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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언니 Nov 25. 2020

행복한 사람은 가짜를, 우울한 사람은 정확히 기억한다.

저는 어렸을 때 잘 삐지는 아이였습니다. 친구가 장난으로 서운한 말을 하면 혼자 마음이 상해 꽁해있곤 했습니다. 학생 신분이면서, 일을 병행하던 대학시절에 일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고 나면, 그 순간이 오래도록 생생히 기억에 남아 그 사람과 사이가 소원해지기 일쑤였습니다. 잊고 싶었지만, 그때 그의 차가웠던 말투, 나를 보던 눈빛, 그 공기까지 생생히 기억에 남아 쉽게 잊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힘듦을 이겨내려고 난생처음 혼자 해외여행을 떠났던 그 날에도 비행기를 타러 가는 공항버스에서 그 기억을 떠올리며 서러운 마음에 울었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서는 서러운 날들이 어찌나 많던지... 감수성이 예민하고 보기보다 마음이 여린 저는 감정에 무뎌지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회사에서 심하게 시달리던 시절에는 새벽에 잠 못 이루고 종종 깨어 남자 친구에게, 친구에게 하소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혹은 한밤중에 초콜릿을 먹으며 씁쓸한 마음을 달래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온라인으로 심리학 독서모임을 하면서, 기억력이 좋은 사람은 우울감에 쉽게 빠질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제가 왜 그 시절 힘든 감정을 쉽게 떨쳐 보내지 못했는지 단숨에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암기력은 아니지만) 그 상황을 감정을 또렷하게 오랫동안 기억하는 저는 그래서 힘든 감정 또한 오래도록 생생하게 기억했기에 아팠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기억력이 꼭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도 이야기했습니다. 예를 들어 글을 쓰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런 감정과 상황 묘사를 생생하게 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죠. 그래서 이런 감정과 상황을 글로 생생히 풀어쓰든, 풍부한 감수성으로 표현해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런 사람들을 위해 해답도 이야기해보았습니다. 그 해답은 수다와 유머였습니다. 우리는 힘들고 남들에게 말하기 차마 부끄러운 것들을 이야기하고 공감받을 때, 상처가 치유됨을 느낍니다. 힘든 기억, 잊기 힘든 기억을 가만히 스스로 마주해볼 용기를 갖아볼 것을 조언받았습니다. 오히려 뭉뜽그려 '그땐 그랬지...' 하면, 오래도록 남는 상처가, 글을 쓰면서 상황을 돌이켜 객관화하다 보면 받아들일 수 있고 이를 통해 자가 치유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상황을 유머스럽게 해석하여 친구에게 말하기라도 한다면, 깔깔깔 유쾌하게 웃는 가운데 나쁜 감정은 저 공기 너머로 분산시킬 수 있는 것이죠.


무언가 아주 후련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미처 몰랐던 기억력 좋은 것의 장단점 그리고 해소법을 확인했으니까요. 감정이 어린 시절보다 많이 무뎌졌음을 느끼지만, 아직도 고통스러울 때는, '얼마나 더 살아야, 얼마나 더 힘든 감정을 덤덤히 넘길 수 있을까?' 생각하곤 했습니다.


중요한 건 '지금  순간  행복하게  !'이란 결론이었습니다. '아픈 기억은 빨리 쓰레기통에 버리고, 즐거운 생각을 하며  ', '서운한 감정은 버리고 행복한 기억을 남겨둘 ' 하고 생각합니다.


모임 전, 근황 토크에서 '인생에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갈 것인가?'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대학생 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때 스펙 쌓고 공부하느라 열심히 살았는데, 돌아가면 찐 연애를 더 많이 해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근데 돌이켜보니 그 찐 연애, 지금이라고 왜 못하겠습니까? 상처 받는 거 싫고, 감정 소모하는 거 싫다고 자꾸 숨지 말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더 나대고, 표현하고, 더 솔직하게 후회 없이 연애해야겠습니다. 이 언택트 시대에, 비대면 문어발식 연애! 제가 한번 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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