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표
아침에 자고 일어나 4시 48분이 되었다. 그는 세상모르고 자고 있고 밖은 비가 또 오기 시작했다. 오늘도 역시나 꿈을 꿨는데 내 중학교 고등학교 동창이(난 고등학생이었다 꿈에서) 내 필통 속을 뒤져서 맥 립스틱을 망쳐놓아서 준영이를 멱살을 잡고 바닥에 때려눕히는 꿈을 꿨다.
준영이 하고는 1월 4일 이후로 연락을 안 하고 있다. 준영이는 남자친구와 결혼을 하고 싶어 했는데 아직까지 별 소식은 없다. 만약 남자친구와 헤어져서 꿈에서 나에게 해코지를 한 거라면 그건 여자들은 생물학적으로든 뭐든 남자를 이길 수 없기 때문에 같은 여자를 괴롭힌다고 한다.
나는 진화 심리학이나 군중 심리학에 배우고 싶었는데 마이클한테 나 심리학 배우고 싶어라고 두 번째 만났을 때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에 대해 얘기하다가 “군중 심리학을 배우는 게 더 나아.”라고 했다. 심리학은 개인에 대한 공부를 하는 것이고 군중 심리학은 군중에 대해 배우는 거니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그의 말을 기억한다.
그렇지만 어제는 그와 함께 종묘와 창경궁에 다녀왔는데 창경궁 대온실에 앉아서 얘기를 하다가 “여기 일본 정원 같다. 내가 일본에 있을 때 보내준 사진 기억나?”라고 그가 말했다. 나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서(왜냐면 나는 이미지로 세상을 기억하는데 창경궁 대온실 같은 사진은 없었기 때문이다.)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고 “너 딴 여자랑 착각한 거 아니야?”라고 하니 그는 카카오톡을 켜더니 사진첩을 뒤지더니 “이것 봐 똑같진 않지만 정원에 갔을 때 너한테 사진 보냈잖아.” 라면서 툴툴거렸다.
우리는 창경궁을 걷다가 느티나무를 보았는데 그는 스기나무와 히노끼 나무에 대해 얘기를 하며( 일본인들이 얼마나 자연과 친화적으로 사는지에 대한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사이프러스 (스기나무)와 히노끼 나무에 대해 그에게 두 번째인가 세 번째 듣고 있어서 약간 지루하기 시작했다. [뱀파이어에 관한 아주 특별한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라즐로랑 나쟈 부부처럼 말이다.
두 번째인가 세 번째 만났을 때 우리는 메이지 신궁을 갔고 나는 으스스한 메이지 신궁 정원에 압도되었는데 “여기 무섭다.” 이러니까 그는 왜 나무가 벌레가 있어도 썩지 않는지, 스기나무와 히노끼 나무에 대한 장점을 얘기했었다. 나는 메이지 신궁이 주는 느낌에 대해 얘기하고 위키백과 같은 그는 나무와 꽃이 이 세상에 왜 존재하는지 자연의 순환에 대해 얘기했었다.
순환은 간단하다. 꽃이 피어나면 벌이 꽃가루를 암수 꽃에 묻혀 수정이 되고 씨가 퍼지고 숲을 이루게 된다. 나는 벌이 죽으면 사람들도 죽는다는 알고 있다고 말하니 그게 바로 순환이라 했다.
또 다른 이야기는 “내가 유튜브를 봤는데 말이야. 나도 언젠가 내 손으로 직접 집을 짓고 싶어. 유튜브에 나오는 부부가 타월을 골랐는데 그 와이프가 30년을 불평을 했다는거야 너무 웃기지 않아?”라고 하고 “네가 집을 지으면 너 마음대로 타올이나 벽지 모두 고를 수 있어 너무 좋지 않아?” 라며 말하길래 나는 “나는 아빠처럼 건축사가 되고 싶어. 캐드를 배우고 싶어.” 이러니까 “대학교 때 배웠어 너한테 알려줄 수 있어.”“너도 알다시피 내가 아팠을 때 온 세상을 분해 해체해서 캐드 도면처럼 봤었다고 했잖아. 물론 나도 알아 아빠한테 영향을 받은 것을. 근데 그때 그게 너무 신기했어서.” 라며 얘기하다가 그의 아빠에 대해 얘기를 했다.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였기 때문에 흥미로웠다.
