무것도... 날씨는 좋았지만 바람이 세다는 핑계로 다시 카페로 들어갔습니다. 글을 끄적여 봅니다.
몇 시간 후 겨우 몸을 일으켜 도착한 곳은 <소소한 책방>이라는 개인 큐레이팅 서점이었습니다. 그곳에서 한 없이 책을 보았습니다. 책을 보니 선물 주고 싶은 사람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좋아하는 주제의 책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서점을 나와 숙소로 가는 버스를 기다립니다. 이제 제주 버스 앱을 활용하는 것도 어느 정도 숙달이 되었고, 버스를 30분 정도 기다려야 하길래, 정류장 앞 슈퍼에서 잽싸게 컵라면과 과자를 먹었습니다. 이 와중에 제 적응력에 흡족해하며 내적 환호를 보냅니다. '맛있다!'
원래 한 숙소에 3~4일 정도 머무는 것이 여행하는 것이 편하지만, 4월의 제주도가 성수기라 그런지 민박집이 연박 하기에 여유롭지 않아 남은 일정 동안은 매일매일 숙소를 옮겨야 하는 처지었습니다.
오늘은 지난 게스트하우스 사장님께 추천받은 <꽃신 민박>이라는 곳에 머물게 됩니다. '한경면 저지리'라는 동네에 위치하는데, 숙소를 찾아가는 버스에서 구경하니 이 동네가 흡사 파주의 헤이리 예술마을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주 도립으로 운영하는 미술관, 김창렬 미술관 그리고 저지 문화 예술인 마을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민박집으로 들어가는 시골길은 어릴 적 시골 할머니 댁으로 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해가 지기 직전이라 동네를 잠시 산책했는데 역시나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불안을 나누고 해답을 얻다
숙소에 짐을 풀고 하루 종일 불안했던 마음에 대해 카톡으로 친구들과 이야기를 했습니다. 특히 고등학교 때부터 제 마음에 늘 안식을 준 독일에서 공부하는 친구와 이야기를 했습니다. 불안한 제 마음을 들은 친구는 단 한마디를 저에게 해주었습니다.
힘을 좀 빼.
너무 세면 부러져.
"회사가 너무 힘들고 잘해야 된다는 생각을 좀 버리고
지금껏 해왔듯 좋아하는 일 하면서 좀 편안하게 마음을 가져봐.
회사에 언제까지 다닐지 모르겠지만
너무 몰입하거나 힘들게 생각하지 마.
네가 좋아하는 춤추듯이
삶을 조금 힘을 빼고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누군가 매우 믿고 있는 사람에게, 아무리 먼 거리가 떨어져 있는 있더라도, 마음이 통하는 이런 말을 듣고 나니 마음이 신기하게 편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10대 때 만난 친구가 시공간을 뛰어넘어 삼십 대인 저에게 이런 말을 해 주는 것이 참 고맙습니다. 또한 당사자로서 느낀 힘듦이 아니라 옆에서 객관적으로 저를 바라보고, 이해해주고, 공감하고 그렇게 조언해주는 것이 참으로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마치고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아침이 밝아오면 다시 희망이 생긴다
역시나 새 아침이 밝아 창 너머로 새소리를 들으면 잠에서 깨어납니다. 새소리에 일어나는 아침은 정말 행복합니다. 어둑했을 때 본 민박집과 동네가 햇살이 비추니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하룻밤 사이에 또 이곳에 정이 들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민박집 사장님께서 주신 조식은 그야말로 '유기농 브런치'였습니다. 마당의 평상에 앉아서 따뜻한 원두커피와 직접 만드신 귤잼을 발라 먹는 토스트는 꿀맛이었습니다. 이 민박집 사장님은 여행을 좋아하셔서 티베트 한 달 살기도 해 보시고 라오스 캄보디아 등 동남아 여행을 많이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집안에 기타도 장신구도 이국적인 느낌이 많이 났습니다.
이렇게 제주도에서 아름답게 집과 정원을 꾸미며 자연과 더불어 지내시는 것이 정말 부럽다고 했더니, 실제로 제주도에 살아보면 제주도에 인구가 왜 이렇게 적었는지 알 수 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바로 날씨가 힘들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바람이 많고 비가 사나흘에 한 번씩은 오기 때문에, 습기 차서 힘든 부분이 분명 있다고 하셨습니다. 늘 멀리서 보면 좋은 면만 보이는 것 같습니다. 제주도는 여행자로서는 천국이지만 실제로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것도 느껴졌습니다.
기분 좋은 아침식사를 마치고 저지오름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올레길 13 코스에 해당되는 곳이었는데, 해안가 도로를 차로 달리며 신풍 풍차 도로를 보았던 것을 오름 위에서 내려다보니 또 다른 느낌이라 좋았습니다. 역시나 '멀리서 보니 좋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