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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노트 Dec 03. 2019

[좌충우돌 난임일기]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어라

배아의 시간별 수정 모습


#25. 배아 이름 붙이기


요즘 난임을 고백하는 연예인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난임 병원에서 상담을 받는 모습이 방송에 나오는가 하면 연예인 부부가 배주사를 놓고 결과를 듣는 시험관 시술의 전 과정을 함께 겪는 모습이 방송되기도 했다. 아무래도 나 역시 같은 상황이다 보니 TV 채널을 돌리다가 난임 이야기가 나오면 묻고 따지지도 않고 그대로 멈춰 시청하게 된다. 


그중에 굉장히 흥미롭게 본 장면이 하나 있었다. 바로 배아에 이름을 붙이는 모습이었다. 배아 3개를 이식하고 난 아내가 "수지, 쿠키, 꽃님이야~"라며 남편에게 말하는 거였다. "얘(배아)는 꽃 모양이라서 꽃님이고 얘는 쿠키 모양이라서 쿠키야" 아기 태명도 아니고 배아에 이름을 붙여주다니. 다른 난임 여성들도 배아에 이름을 붙여주려나? 문득 궁금해져서 난임 카페를 살펴보니 찰떡이, 꿀떡이, 딱풀이 등 실제로 이식 날부터 태명을 지어 부르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시험관 시술을 하면 이식 전에 배아 사진을 받는다. (자연 임신한 사람들은 볼 수 없는 진귀한 모습이다.) 채취한 난자, 정자가 모두 배아로 수정되는 게 아니라 일종의 선발 과정을 거친 애들(?)이기 때문에 배아 자체도 이미 상당히 특별하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아 이름을 부르는 모습은 나에게는 굉장히 낯설다. 나는 배아는 커녕 배아를 이식하고 난 후 생활하면서 '우리 OO이~'라는 표현을 단 한 번도 써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소리 내 말해보지도 속으로 불러보지도 않았다. 


나름대로 이유는 있었다. 원래 조심스러운 성격이기도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이 더 클까 봐 걱정이 됐다. 수 차례 임신에 실패하면서 생긴 두려움 탓에 배아에 마음이 가는 것을 경계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하지 않는가. 괜히 이름 붙였다가 나중에 임신이 되지 않으면 더 속상할 거야. 우리 OO이 어디 갔어. 우리 OO이 왜 안 오니.. 상상만 해도 슬픔이 밀려온다. 


하지만 긍정적인 생각만 해도 부족한데 지레 겁먹었던 건 아닐까. 난임 시술을 한 지 일 년이 지나 되돌아보니 무심한 척 노력하며 나 혼자 마음을 꽁꽁 싸맸던 게 다 무슨 의미인가 싶다. 내 경험상 임신 실패는 기대가 크면 물론 슬프지만 기대가 작다고 해서 결코 슬픔의 크기가 작은 것도 아니었다. 다음 차수엔 마음이 가는대로 배아의 이름을 불러봐야겠다.


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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