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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영 Oct 16. 2024

[소설] 이루다 5  오래 상하면 곪고 썩지

태어나 그렇게 큰 차는 처음 보았다.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큼직하고 두꺼운 바퀴가 강철로 만든 차체를 떠받치고 있는 검은색 수송차였다. 수백 명의 사람을 거뜬하게 싣고도 남을 크기에 아이들은 압도되었다. 두꺼운 차제는 비위생적인 외부 환경을 완벽하게 차단하고 집안과 비슷한 실내 분위기를 조성해 아이들의 안전을 책임진다고 했다. 


수송차 뒷문과 아이들이 나오는 건물 사이에는 간이 터널이 마련되었다. 시에서는 아이들을 위해 터널을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 주었다. 연약한 피부를 보호하면서도 고향의 마지막을 볼 수 있도록 고안한 것이라니, 파키오의 배려는 이렇듯 세심했다.

유리 터널을 걸으면서 건네다 본 파트리아는 지금껏 본 중 가장 아름다웠다. 병원에 올 때마다 통과하는 출입구 반대편에 있는 입구에서부터 탄탄하게 깔린 포장도로 끝에는 지평선이 보였고, 저녁 어스름이 지는 하늘에는 흐린 달이 떠 있었다. 사방이 어두워지고 있었지만 밝고 환한 가로등이 일정한 간격으로 줄지어서 떠날 길을 환히 배웅하고 있었다. 


바짝 긴장하며 수송차에 오른 아이들은 대개 얼이 빠져 있거나, 연신 흘러내리는 땀을 닦거나, 손가락을 쉴 새 없이 움직이거나, 안내자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해 몇 번이고 되묻기도 했다.

여러 도시에서 모인 아이들이 모두 수송차에 오르자 안내자는 같은 시에서 온 끼리끼리 마주 보고 앉게 했다. 곧이어 안전벨트가 내려와 아이들의 어깨와 허리를 단단히 붙들어 주었다.

서서히 운명의 수레바퀴가 천천히 구르기 시작했다. 육중한 바퀴 때문인지, 매끄러운 도로 덕분인지 작은 진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드디어, 출발이다. 


가장 구석 자리에 앉은 루다는 차가운 벽에 머리를 기대어 눈을 감았다. 아니꼬운 눈빛으로 쳐다보는 얼굴을 가까이 마주하는 것은 그리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 조금씩 긴장이 풀린 아이들은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화제는 단연 메디움이었다. 저마다 교육 영상에서 본 것부터 부모나 조부모에게서 들은 이야기, 떠돌아다니는 유언비어까지 하나씩 꺼냈다. 그중에서 가장 아이들의 관심과 상상력을 자극한 것은 아이돌이란 존재였다.


“아이돌?”

“응. 정통 메디움인만 할 수 있는 거래. 그러니까 인공 인간말야.”

“나도 들었어. 노래라고 했나, 음악이라고 했나. 아무튼 그런 게 있는데 그걸 부른대.”

“그게 뭔지 한번 보고 싶다. 어떤 걸까? 신나는 걸까? 아님 슬픈 걸까?”

“나 그거 뭔지 알 것도 같아. 왜 다들 ‘어제’에서 보지 않았나? 되게 큰 장소에서 예쁘거나 잘생긴 애들이 움직이는 거, 사람들은 무슨 빛이 나는 걸 들고서 막 좋아하는 그런 거 본 거 같아.”

“아 맞아, 나두 그런 거 봤어. 메디움에 가면 그런 것도 볼 수 있겠지? 정말 떨린다.”

“뭐… 들어볼 수는 있겠지? 아마 볼 수 있는 게 허락되면 큰 화면 같은 걸로도 볼 수 있을 거 같아.”

“나는 직접 보고 싶은데……. 정말 환상적일 거야.”


“음… 장담컨대, 너흰 못 가. 그런 곳에.”

“어째서?”

“너희의 속성이 파트리아 사람인 건 변하지 않으니까. 아무리 메디움에 살아도 말야.”

메디움을 경유해야 해서 함께 탄 샌이 설명했다. 아이들의 시선이 영리하고 아름다운 샌에게 쏠렸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바라는 눈빛들이었다. 샌이 주위를 한번 살피더니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완벽한 시스템. 다들 알고 있잖아. 모든 규칙은 간단해. 메디움은 파키오인이 쓸 것을 생산하고, 파트리아는 파키오인이 입을 스킨을 제공하고, 파키오인은 그 모든 것을 쓴다. 아침에 시장님이 하신 연설을 제대로 들었다면, 파악해야지.”

샌은 한심하다는 듯 나무랐다. 그렇지만 핀잔을 듣는 그 누구도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이제 고귀한 파키오인이 될 존재였으니까. 

“와~샌은 좋겠다. 파키오인이 되는 거잖아. 그럼 아이돌 볼 수 있겠다아!”


