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의 섬, 제주가 준 선물

제주 3주 살기

by 아는언니
올레길 12코스의 하이라이트. 용수포구~수월봉으루걸으며


제주가 준 선물, 날씨


오늘 제주의 날씨는 지난 18여 일 중 제일 좋았습니다. 그동안 비 오는 날도 있었지만, 맑은 날에도 미세먼지나 해무로 뿌연 날들이 많았는데, 주말 동안 비가 오고 게인 하늘은 맑음 그 자체였습니다. 오늘은 올레길 13코스의 저지오름, 올레길 12코스의 하이라이트 용수포구~수월봉을 걸어봅니다.


이제 여행을 마무리하는 단계인데 하늘과 바다와 날씨를 선물 받은 기분입니다. 특히나 용수포구에서 수월봉을 걸으며 차귀도를 멀리서 점점 가까이 들여다볼 때는 제주의 속 깊이까지 본 듯한 기분이 듭니다. 역시 차로 다닐 때는 알 수 없는 뚜벅이 여행자의 제주 체험이 온몸에 소름 돋게 아름답습니다. 혼자서 연신 감탄사만 내뱉습니다.


하루 종일 걸으며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로 향합니다. 오늘 제 한 몸 뉘일 곳은 한림읍 명랑 남길에 위치한 <호랑이 주택>이란 곳입니다. 날씨가 너무 좋아 어디 앉아서 일몰이라도 마음잡고 보고 싶지만, 어두워진 후 이동하는 것을 피하고 있기에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계속 해가 지는 방향을 바라보며 아쉬운 발걸음을 향합니다.


날씨가 좋은 날은 특히 놓치기 아쉬운 제주 서쪽 바다가 해지는 풍경


<호랑이 주택>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이곳은 보나 마나 제 마음에 들 거라는 예감이 듭니다. 바로 이 멘트.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감정과
이때가 아니면
안 되는 마음에
용기를


제주도에 오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지내는 내내 제 마음을 떠나지 않았던 '행복해질 용기'와 '지금 이 순간만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표현해준 문구입니다.



치유의 섬에 찾아온 사연을 나누다


집 안으로 들어선 순간. 그냥 집안의 분위기와 모든 소품들이 제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사장님이 세면용 수건을 정리하시며 혼자 온 저에게 말동무가 되어주십니다. 짧은 인사였지만 그는 제가 여기 왜 와있는지 간파한 것처럼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제가 제주도에 어떤 마음으로 왔는지 얼마 이야기하지 않았을 때, 그도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나누어주었습니다. '제주도란 섬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꿔놓을 만큼 치유의 효과를 주는 섬이구나.' 이것만이 제 마음속에 남았습니다. 제가 마음이 지치고 힘들 때, 마음의 평화를 찾아왔듯, 그리고 제주의 자연이 주는 힐링으로 눈물을 흘리고 한없이 걸으면서 안정을 찾은 것처럼, 사장님도 힘든 시간을 도시에서 보냈고, 제주에서 한없이 힐링을 받았다고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제주도가 아니었다면...' 이곳은 그냥 현실판 심리치유공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눈 또 다른 주제의 이야기는 제주도가 너무 빨리 개발되거나 환경 파괴되는 모습이 안타깝다는 것이었습니다. 역시 이방인과 제주도민이 느낀 제주에 대한 각자의 관점 차이는 있지만, 공통적인 것은 개발과 보존이란 공존의 어려움에 대한 시선이었습니다.


이곳에 도착한 순간 알았다. 이 곳은 내 최애가 될거라고...



처음 만난 사람과도 밤새워 나누는 이야기, 이 섬, 이 곳 너무 좋아!


따뜻한 샤워를 하고, 게스트하우스에 모인 사람들이 거실에 모여 한바탕 여행과 인생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11시 소등시간 이후 거실을 떠나 4인실의 2층 침대에 누은 4명의 여자, 제주 마니아 여행객들의 수다는 끝이 없습니다.


자신이 어떻게 제주로 오게 되었는지, 제주가 얼마나 좋은지,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 모두 재잘재잘 대는데, 정말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고마운 제안으로 다음날 아침 일찍 비양도가 보이는 협재 바다로 산책을 가기로 하고 잠이 듭니다.


