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꿉놀이 하기 싫은데 쟤가 자꾸 같이 하자고 조르잖아!
언니로부터 꿀밤을 맞은 둘째 아이가 울면서 나를 쫓아오자 첫째 아이는 세상이 무너진듯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이 싸우는 모습에 화가 나면 내 이성은 안드로메다로 간다. 엄마의 무서움(;)을 보여주려고 매를 쥐어 보지만 막상 때리진 못하고 허공을 휘젓는다. '사랑의 매'라고 하지만 내가 들고 있는 그 매에 사랑이 1%나 남겼을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내가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 대부분의 이유는 별것도 아닌 걸로 심하게 말다툼을 할 때나 서로를 때렸을 때, 한 아이가 욕심을 부리는 경우다.
만약에 엄마아빠가 없으면 세상에 너희 둘밖에 안 남는데 사이좋게 지내야지.
이렇게 계속 싸우면서 살래?
이렇게 내가 소리를 지르고 나면 두 아이는 내 눈치를 슬쩍 보곤 서로의 어깨를 토닥이며 사과를 한다. 그리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무렇지 않게 함께 논다. 이런 패턴은 하루에도 몇 번이고 반복된다. 아이들이 별것도 아닌 일에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둘째 아이가 첫째 아이와 서로 부둥켜 안고 떨어지지 않던 몇 년 전 기억이 떠오른다.
전편([막수다]드디어 올 것이 왔다..그 이름 '동생')에서도 언급했던 바와 같이 둘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부터 우리 부부는 모든 행동에 첫째 아이의 의사를 먼저 물었다. 또 지속적으로 아이가 '우리 가족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사랑받는 아이인지' 말과 행동으로 표현했다. 엄마가 오롯이 자신의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첫째 아이가 행여 갑작스런 동생의 등장으로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부모의 넘치는 사랑을 보여주면 동생을 더욱 아끼고 많은 부분에서 먼저 양보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둘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 누구보다 반겼던 이가 바로 첫째 아이일 정도로 효과가 좋아 계속 이 방법을 써먹었다(?).
산후조리원 퇴원 후 집으로 돌아갈 때 나는 둘째 아이를 품에 안고 현관 밖에 서 있었다. 첫째 아이에게 동생이 집으로 들어가도 될지 허락을 받은 후에서야 집 안에 들어섰다. 집에서 처음 모유수유를 할 때도 첫째 아이에게 먼저 허락을 받고 수유를 했을 정도. 모든 일에 첫째 아이 의견을 반영하고자 노력했고 스킨십도 잊지 않았다. 이후 첫째 아이는 어딜 가든 동생을 챙겼고 손을 잡고 다닐 정도로 '동생바보'가 됐다.
첫째 아이와 함께 어린이집을 다니는 몇몇 친구들에게도 비슷한 시기에 동생이 생겼다. 아기처럼 퇴행하는 행동을 보이거나 떼쟁이로 변해 걱정이라는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리 가족은 나름 무탈하게 이 시기를 지나고 있는 것 같아 참 다행이다 싶었다.
그로부터 불과 2~3년이 지난 것뿐인데 아이들이 달라졌다. 아이들은 자신이 가장 중요했고 '내 것은 내 것, 네 것은 네 것'이라 소리쳤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내 교육방식이 이제는 먹히지 않는 것일까?' 고민에 빠졌다.
그러다 며칠 전 아이들의 할머니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둘째 아이의 유치원 친구가 하교 후 놀이터에서 놀던 첫째 아이를 때렸다는 것이다. 첫째 아이는 몸집도 작은 동생 친구를 똑같이 혼낼 순 없어 그냥 참았다고 한다. 그 일을 들은 둘째 아이가 다음날 유치원에 가서 그 친구에게 "왜 우리 언니를 때렸느냐"고 따졌다고 한다. 그 친구가 진심으로 사과할 때까지 말이다. (다행히 싸움으로는 번지지 않았다고 한다.)
누군가는 '유치원 친구랑 싸우는 것은 나쁜 행동'이라고 지적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동생 친구이기에 화를 참은 첫째 아이, 누군가 언니를 때렸다는 말에 발 벗고 나선 둘째 아이의 행동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날 아이들은 집에 돌아와 장난감을 두고 또 싸웠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두 아이가 하루 24시간을 붙어있었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초등학교, 유치원, 학원 등 각자의 생활 때문에 함께 있을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다. 피를 나눈 자매라고 하더라도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자신의 물건, 하고 싶은 놀이를 두고 의견 충돌하는 것이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싸우는 것도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방법이다. 문득 형제자매는 절대 싸워선 안되고 무조건 사랑해줘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땐 부모의 사랑만 표현하고 이해시키면 아이들이 서로 싸우지 않고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젠 아니었다. 이젠 아이들이 서로를 사랑하되 다름을 존중하고 다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도와주는 부모의 노력이 필요해진 시기가 아닐까.
임지혜 기자 limjh@oliveno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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