우리는 창경궁을 모두 거닐고 나서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나는 거의 졸고 있었다. 다행히도 카페인의 효과는 강력했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어디를 가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는데 그이는 내가 투어가이드가 아니라고 했지만 거의 서울투어를 해주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는 갑자기 카카오맵을 보다가 종묘에 가고 싶다고 했는데 종묘를 한 번도 가본 적 없던 나로서는 종묘제례악만 유튜브로 봤었지 올 생각은 안 했다. 종묘를 향해 걸어가는 동안 “지원언니랑 내일 만나기로 한 거 잊지 않았지?”라고 물으니 “응.”라고 하길래 “지원 언니가 날 많이 도와줬어. 성희롱 계장한테 나한테나 지원언니한테 손대지 말라고 얘기해 줬거든. 그랬더니 그가 뭐랬는지 알아? 회사에 악인은 존재해야 한대.” “그건 무슨 소리야.”라고 하길래 “그러게 말이야”라고 했다.
종묘에서 우리는 한국과 북한의 통일에 대해 얘기했다. 한국의 birth rate 출산율이 낮아지고 있으니 이민자를 받는 거보다 한국과 북한이 통일해야 한다는 게 그의 이론이었는데 “네가 대통령이면 그렇게 할 거야?”라고 물으니 “당연하지. 그렇지만 중국은 싫어할 걸”라고 했다.
또 우리는 창경궁과 종묘에 있는 수많은 소화기를 보다가 “분명히 일본이 점령 당시에 많이 건축물을 불태워서 화재에 대비하는 거 같아.”라고 그가 말했고 “나는 있잖아. 우리나라가 점령 당시에 우리의 힘으로 독립을 이룬 게 아니라고 생각해. 오펜하이머 즉 미국이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핵폭탄을 날려주지 않았다면 우리가 독립을 했을까? 완전히 미국에 의지한 독립이라고 생각해.” “너 말이 맞아.”라고 그가 말했고 우리는 종묘를 구석구석 돌아보았다.
그러다가 일본과 한국에 관계에 대해 얘기를 했고 “일본은 우리나라에게 사과를 안 했어.” 이러니까 “아니야 위안부에 대해서는 사과를 했어. 그리고 많은 돈을 그 피해자들에게 쓰기도 했고.” 라면 위키백과를 보여주었다. “나는 몰랐어, 미디어에서는 우리나라가 사과를 받지 못했다고만 말해서…”라고 하니 그게 미디어의 단점이라고 했다.
또 우리는 중국 홍콩 타이완에 대해 얘기했다. 타이완은 독립된 나라라면서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그래서 내가 홍콩에 대해 얘기하니 “홍콩은 운이 없는 케이스야. 영국이 홍콩을 포기하면서 중국에게 홍콩을 자치국으로 잘 이끌어달라 했는데 점령해 버렸잖아.” “중국이 거짓말을 한 거네.”라고 하니 ”그로 인해 전 세계가 중국을 믿지 않게 되었지.”라고 했다.
우리는 계속 걸으며 서울 한복판을 거닐었고 세운 상가에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옥수수수염차를 마셨는데 그는 팝콘 물 같다며 막 웃기다고 했다. 세운 상가에는 내가 좋아하는 서점이자 레코드샵이 있는데 우리는 구경을 하고 그의 장소에 돌아와 저녁을 만들었다.
오리고기 무쌈을 그에게 해주었는데 “진짜 한국식 밥 같다.”라면 말하다가 내가 차린 밥을 보더니 나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더니 “당장 비행기 표 사줄게!”라고 하는 것이다. 아직 가려면 4개월이나 남았는데 불구하고(그는 보통 3주 전에 비행기 표를 산다고 했다.) 나는 비행기 표를 사준다는 그의 말에 반신반의하고 있었기 때문에 매우 놀라고 기뻤다. 근데 밥을 해주니 사준다고 해서 약간 괘씸했지만.
우린 맛있게 저녁을 먹고 뱀파이어 다큐멘터리를 또 보고 곤히 잠이 들었다. 오늘은 내 쉬는 날이었기에 지원 언니를 만나는 날이었고 12시쯤 일어나니 그는 3가지 옵션을 보여주더니 “비행기 표 골라!”라고 했고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이 날엔 한국에 돌아와야 해. 휴가가 일주일은 되지만 그래도 월요일 전에는 도착해야 해.”라고 했고 그는 진짜로 비행기 표를 사줬다.
우리는 점심을 또 해 먹었는데 내가 소시지를 자르고 있으니 그가 다가와 도와주었다. 그러고 나서는 김치 스크램블 에그를 만들었는데 내가 만드는 김치볶음밥을 보고 생각해 냈다고 하며 아이디어에 고맙다고 했다
나는 계속 글을 썼고 그는 계속 컴퓨터를 했다. 나는 그와 우리 사이에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에 오늘 지원 언니를 만나고 나서는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도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고.) 물론 비행기 표를 사준 그에게 키스를 퍼붓고 싶지만.
