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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폴라리스 Oct 12. 2016

엄마 마음대로, 태평하게 키워도 괜찮아

월간 폴라리스 1월호 '아이의 마음'

글 김연희  
에디터 박은아  
포토그래퍼 강봉형


“양치질 좀 도와줘. 너무 졸려서 못하겠어.”
“소율아, 내년이면 학교 가는데 양치질은 이제 혼자 해야지.”
“(정색하며) 누가 그래? 일곱 살 되면 혼자 양치질 하는 거라고?”
“응? 누가 그런 건 아니고, 보통 그렇다는 거야.”
“그러니까, 그런 말이 어디에서 나오냐고, 어디에 쓰여 있어?”
“그런 건 아니지만… 학교 갈 나이가 되면 보통 혼자 밥 먹고 혼자 씻고 그래.”
“거짓말! 다른 친구들 집에 놀러갔을 때 보니까 엄마들이 양치질하는 거 도와주던데 
왜 다 그런다고 해. 
내가 매일 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피곤하고 힘들 때만 해달라는 건데 그것도 못 도와줘?”


한마디 했다가 백 마디가 돌아왔다. 결국 욕만 먹고 양치질도 ‘해드리면서’ 양치질 논쟁은 일단락이 됐다. 지난해 초에 있었던 일이다. 천생 태평하고 게으른 성격 탓에 그냥 되는대로 키워온 딸은 2016년, 올해로 여덟 살이 됐다. 말이 키우는 거지 특별하게 하는 것도 없다. 어떻게 키워야겠다는 계획도 없다. 어차피 내 인생도 내 마음대로 안 살아지는데 아이를 내 마음대로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이의 생각도 자랄 텐데 미리 계획 세운 대로 될 리도 없다. 내 인생도 있는데 아이한테만 올인할 생각 역시 없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태평육아’다. 의도한 건 아닌데 딸아이도 내가 그런 엄마라는 걸 일찌감치 깨닫고 스스로 자기 살 길을 모색하고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은 나를 ‘위험한 엄마, 나쁜 엄마’라고 놀리곤 한다.


태평하게 키운다는 것이 아이를 그냥 방치한다는 말은 아니다. 내 눈과 가슴은 늘 아이에게 있다. 하지만 머리와 손과 발은 아이로부터 멀리한다. 예를 들어 아이가 넘어졌을 때, 내 눈은 아이에게 가 있다. 넘어진 아이를 보면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넘어지자마자 달려가 아이를 일으키거나 미리 달려가 아이를 보호하는 일은 거의 하지 않는다. 넘어지면 어떻고 피가 좀 나면 어떤가? 어차피 새살이 돋을 텐데. 그래도 립서비스는 해줘야겠지. “많이 아팠지. 도와줄까?” 

나의 양육방식을 잘 아는 사람들은 나를 ‘위험한 엄마, 나쁜 엄마’라고 놀리곤 한다. 아이의 위험, 위생에 너무 안이하다는 것이다. 특히 아이에게 칼을 쥐어주는 걸 보고 놀라는 사람들이 많다. 딸아이가 자기도 요리를 해보겠다고 했을 때, 처음엔 나도 칼은 베일까봐 위험하고, 불은 데일까봐 위험해서 안 된다고 말렸었다. 그래도 해보겠단다. 딸의 의지를 못 이겨 칼의 사용법, 불의 위험성을 알려주고 한번 해보라고 했다. 그런데 깜짝 놀랐다. 매우 집중해서 조심스럽게 칼질을 하는 거다. 워낙 조심하기 때문에 크게 다칠 일도 없었다. 초보운전자가 교통사고 내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다. 칼질을 하다 손을 살짝 베인 일이 있지만, 딱 그 정도의 사고다. 물론 자식 손에 상처 하나 안 나게 키우고 싶은 부모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어날지 어쩔지도 모르는 위험성에 비해 아이들에게 도구 사용의 본능, 요리의 재미는 너무 크다. 그 기쁨을 차마 뺏을 수가 없다. 

