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 part 2

by 이지하

잰걸음으로 도착한 미용실은 어딘가 어수선했다. 정상 영업한다는 전날의 통화 내용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접수대 앞에 서너 명의 손님이 서 있었고 응대하는 직원은 난감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소리 지르는 이는 없었으나 공기 중에 떠다니는 무거운 기운은 매장에 들어선 이라면 누구든 느낄 법했다. 나는 조용히 로비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분위기를 살폈다. 시술받는 이들과 디자이너들의 대화 소리가 드문드문 들렸다. ‘어떻게 된 거예요?’ ‘저희도 모르겠어요. 너무 당황했어요. 이런 일은 처음이라...’


분명히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었다. 평소보다 종종걸음으로 걷는 직원과 심란한 표정으로 파마 중인 손님은 있는데 오직 한 사람, 원장이 보이지 않았다. 그 와중에 핸드폰으로 또 문자가 도착했다. 이번에도 ‘[Web발신](광고)’로 시작한 그 문자는, 이틀간 많이 당황하고 놀라게 해서 죄송하다더니 결국 폐업하게 되었다는 것으로 끝났다. 폐업 안내 문자를 폐업하는 미용실에서 실시간으로 받아보며 피폐해진 나를 직원이 자리로 안내했다. 그리고 내가 말을 꺼낼 새도 없이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고객님 놀라셨죠? 저희도 놀랐어요. 저희도 여기 문 닫는 걸 출근한 날 문자 받고 알았어요. 여기 임대 기한도 어제까지였대요. 그래서 전기랑 물이 언제 끊길지 몰라요. 사실 저희 월급도 많이 밀렸어요. 직원들끼리 서로 얘기를 안 해서 다들 그런 줄도 몰랐어요. 신용불량자 된 직원도 있어요. 속상하죠. 그런데 저희는 일단 나와서 일하고 있어요. 월급도 못 받았는데 왜 계속 나오냐고요? 하하... 그러게요. 그런데요. 저희까지 영업이 종료되었다고 안 나와버리면, 원장님이랑 똑같은 사람 되는 거잖아요. 그건 싫거든요. 그래서 일단 고객님들 속상한 마음 조금이라도 달래 드리려고 할 수 있는 데까지 시술 더 해드리는 거예요. 그런데... 고객님도 혹시 원장님께 돈 빌려주셨어요?’


무슨 말을 하겠는가. 2년 전 날씨도 스산했던 어느 날, 다급한 목소리로 돈을 빌려줄 수 있냐는 Y의 전화를 받았었다고. 빌려달라는 액수가 내 반년 치 연봉이라 깜짝 놀랐었다고. 그럼에도 내 통장에 그렇게 빌려줄 수 있을 만큼의 돈이 없는 게 속상했다고. 20년간 알고 지낸 인연에 어렵게 꺼낸 말인 것 같아 도와줘야 할 것 같았다고. 통장 잔액을 닥닥 긁어 만든 돈이라도 괜찮겠냐며 보냈지만 감감무소식에 1년을 끙끙 앓았다고. 용기 내어 뒤늦게 적립금으로나마 돌려받은 금액을 쓰려고 하니 폐업 문자를 받았다고.


임금이 체불되고 직장을 잃게 된 사람과 선결제금을 잃은 사람 중 누가 더 딱한가. Y와 나는 어떤 관계였던가. 영업 종료 한 달 전, 돌려받은 적립금을 개시도 안 한 내게 다른 종류의 선불권 결제를 권한 Y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


주인 없는 매장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 머릿속이 상념으로 얽혀있는 것을 디자이너는 이해했던 걸까. 그녀는 내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위로가 이것이라는 듯, 평소보다 더 섬세한 손놀림으로 내 머리를 다듬어주고 있었다. 자신도 속이 쓰릴 텐데 말이다. 무상으로 일하는 그녀에게 머리를 맡긴 나는 공손하고도 불편한 자세로 서비스를 받았다. 젖은 내 머리를 휘리릭 말리고 이어서 브러시로 모양을 잡아주려는 그녀에게 괜찮다고 사양하며 매장을 나섰다. 밤이 깊었으니 어차피 집에 가서 누우면 납작해질 머리였다.


헛헛한 마음으로 귀가하는데 문득 2년 전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 오늘처럼 불현듯 이별이 찾아올지 모르겠다고. 그럼에도 나는 내 삶의 한 부분을 내어주며, 애써 외면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 이별의 가능성을... 어쩌면 그것은 인연을 이어가고픈 간절한 바람이 나 자신을 속이게 만들고, 아득하지만 옳았던 직감을 잊게 만든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날의 희미했던 짐작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는 정말 헤어질 때가 되었다는 것을.


keyword
작가의 이전글헤어질 결심 - part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