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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언니 Nov 29. 2020

다리집 떡볶이는 사랑을 싣고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저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부산으로 잠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부산으로 이사 가던 때 저는 큰 걱정이 없었습니다. 아마 어려서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달랐습니다. 저와 제 동생이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노심초사였던 것 같습니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가는 기차에서 엄마가 눈물을 훔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시에는 KTX가 없을 때라, 처음으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긴 시간의 기차를 타고 가는 길에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서의 새 출발이 얼마나 걱정되었을까요?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되어보니 조금이나마 알 것 같습니다.


우려와는 달리 저와 제 여동생을 부산에서 아주 적응을 잘했습니다. 저는 한창 잘 뛰어놀 때여서, 친구들과 방과 후 고무줄놀이며 공기놀이며 피구를 하며 신나게 어울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서울에서 온 저와 친해지고 싶다는 친구들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과학시간에 실험보고서를 종종 써서 제출했는데 우수생으로 뽑혀서 방과 후 늘 과학실에 남아 실험을 하고 보고서를 함께 쓰던 동그랗고 하얗던 오빠도 문득 떠오릅니다.


주말에는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부산 곳곳을 여행했고, 경찰공무원이셨던 아빠가 근무하시던 서로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싸가지고 놀러 갔던 기억도 남아있습니다. 엄마와 함께 재래시장을 둘러보고 맛있는 것을 한 손에 들고 먹으며 집에 오던 길의 행복은 아직도 촉촉하게 떠오르는 듯합니다. 아파트 뒷동산에서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잠자리채로 잠자리를 잡고 참 해맑게 지냈었습니다. 신나게 놀고 나면 주린 배를 채우러 아파트 내 상가단지에서 먹었던 가래떡을 꼬치에 끼운 물떡과 빨간 떡볶이를 어묵 국물과 후루룩 먹는 것으로 보내던 저녁 간식 시간을 저는 아직도 기억합니다.


아빠의 지방 임기가 끝나 2년 후 서울로 다시 돌아가게 되던 때에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반 친구들은 정말 저를 위해 울어주었고, 편지도 선물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 날 밤기차를 타고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에서 엄마의 눈물을 또 보았고, 그때는 저도 함께 주르륵 눈물을 흘렸었습니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갈 때는 아무것도 모르던 저였지만, 그 2년 새 성숙해진 저는 친구들과의 헤어짐이, 그곳에서의 행복했던 기억을 두고 오는 것이 슬펐나 봅니다.


오랜만에 그 부산으로 가족여행을 왔습니다. 해운대의 호텔에 체크인하는 시간이 오후 2시였는데 우리는 이미 11시에 김해공항에 떨어졌습니다. 가족이 다 함께 부산을 찾은 것 그때 이후 처음이네요. 제일 먼저 달려간 곳은 부산의 떡볶이 명가, 20년 전통의 다리집이었습니다. 요즘에는 맛볼 수 없는 쫀득할 쌀떡으로 가래떡 길게 양념이 되어있고, 고추장이 찐하게 새빨갛지만 자극적이지는 않은 특별한 고추장 맛입니다. 더 중요한 건 이 떡볶이 옆의 오징어튀김입니다. 서울의 오징어튀김은 마른오징어이지만, 이곳의 오징어는 생물입니다. 그래서 딱딱하지 않고 말랑말랑 신선합니다.


호텔 체크인도 하기 전 캐리어를 끙끙 끌고 도착한 이곳에서 허겁지겁 떡볶이를 먹는데 찐 행복이 느껴졌습니다. 우리는 그냥 명물 떡볶이가 아니라 초등학교 2년을 보낸 부산의 추억을 먹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떡볶이가 요즘 떡볶이와 어떻게 다른지 맛을 이야기하고, 그때의 추억을 한참 이야기합니다. 동생은 "언니가 새로 이사 간 아파트에서 그 과자 냄새 역하다고 토했잖아... 나 그 과자 좋아했는데, 언니가 토해서 맘 상했어..."하고 진짜 오래된 추억을 하나 또 이야기합니다. 엄청난 웃음과 행복이 함께한 시간이었습니다. 살면서 도통 떡볶이 드시는 걸 못 보았는데, 아빠도 이날만큼은 저희와 함께 추억의 떡볶이를 맛있게 드셨습니다.


부산의 명물, 다리집의 떡볶이와 오징어튀김


추억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면 게다가 그것을 떠올릴 음식이 있다면 그것이 찐 행복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이 늘 하하호호 즐거운 것만은 아니고, 지금은 독립해서 저 또한 따로 살아 부모님 뵙기가 쉽지 않지만, 그래서 더욱 돈돈한 시간이 만들어준 보석과 같은 이 순간을 마음 깊이 영원히 담아두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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