샌 옆에 앉은 여자애가 탄성을 지르며 말하자, 주변 아이들도 덩달아 고개를 끄덕였다. 샌은 기가 찼다. 생각이란 걸 할 줄 모르는 바보들에게 괜히 말을 꺼냈다.

“내가 아까 뭐랬지? 메디움에 가도 파트리아 속성은 안 변한다고 했잖아. 그럼 파키오에 가는 나는 어떨까?”

잘난 체하는 샌의 질문에 아이들은 대답하기 주저했다. 그때 저쪽 구석에서 또렷한 대답이 들렸다.


“안 변해.”


루다였다. 아이들은 일제히 루다를 쏘아보았다. 

“루다, 말 조심해. 샌은 존귀한 파키오인이 될 분이라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니? 정말 흉측하다. 얼굴만 흉측한 게 아니라 속도 그렇네.”

“떨어졌다고 심술부리는 거야. 안 그래?”

“근데 그게 당연한 거 아니야? 다들 이상했잖아. 어떻게 저렇게 못생긴 애가 매번 일등을 해? 쟤를 사준 부인 파워가 세긴 엄청 셌나 봐.”

“그 댁 기울어간다는 소문이 있어. 그래서 이번엔 공정하게 심사해서 샌이 된 거지.”

루다도 곧 후회가 밀려왔다. 

‘가만히 있으면 될 걸, 왜 나서서…….’


아이들의 말소리가 점점 커지자 샌이 수습에 나섰다.

“얘들아, 그만. 루다 말이 맞아. 파키오인과 결혼을 한 후에 몸을 교체해야만 파트리아란 꼬리표를 떼는 거야. 그리고 루다한테 그런 말 좀 그렇다. 오늘 봤잖아. 너희들도 좀 놀라지 않았어? 시장님이 전형적인 파키오인 생김새라는데…….”

“응! 시장님 정말 멋있었지!”

“맞아! 짠 하고 나타날 때 환상적이더라.”

“그래. 근데 루다랑 좀 분위기가 비슷한 거 같아서……”

샌이 말끝을 흐렸다.


“으응? 그럼 루다가 파키오와 연관되었다는 거야?”

“말도 안 돼!”

“그거야 모르지. 이유는 모르지만…. 하지만 비슷해 보이는 건 확실하니까. 루다를 모욕하면 시장님을 모욕하는 거잖아. 모욕죄로 잡혀가기 싫으면 입조심 하자.”

샌은 통쾌했다. 적당히 파장도 일으키고 루다의 속도 긁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마음에 의심을 뿌린 것이 만족스러웠다. 

“저기, 누가 오는데?”

루다 맞은편에서 이 상황을 조용히, 웃음 지으며, 지켜만 보고 있던 남자애가 상황을 빠르게 정리했다. 아이들은 곧 얌전해졌지만,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수송차가 멈추었다. 안전벨트가 풀리자 소지품을 챙긴 아이들이 일어섰다. 빨리 나가고 싶어서 통로에 나온 아이들도 있었다. 수송차 안은 금세 왁자지껄한 소리가 가득 찼다. 아이들을 제지할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여러분. 잠시 착석해 주세요. 일정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메디움으로 우리를 데려다 줄 트리아스호를 소개합니다. 트리아스호는 파키오, 메디움, 파트리아를 오가며 여러분의 이동을 돕습니다. 메디움은 파트리아에서 약 150,235km 떨어져 있습니다. 메디움도, 파키온도 파트리아와 같이 하루 24시간이니 시차 적응에는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파트리아에서 메디움까지, 트리아스호의 정상 속도로 가면 꼬박 하루가 걸립니다. 

수송차 출구와 연결된 통로를 나가면 파키오가 여러분을 위해 준비한 숙소가 있습니다. 1인 1실로, 나갈 때 여러분의 얼굴을 스캔하면 호실이 뜨니, 잘 보고 안내에 따라 이동해 주세요. 

간단한 식사와 음료를 방에 마련해 두었습니다. 식사 후 일찍 취침합니다. 내일 7시에 트리아스호에 탑승하여 9시에 출발할 예정입니다. 모레 아침은 메디움에서 맞이하게 됩니다. 6시 50분까지 로비로 모여주세요. 1분이라도 늦는 사람은 메디움에 갈 수 없습니다. 그러면 안내에 따라 출구와 가까운 좌석에 앉은 팀부터 일어납니다.”

수송차의 안내 목소리는 다소 엄격했다. 아이들은 지시대로 출구와 가까운 쪽부터 일어나 차례차례 숙소로 향했다.



루다가 방 호수를 확인하고 막 출구를 나왔을 때였다. 누군가 루다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돌아보니 마주 앉아 있던 남자애였다. 하얀 피부에 동글동글한 얼굴, 웃을 때 반달로 접히는 눈이 인상적인 아이였다.

