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하리만치 닮은 사람

닮아가는 당신

작년 늦가을, 우리 아이를 만난 지 반년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그날도 여느 날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한 하루였다.


포근하게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나의 퇴근길의 벗처럼 반겨주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지하철 개찰구를 나와 집으로 걸음을 옮기던 중


귀에 꽂아 넣은 이어폰 사이로 노래 한곡이 흘러나왔다.


'김진호의 가족사진'


나는 원래 계절에 큰 감흥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열려 있었던 것 같다.


별 다른 감정 없이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었다.


그렇게 언덕길을 터벅터벅 올라갈 때 즈음에 한 구절이 귀가 아닌 가슴에 박혔다.


'아빠를 닮아있네'


그 가사를 듣자마자 언덕길 중간 어딘가에 주저앉아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가난을 질병처럼 여기며 주변을 둘러볼 겨를도 없이 달려왔던 나의 아버지.


가난을 대물림 하지 않겠노라. 이 가난은 나의 대에서 끊어내겠노라.


한잔 술에 매일 같이 외치던 나의 아버지.


어렸을 적의 나는 그런 아버지가 몹시도 원망스러웠다.


가족외식을 한다며 신나서 떠들던 친구.


생일이라며 내가 가지고 싶던 게임기를 자랑하던 친구.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하굣길에 우산을 들고 있는 아빠에게 달려가는 친구.


나의 라이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돈이었다.


이기고 싶은 존재. 무너트리고 싶은 존재.


그렇게 나는 성인이 되고,


나의 일을 하고,


나의 가정을 꾸리고,


나의 아이가 태어났을 때도


돈 때문에 내가 지키고 싶은 모든 사람들에 상처를 주지 않겠노라.


난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노라 진심으로 다짐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별 다를 일 없던 가을날의 오후 퇴근길


'아빠를 닮아있네'라는 노래 한 구절에 세상 무너지듯 울고 또 울었다.


나도 한 아이의 아빠가 되어서였던 걸까.


그래서 하필이면 그 노래 구절이 가슴에 박혔던 걸까.


자식을,


사랑하는 사람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아버지에겐 돈이었던 거였음을 왜 이렇게 늦게 알았을까.


나의 아버지는 그 방법밖에 몰랐던 거였다.


세상에서 가장 외로웠을 사람.


그 무거운 책임감 하나로 가족을 먹여 살렸던 것임을


왜 하필 그날에서야 알았을까.


아버지니까 나의 부모니까 당연히 그래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근데 나도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보니 알게 되었다.


당연한 희생. 당연한 고통. 당연한 인내는 세상 어디에도 없단 것을.


그때의 아버지는 지금의 나보다 한참이나 어린 스물다섯 남짓 철없던 청년이었다.


아버지도 아버지가 처음이었을 텐데 얼마나 무섭고 힘들었을까.


쉬운 수학문제처럼 계산해서 나오는 답이 아닌 하루하루를 어떻게 버텼을까.


얼마나 많은 좌절과 현실이 그 어리고 영글지 않은 그 아이를 찢어놓고 부딪히게 했을까.


아마도 그 모든 시련들을 버티게 해 준 것은 가족이었을 거란 걸.


난 아직 그 태산같이 넓고 든든한 방파제 같은 아빠가 아닐 것이다.


나는 아직, 그 모진 세월을 이겨본 적 없는


그저 작고 흔한 돌무더기일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괜찮다.


난 지독하리만치 아빠를 닮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