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국 당일 아침.
빠진 건 없나 마지막으로
짐을 살펴보고 있는데,
회사 언니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몇 시 비행기야?"
"그럼 거기서 만나자."
'공항까지 온다고?'
생각지도 못한 말에 미안하고 고마웠다.
퇴사 후
거의 한 달 만에 만났는데도
우리는 어제 본 것처럼 웃고 떠들었다.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며
동고동락했던 그녀들
그때
이제는 ‘언니’ 하기로 한 옛 팀장님께서
한눈에 봐도
고급스럽게 생긴 상자 하나를
나에게 건네주셨다.
"열어봐. 우리가 준비한 거야."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감사패였다.
'감사의 마음을 담아'로 시작하는 글귀 아래,
함께 일했던 교육팀 15명의 이름이
한 명 한 명 새겨져 있었다.
5년간의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갔다.
레스토랑 매니저 시절,
스태프 부족으로
새벽달 보며 퇴근하던 날들.
사내 공모에 합격해
꿈에 그리던 서울 본사 교육팀 첫 출근 하던 날.
혼날 때마다 숨어 울던
나의 비밀 안식처인
7층과 8층 사이 계단실.
빈 강의실에서 혼자 녹화하며
자꾸만 튀어나오는
부산 사투리 억양에 속상했던 밤.
새벽까지 강의 안을 수정하다
KTX 첫차를 타고 지방출장 갔던 날들.
8센티 힐을 신고 온종일 서서 강의해도
'강사님, 멋져요'라고 적힌 설문지를 보면
또다시 8시간쯤은
거뜬히 해낼 수 있을 것만 같던 순간들.
교육생 명패를 칼각으로 세팅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그들을 기다리던 시간들.
내가 좋아서 할 수밖에 없었다.
내 교육에 참석하는 그들의 귀한 시간을
헛되게 할 수 없어
나를 갈아 넣었던 시간들이었다.
지방대, 현장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기회를 준 회사에
적어도 밥값은 해야 할 것 같아
제공된 오피스텔에서
단 하루도 편히 쉬어본 적 없었다.
그렇게 5년의 시간을 하얗게 불태우며
나는 성장할 수 있었고
하루도 최선을 다하지 않은 날이 없었기에
미련 없이
새로운 시작을 결심할 수 있었다.
"자자자! 얼른 사진 찍어.
이거 너네 집으로 보낼 거야.
우리가 부모님 댁으로 보내 놓을게."
그리고 이렇게 멋진 동료들 까지
정말 더할 나위 없었다.
'우리 정여사 님.
감사패 보고 또 혼자 우시겠네'
출국장으로 들어가는 순간까지
손을 흔들며 나를 바라봐 주던 언니들.
마지막으로 크게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순간
온 힘을 다해 참고 있던
눈물이 이내 터져버렸다.
그들의 사랑이
절대로 당연하다고 여기지 않겠다.
내가 이렇게 받아온 것처럼
나 또한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돌아오겠다 다짐했다.
이들의 응원을 한 몸에 받고,
드디어...
드디어 비행기가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