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구하는 조건에 사실 '찡짝이 나오지 않을 것' 항목이 있었다.
찡짝은 여기서 도마뱀을 일컫는 말이다. 동남아시아 여행을 갈 때 길거리 건물 벽면에 한번쯤 봤을 법한 이 찡짝은 캄보디아 생활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곳곳에 도사린 생물체였다.
이 부분은 결과로 말하자면 처참한 실패였다. 어느 집이건 간에 도마뱀은 무조건 나왔기 때문이다. 심지어 5성급 호텔이라는 곳도 도마뱀이 심심치 않게 출몰했다. 대체 어디서 나오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꽉 막혀 있는 집에서도 애기 찡짝(도마뱀)들이 한 번씩 눈에 보이고는 했다. 그리고 집 보러 다니는 집주인에게서는 난 유난떠는 한국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한인협회 사람들에게도 조언을 구했지만 다들 본인도 살고 있는 집에 도마뱀은 자주 출몰한다고 해서 이 부분은 포기했다.
어렸을 때부터 벌레 이런 것에는 유독 쥐약이었고 심지어 모기도 손으로 못 잡는 내가 도마뱀과의 동거라니 아득했다. 호텔에서 이사한 집으로 온 이후 집을 싹 청소를 했다. 청소기도 사실 제대로 없어 빗질을 했는데, 학교다닐 때 청소당번이여서 빗자루를 잡아본 이후 처음이었다. 새삼스레 빗질을 하던 손이 어색할 정도였다. 이렇게 월 400불짜리 집에서의 생활이 시작된 것이었다. 처음에는 일로 인해 집에서는 잠만 자는 용도에 지나지 않아 별로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바로 이 도마뱀말이다.
(안구보호를 위해 사진은 최소화로 했습니다)
아직도 생생한 그 400불짜리 집에서의 첫날밤이 생각난다. 밤에 불을 켜고 침대 위에서 천장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찡짝 한 마리가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이상하다. 분명히 눕기 전에는 없었는데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니 어느 순간 생겨있다.
혹시나 이 도마뱀이 나에게 해코지라도 할까 봐 이불을 푹 머리끝까지 덮어버린다. 이내 숨이 갑갑해 이불을 걷어차기를 반복이다. 피곤한 탓인지 불을 끄고 잠을 청하면 곧 잠은 잘 들었다.
처음에는 괜히 가족과 친구들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도마뱀이랑 같이 살고 있다며 우스갯소리로 영상 너머로 보여줬다. 다들 하나같이 꽤나 내가 짠하다는 표정이다. 저런곳에서 어찌사나 싶은 그런 얼굴이었다. 꽤나 덤덤하고 씩씩하게 쟤들은 이로운 곤충이라며 찡짝 전도사가 된것마냥 특징을 읊조린다.
찡짝은 실제로 꼬리를 잡으면 꼬리를 스스로 끊고 도망가는데, 이러한 TMI를 해주면 친구들은 이내 또 '으...'하는 표정을 짓는다.
이렇게 덤덤하게 웃으며 얘기하다 전화를 끊고 혼자남겨진 밤이면 이내 다시 이불을 푸욱 뒤짚어쓰고 잠을 청한다. 혼자 남겨진 고독과 쓸쓸함을 견디지 못해 더욱더 빨리 잠드려 애썼는지도 모른다.
타국에서의 겨우 새끼손가락 남짓한 도마뱀은 왜이리 무서웠을까...
설상가상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을 들어가면 바퀴벌레 한 마리가 죽어있다. 한국에서는 몇 번 구경도 못한 바퀴벌레가 매일 아침 일어나면 꼭 발견했는데, 한인마트에서 뿌리는 바퀴벌레약을 사서 자기 전에 화장실에 뿌렸는데 약성이 독했는지 꼭 일어나서 화장실을 가면 한 마리씩 꼭 죽어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 죽어있는 바퀴벌레 한 마리도 못 잡아 곧장 1층 주인댁으로 쪼르르 내려가 도와달라고 했다. 그 집에 상주 가정부가 있었기 때문에 그 가정부가 바퀴벌레를 처리해 줬다. 죽어있는 바퀴벌레를 이내 처리해 주면 나는 고맙다고 1불짜리 세장정도를 손에 쥐어주곤 했다.
1불짜리 3장과 바퀴벌레 한 마리를 치우는 것은 등가교환이 성립했다. 그래서 1층집 가정부 삼밧은 내가 곧장 쪼르르 달려가 'Help me'를 외쳐도 웃는 얼굴로 올라와서 치워줬었는데, 훗날 바퀴벌레가 치워주는것 자체가 아니라 우리집 가정부로도 고용하게 된다. 도피하고싶어서 떠났던 해외이지만 철저한 자본주의 사회에 순응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혼자 자취를 했을 때와는 다른, 외국에서 어학연수를 한다고 가족과 떨어져있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이 느낌, 이곳에서의 생활은 너무나 생경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