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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노트 Dec 19. 2017

눈 오는 날 워킹맘은..

눈 오는 날 아침. 여전히 첫눈은 설레지만 워킹맘의 현실과 부딪히며 설렘은 이내 걱정으로 뒤바뀐다.
아.. 밤새 눈이 많이 내렸네.. 예쁘다

눈을 뜨자마자 블라인드를 올리니 밤새 내린 눈으로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 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는데도 동심이 남아 있는지 여전히 눈만 오면 반갑고 설렌다.


하지만 그 설렘도 잠시, 본격적인 출근 준비를 시작하면서 내리는 눈만큼 내 마음의 걱정도 쌓여가기 시작한다.

'이런 날은 어린이집에서 눈 놀이를 할 테니 모자 달린 가장 두꺼운 패딩 코트로.. 속옷은 히트텍으로 입어야겠지? 양말도 제일 두꺼운 거.. 미끄러지면 안 되니 바닥이 고무로 된 롱부츠로'


이 생활도 내년이면 6년 차. 한석봉 어머니처럼 가지런히 가래떡 썰기는 못해도 캄캄한 방 안에서 몇 번째 서랍에 무엇이 있는지 찾는 정도는 가뿐하다.


태평이가 입을 옷을 챙겨 놓은 뒤 조용히 남편과 인사를 나누고 집 밖으로 나온다. 평소보다 조금 이른 출근이다. 눈이 와 교통 상황이 안 좋을 것에 대한 대비이기도 하지만 자칫 태평이가 잠에서 깨 눈 쌓인 것을 보고 눈싸움 하자고 할 수도 있어서다. 서로 마음이 힘들어지지 않기 위해선 내가 빨리 나가는 게 낫다.


집 밖으로 나와 내리는 눈을 손바닥으로 받으며 또 잠깐 동심의 세계로 빠져든다. 하지만 그도 잠깐이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다시 걱정이 쌓인다.


'눈이 생각보다 많이 오네. 눈 놀이하다 감기 걸리면 어떡하지.. 길도 미끄러울 텐데..'

출근길 점점 거세지는 눈 발만큼 내 마음 속 걱정도 점점 거세진다.

길이 많이 막히는지 한참을 기다려야 버스가 온다. 버스에 오르자마자 떠오르는 '장갑'. 장갑을 챙겨 놓지 않았다. 바로 남편에게 문자를 보낸다.


'양말 서랍에 장갑 있으니깐 꼭 챙겨줘. 그리고 눈 많이 와. 운전 조심하고 특히 어린이집 앞 골목은 더 조심해야 할 것 같아'


버스를 타고 가면서 거세지는 눈 발만큼이나 내 마음속 걱정도 점점 더 거세진다.


회사에 도착할 즈음 남편에게서 SNS 메시지가 온다. 중무장한 아이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다. 눈이 온다고 한껏 기분이 업 된 아이의 모습을 보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아이고 이쁜 내 새끼..


아이의 표정을 확인한 뒤 아이가 입은 옷들을 체크하기 시작한다. 패딩도 바지도 부츠도.. 이 정도면 오케이. 그러던 중 눈길이 아이의 손에서 멈춘다. 털 장갑을 끼고 있다! 이정도 눈엔 패딩 장갑을 껴야 손이 얼지 않는데..


'패딩 장갑이 아니네? 손 얼지 않을까?' 라고 문자를 썼다가 전송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이내 지워버린다. 이미 9시가 넘은 시간. 남편도 지각이라 조급할텐데 마음까지 불편하면 눈길에 위험할지 모른다. 괜찮을 거라며 스스로를 다독여 보지만 걱정은 쉬이 사그라들지 않는다.


버스에서 내려 새하얀 눈을 꾹꾹 밟으며 걱정도 꾹꾹 눌러 담아 본다.


회사에 와서 노트북을 켜고 자리에 앉아 창밖으로 내리는 눈을 보고 있으니 왠지 모르게 울컥하다.


'눈이 참 예쁘네. 이런 예쁜 눈을 맞으면서 눈사람 만들면 태평이가 참 좋아할 텐데. 회사를 안 다니면 가능하겠지..? 미안해 태평아..'

지난해 태평이와의 눈 놀이 사진. "엄마 천사 만들어 줄까?"하며 눈 밭에 누워 팔다리를 열심히 움직여 천사를 만들었다. 평생 잊지 못할 한겨울의 추억.

갑자기 작년 이맘때 같이 눈 놀이하며 꺄르르 꺄르르 웃었던 태평이의 목소리가 귓전에 울린다.


'이왕 올 거면 하루만 더 빨리 내리든지. 왜 하필 월요일에 눈이야..'


딸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의 죄책감을 덜기 위해 애먼 눈을 탓해본다. 그러다 또 이내 마음이 바뀐다.


'아니야. 이왕 올 거면 계속 오면 좋겠다. 퇴근하고 태평이랑 작은 눈사람이라도 만들게..'


눈 하나에도 오만 생각이 드는 워킹맘의 월요일 출근길이다.


임성영 기자  rossa83041@oliveno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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