“안녕, 뒤에서 보니까 바로 옆방이라서. 같이 갈까? 나는 백구야. 오늘 성인식 때 너랑 같이 입장한 사람.”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니 루다도 인사를 안 할 수가 없었다.


“안녕. 나는 루다야. 이루다.” 


“와, 너 목소리 예쁘다. 목소리가 예쁜 이루다, 반가워. 아까 깜짝 놀랐잖아. 나는 아침부터 네 옆에 계속 있었는데, 한마디도 안 해서 말을 못 하나 했어.

애들 말 신경 쓰지 마. 뭐… 별로 신경 쓰는 거 같아 보이지는 않지만. 사실 아까 반했지 뭐야. 그 상황에서 눈 하나 깜짝 않고, 표정 하나 바뀌지 않는 거 보고 말이야. 역시 강적이다, 생각했어. 어떻게 그렇게 무표정할 수 있지? 싶더라. 

그래서 더 독하게 공격하는지도 몰라. 네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 싶은데, 어떤 공격을 해도 견고하니까 심술이 나는 거지. 원래 인간이 그렇거든. 자기가 가지지 못한 것에 욕심을 내. 남다른 것도 꼴 보기 싫어하지. 남다른 것이 생존 무기가 되면 더더욱.

내가 크게 다친 적이 있거든? 팔에 상처가 장난 아니었지. 피부가 생명인데 팔에서 피가 나고 까지고 진물 나고 난리도 아니었어. 병원에 가니까 두 가지 방법이 있대. 속부터 천천히 치료하는 방법, 새살이 돋게 하는 거지. 두 번째는 겉부터 멀쩡하게 하는 방법. 근데 나는 삼일 후가 스캔하는 날이었어. 속을 돌보고 새살이 돋게 할 시간 따위 없잖아. 겉부터 해달라고 했지. 

너 상피라고 알아? 우리 동네에 돌팔이 의사가 있는데 그 돌팔이 말로는 우리 피부는 표피, 진피, 피하지방층 이렇게 있는데, 스캔을 뜨는 건 진피 까지래. 그 아래는 솔직히 필요 있겠어? 그래서 표면만 깨끗하게 하는 시술을 긴급하게 받았어. 나중에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


루다는 계단을 올라가고, 복도 입구에서부터 모퉁이를 돌 때까지 쉴 새 없이 말하는 백구가 신기했다. 오늘 처음 봤는데 원래 알고 있었던 사이처럼 이야기하는 친화력에 감탄했고, 어쩐지 앞으로도 또 만나게 될 것 같아 염려스러웠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아주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백구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너 지금, 당황했지. 앞담, 뒷담 하는 녀셕들은 무대응 하면 되는데, 저런 녀석은 어떻게 떨궈야 하나 하고 말야.”

루다가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백구는 고개를 저으면서도 마구 흔들리는 눈동자를 유심히 내려봤다. 

‘생각보다 쉬운 녀석이군.’


“암튼, 네가 궁금해하는 것 같으니 말해 줄게. 어떻게 되었냐면, 스캔은 무사히 잘 떴지. 하지만 대가는 컸어. 안으로 무자비하게 곪았거든. 벌써 왔네? 다음 이야기 궁금하지?”

루다는 사람을 홀리는 눈웃음을 보지 않으려 애썼다. 지금 넘어가면 발목이 잡힐 것만 같았다. 싫은 건 아니지만 옆에 있으면 저 말발에 자기도 모르게 술술 내줄 것만 같았다. 그런 건 익숙하지 않았다.

“자, 다음 이야기가 궁금한 것 같으니까. 우리 친구 하자.”


“친구?”

점점 곤란해하는 루다를 보고 백구는 싱긋 웃었다. 이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런 쪽으로 약하네.’

“아아. 나는 잘 모르겠어. 나랑 왜? 넌 친구 많을 거 같은데.”

“어? 나 친구 없는데.”

친구 없다는 말을 저렇게 즐겁게 얘기할 수 있는 애가 또 있을까 싶었다. 루다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망설이자 백구가 얼른 말을 이었다.

“뭐, 안 믿기겠지만 사실이야. 친구하고 싶은 놈이 없었거든. 그런데 넌 알고 싶어. 뭔가 재밌다. 이유 더 필요해? 자, 친구 된 걸 기념해서 악수하자. 속이 상할 땐 언제든 말해. 뭐, 속도는 강요 안 한다. 내 속도를 따라올 수는 없지. 하지만 오래 상하면 곪고 썩는다는 걸 기억해. 이미 썩은 것 같다만. 상했지만 예쁜 친구! 잘 자라!”

정신을 차려 보니, 백구는 이미 제 방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얼결에 악수까지 하고 약속까지 했다. 루다는 잡혔던 손에 남은 온기가 따스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 낯설고 이상한 감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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