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적당한 거리

고양이와 교실에서 배운 선 긋기의 기술

by 담연

초임 발령을 받고, 학교에 입성한 나는 커피 자판기 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길거리에 어디에나 필요할 때, 따끈하고 달큰한 커피 한 모금을 내놓는 그런 선생님. 아이들을 훈육한다는 생각보다는 아이들과 그저 친해지고 아껴주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 미리 정해둔 규칙들 또한 답답하게 느껴지곤 했다. '왜 화장은 안되는 걸까?', '실외화는 복도 정도까지는 신고 들어와도 되잖아?' 같은 의문들 말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혼란스러워졌다. 규칙의 경계가 흐릿해질 때마다 아이들과의 관계도, 나 자신의 정체성도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과연 '스승'이라 불릴 수 있을 것인가?



정답은 내가 키우던 고양이 졸리와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었다. 졸리는 너무나 사랑스럽고 귀여웠다. 그런 나머지 나는 졸리가 원하는 건 뭐든 다 들어주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고 행동했다. 졸리가 밥을 달라고 울면 밥을 주고, 놀자면 놀아주고. 물조차 흐르는 세면대에서만 먹었다. 내겐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체력이 허락하는 한동안은.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졸리는 제멋대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잠을 잘 시간임에도 새벽 세네시에 놀아달라고, 혹은 물을 틀어 달라고 삼사십 분씩도 울어댔다. 나도 점점 피곤함에 지쳐가기 시작했다. 너무 짜증이 난 나머지 졸리에게 큰 소리를 빽 지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온통 지쳐버린 채로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렇게 다 맞춰주는 것이 과연 졸리를 위해서 옳은 일일까? 아님 우리에게도 어떤 '선'이 필요한 게 아닐까?


질문의 끝에 나는 기준을 세우기로 마음을 먹었다. 밥은 하루에 몇 번, 놀이도 횟수와 시간을 정해서 철저히 지켰다. 새벽에는 아무리 울어도 끄떡도 하지 않았다. 목을 놓아 우는 내 고양이가 무척이나 마음 아팠지만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 굳게 마음을 먹고 선을 지키리라 다짐을 했다. 그렇게 꾸준히 지켜나가자 조금씩 졸리도 나와 한 발자국씩 리듬을 맞춰 걸어 나갔다.




결국 아직도 세면대에서 물을 받아먹긴 하지만, 우린 같은 시간에 자고 함께 일어나고 웃으며 사냥놀이를 하게 됐다. 이때의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관계에서 선을 긋는다는 것이 무작정 나쁘고 박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에겐 어느 정도의 거리 두기가 항상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선 긋기와 거리 두기는 결국 상대와 나를 위한 최소한의 존중이었다. 이는 내 교사 생활에서도 중요한 교훈이 되었다. 어디까지가 적절한 선일지는 항상 고민하곤 했지만, 약간의 거리를 두면서 나는 조금 더 아이들과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잘 살필 수 있었고, 내 존재가 매몰되지 않게 예방할 수도 있었다.


나는 아직도 선을 긋는 방법을 연습 중이다. 가끔은 너무 멀리서 선을 그어 마음의 거리가 생기기도 하고, 때로는 너무 가까워져 버거워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예전처럼 아무렇게나 맞춰주거나, 무조건 끌어안으려 하진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거리, 동료들과의 거리,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과의 거리. 이 거리를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관계가 오래, 그리고 단단히 이어질 수 있음을 이제는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그리하여 나와 졸리 사이처럼, 조금 느슨하지만 서로의 리듬을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는 법을, 나의 모든 관계에서 지켜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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