아침에 눈을 떴습니다. 함께 나가기로 한 시간은 7시 반인데 6시 반쯤 이 행복한 공간을 조금 더 느끼려고 조용히 침대를 빠져나옵니다. 마당을 걸어봅니다. 벤치에 앉아 잘 가꾸어진 정원의 꽃과 나무 그리고 새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고양이를 바라봅니다.


저 멀리 해가 맑게 솟아오르는 감격의 순간도 포착합니다. 쌀쌀한 기운에 다시 어제의 따뜻한 이야기들이 머금은 거실로 돌아갑니다. 배치되어 있는 책들이 하나같이 읽어보고 싶은 책들입니다. 이 모든 아침의 순간들이 놓치고 싶지 않게 행복합니다.


<호랑이 주택>애서 맞는 아침 공기 그리고 일출


놓칠 수 없는 이 순간, 이 밤, 새벽, 공기, 온도, 습도 모두 다!


협재 아침바다 산책은 또 얼마나 행복했는지요. 감히 가까이 가볼 거라고 생각 못했던 바다를 눈앞에서 바라보았습니다. 손을 넣어 만지고 싶을 만큼 깨끗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이곳까지 운전해서 데려다준 친구도, 사진기를 들이밀면 귀여운 포즈를 취하는 친구들도, 이제 막 제주에 도착한 혹은 오늘 떠나는 이들이 오늘 이 순간을 함께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습니다.


협재 바다로 아침산책. 4인실 숙소의 룸메이트들과.


다시 <호랑이 주택>으로 돌아왔습니다. 체크아웃 시간 전까지 아침시간을 충분히 즐깁니다. 거실에 향이 피워져 있어 낯설지만 맑은 기운이 흐르는 가운데, 원두를 직접 손으로 갈아 커피를 내려 마셔봅니다. 서울 집에서는 몇 번이나 갈아 마신다고 살림살이가 느는 것이 싫어 사지 못했던 드립 커피 기구들이 이렇게 갖추어져 있어 커피를 내리는 시간이 참 좋았습니다.

이곳에서 아침을 보내는 방법

체크아웃 시간만 아니었다면 몇 시간이고 거실에서 이 공기를 만끽했을 것 같습니다.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고도 이곳에서 만난 세명의 친구들과 함께 한 30분은 더 걸어 나가 맛집에서 아침식사를 하기로 합니다.


나이가 '뭣이 중허냐' 하지만, 이렇게나 어린 친구들과 어울렸다니!!


넷이 나란히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앉아 아침식사를 마치고, 파란 협재 바닷가를 보며 유명하다는 푸딩도 나눠먹습니다. 그리고 또 남기는 추억의 사진들. 밥을 먹으면서 이 친구들의 나이들 듣고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저와 띠동갑이나 어렸습니다. 새삼 나이를 실감해서 충격적이었습니다만, 사실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하는 연령대를 생각해보면 대학생이나 사회 초년생일 테니... 현실을 인지합니다. 오히려 제 또래는 펜션을 통으로 빌리거나 고급 리조트에서 가족들과 쉬는데 보낼 테니, 어찌 보면 이렇게 자유로운 여행을 할 수 있는 저는 참 행운이라고 느낍니다.


제주도가 우리에게 주는 힐링의 의미


함께한 2001년 출생이라는 20살 청년은 제주도에 내려온 후 다시 현실에 돌아갔을 때, 제주도만 생각나고 너무 그리워서 게스트하우스의 스텝을 자처하며 경험하기 시작했고, 곧 제주도에 정착하기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해나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어제 같은 방을 쓴 여자 동생도 제주살이를 위해 게스트하우스 스텝에 지원했고, 지원자가 많아 스텝 면접시험에서 떨어졌다고도 이야기했습니다.


제주도가 우리에게 어떤 곳이길래 이렇게 오고 싶어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젊은이들은 꿈을 찾아, 은퇴 후 노인들은 안락한 노후를 그리며 그리고 경쟁에 지친 사회인들은 몸과 마음의 안정을 찾아... 우리 현실의 삶이 제주의 자연처럼, <호랑이 주택>이 주는 치유와 안식을 너무나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깊이 남습니다.


제주 갬성샷, 하면 바다에서 푸딩정도는 들어줘야한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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