비행기 표를 사준 그가 전부터 회사에 직접 놀러 오란 말을 해서 놀랐는데 한국에서는 남의 회사를 놀러 가는 일이 흔치 않았기에 아무리 방문할 수 있다 하더라도 나로서는 충격적이었는데 그는 내가 방문하면 회사동료들을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내가 "이 여자애는 누구야 라고 하면 뭐라고 할 거야?" 하니까 당연한 걸 물었다는 듯이 "내 여자친구라고 소개할 건데?" 해서 기분이 좋았다.
우리는 지원 언니를 만나기 전 메가 커피에서 커피를 사 먹고 남산 한옥 마을에 다녀왔다. 나는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그는 스무디를 마셨는데 아침에 페이스북에서 스무디를 들고 있는 Halsey 미국 가수의 파파라치 사진을 봤던 나로서는 그 얘기를 하면서 "너 되게 미국 사람 같다." 이러니까 마이클은 "아메리카노는 미국에서 온 거야. 한국 전쟁 당시에 미군에 의해서. 너야말로 미국 사람 같아. 매일 아메리카노를 마시잖아." 라며 맞받아쳤다.
나는 그가 입은 티셔츠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일본어 한자로 죽을 사 死와 벚꽃이 함께 그려져 있었고 마이클의 친구가 직접 디자인한 거라고 했다. 나는 그 옷을 입은 마이클을 볼 때마다 꼴 보기 싫었고 나가기 전부터 셔츠로 바꿔 입으라고 했다. 우리는 격식을 차린 formal 한 만남을 하러 가는 거라고. 그는 결국 내 말을 듣고 체크무늬 셔츠로 바꿔 입었다.
지원 언니와 성북동에서 만났고 우리는 갈비찜과 만두를 먹었다. 지원 언니는 좋아해서라기보다는 그를 보고 좀 부끄러워하는 거 같았다. 캐나다에 8년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백인을 보고 shy 한 모습은 흥미로웠고 나는 갈비찜을 먹으며 간간히 대화에 참여하며 그이와 언니의 대화를 들었다.
왜 언니가 캐나다에서 돌아오게 되었는지 무슨 전공을 했는지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이야기와 주식과 비트코인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가 언니를 취조한다기보다는 인터뷰를 하는 느낌이었는데 나는 그의 손바닥 안에 놀아나지 않는다면(말 그대로 내 멋대로 행동한다는 것) 언니는 그이 손에 꽉 잡혀 대답을 하는 형국이었다.
언니를 만나고 돌아오니 그는 좀 혼란스러워 보였는데 물어보니 "자 네가 책을 바닥에 봤다고 생각해 봐. (나는 책을 엄청나게 모으는 사람이다.) 줍고 싶지 않겠어? 그게 그녀에게 든 감정이야. 8년은 긴 세월이야. 정말 싫었다면 한국에 돌아왔을 거야. 발음도 좋고 영어도 잘해. 그녀는 자신의 잠재력을 무시한 채 살아가고 있어. 네가 방향을 알고 있다면 알려주고 싶지 않겠어?"
그래서 "꽤나 강렬한 (intense) 감정이네. 네가 그런 감정이 든 건 이해해. 내가 좋아했던 친구 알지? 취미로 사진을 찍는데 카메라를 다 팔아버릴 정도로 어려워서 내가 많이 도와줬어. 사진을 계속 찍도록 필름을 사주기도 하고. 네가 무슨 감정인지 이해할 거 같아. 오늘 나 말고 비행기 표를 그녀를 위해 사주고 싶어 했다고 해도 괜찮아. 나보다 그녀에게 필요하고." 하니
"그녀에 대한 애정이 아니라 너는 내 여자친구고 수백 번이라도 비행기표를 사줄 거야. 근데 오늘 본 그녀가 그녀 스스로 잠재력을 잊고 그냥 방에 갇혀 아무것도 안 하며 숨만 쉬는 게 좋다고 하며 살아간다면 답답할 거 같아." 우리는 지원의 속사정을 모르고 우리 둘끼리 맘대로 짐작하고 얘기를 하는 거였지만 그녀는 캐나다를 그리워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처럼 호주를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래서 우리 둘 다 조금 슬퍼졌는데 살아가는 게 우리 뜻대로 모든 게 되지는 않는 거구나 싶었다. 그게 맥스웰이든 지원 언니든 나든 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