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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묘슬 Dec 28. 2024

잃어버린 아이와 백개의 방 #4

[단편소설]

엄마의 눈이 점점 공허해졌다. 동생의 사진을 안고 방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엄마를 볼 때면 가슴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엄마가 보이지 않는 밤에는 가슴을 조이는 무서운 불안감에 굳게 닫힌 수십 개의 방문을 열고 또 열었다. 깊은 어둠 속에서 여진은 자신을 옭아매는 끝없는 죄책감과 싸웠다.

여진의 기억 속 동생은 아기였다. 만 3살이었던 동생은 여진이 등교를 하는 아침이 되면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여진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유난히 말이 느렸던 동생이 누나가 학교에 가지 말고 같이 놀아달라는 의미였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누나의 등굣길을 따라오는 동생에게 손을 흔들었다.

"영호야 맘마 잘 먹고 놀고 있어라. 누나 얼른 학교 다녀올게."


동생은 입술을 삐쭉 내밀며 그렁그렁한 눈으로 누나를 바라보았다. 여진은 동생이 따라올까 봐 일부러 속도를 내어 빠르게 걸었다. 골목 끝에서 손을 흔들어 보였던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날 이후 아무도 그 아이를 본 사람이 없었다. 주인공이 연기처럼 사라진 어떤 반전영화처럼 여진의 삶은 모든 것이 뒤집혔다. 그것은 여진의 삶이 아니었다. 감정과 욕구는 철저히 감춰야 했고 호흡하고 말하는 모든 순간이 저주였다.


누구든지 감히 엄마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것은 금지되었다. 공식적으로 참혹해진 여진의 집 근방 200미터 내에서는 아무도 웃는 사람이 없었다. 수사를 위해 경찰이 집안에 상주하기 시작하면서 여진은 점점 그림자가 되어갔다. 아무도 여진을 찾는 사람은 없었다. 무서운 고독과 싸우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처음 몇 달은 절망과 희망이 반복되었고 동생을 찾는가 싶었다. 수백 통의 전화가 울렸고 금품을 노린 아동 납치 사건이라고 했다. 경찰과 기자들은 대단한 특종을 기대하는 듯 하루가 멀다고 집을 드나들었다.

누나를 따라간 것인지 집안에서 사라진 것인지 납치된 것이 맞는지 아무것도 확인되지 않았다. 현상금이 걸렸고 온 국민이 동생의 얼굴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여진은 어쩌면 동생이란 존재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 아닐까, 상상했다. 이 모든 것이 어떻게 현실일 수 있단 말인가. 어느 날 잠에서 깨면 모두 꿈일 거라고. 매일 빌고 또 빌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집은 더욱 정상적인 가정의 모습을 잃어갔다. 여진의 부모는 전국을 돌아다니느라 얼굴을 볼 수 없었고 경찰의 방문과 제보 전화 소식은 간간이 들렸지만, 그때마다 여진은 차라리 그 아이가 죽어서 발견되었다는 소식이길 바랐다. 어서 끝나길. 뭐든 빨리 끝나버리길. 이 악몽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마음으로 소리쳤다.

 

엄마의 눈이 점점 공허해졌다. 동생의 사진을 안고 방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엄마를 볼 때면 가슴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엄마가 보이지 않는 밤에는 가슴을 조이는 무서운 불안감에 굳게 닫힌 수십 개의 방문을 열고 또 열었다. 깊은 어둠 속에서 여진은 자신을 옭아매는 끝없는 죄책감과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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