나는 아이들이 스스로 뭔가 할 수 있다고 믿는 편이다(그렇게 믿는 게 서로 스트레스 안 받고 여러모로 편하고 좋다). 노는 것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딸의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왔다. 아이들은 만화 동영상을 보여달라고 했고, 나는 거절했다. 그러자 아이들은 심심하다며 투덜거리다가 한번만 보여달라고 사정하다가, 다시는 놀러 오지 않겠다며 온갖 회유와 협박을 동원해 투쟁을 했다. 살짝 흔들렸을 무렵, 아이들이 물었다. “그럼, 어질러도 돼요?” 물론이지. 어차피 깨끗하게 정리된 집은 포기한 지 오래다. 애를 키우면서 정리정돈된 집을 유지하려는 생각은 일찌감치 집어치워야 한다. 아이들은 어지럽히는 걸 좋아하고 나는 치우는 게 힘들다. 그러면 해답은 하나, 그냥 어지러운 채 사는 거다. 

그날 아이들은 우리 집 안의 모든 살림을 다 꺼내 와서 정말 신나게 놀았다. 아이들은 모두 동물이 됐고, 우리 집은 순식간에 동물의 왕국이 됐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얼마나 이야기를 잘 꾸며대던지(창의적이라고 해두자), 그 스토리텔링 실력으로 나중에 나를 얼마나 속여먹을지 기대가 될 정도였다. 그렇게 몇 시간 노는 동안 나는 설거지도 하고, 빨래도 하고, 웬만한 집안일을 다 할 수 있었다. 물론 우리 집은 난장판이 되었지만….


아이를 같은 어린이집에 보내던 엄마가 “방학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푸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매일 내복 차림으로 뒹굴거리며 반찬투정을 하기 일쑤에, TV를 보느라 늦게까지 잠도 안 자며 엄마 속을 뒤집어놓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규칙적인 생활에서 벗어나 무장해제되면 아이들의 엉뚱한 욕구들이 폭발한다. 그 무질서한 에너지를 부모들은 두려워한다. 그래서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기 시작한다. 그 결과가 어떤가? 돈은 돈대로 쓰고 피로만 쌓이는 경우가 태반이다. 나는 앞으로의 사회는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게 중요해질 거라고 생각한다(아니더라도 할 수 없다. 내 마음이다). 아이들도 단체생활의 긴장과 관계에서 오는 피로함에서 잠시 벗어날 필요가 있고, 심심해봐야 꿍꿍이셈도 하고 뭔가를 만들어낸다. 미켈란젤로가 침대에 누워 천장 보기를 즐기지 않았다면,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 벽화는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거창한 예까지 들지 않더라도 게으름은 인간의 본능이다. 어차피 매일 게으르게 지내지도 못하는데 어쩌다 한 번씩 본능적으로 사는 건 허용, 아니 권장해야 하지 않을까? 

양치질 논쟁이 일어난 그날 이후, 양치질이 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고 했다. 대신 치아에 남아 있는 음식물을 먹으러 벌레들이 공격해올 수 있다고 알려주고 그땐 치과에 가서 주사도 맞고 이에 구멍을 뚫어야 한다는 사실만 분명히 해두었다. 물론 씨알도 안 먹혔다. 그렇게 계속 버티더니 결국 충치가 생겨 치과에 다녀왔다. 그 이후에는 스스로 겁을 먹고 양치질을 잘하고 있다. 대충 협상하며 마음 편하게 키워도 큰 일 안 생긴다. 인생 별것 없다. 태평해도 괜찮다.




김연희
결핍이 풍요를 불러온다고 믿으며, 비(非)물질적인 경제, 다양한 공동체에 접속하여 소비가 아닌 관계로 아이를 키우려고 노력한다. 육아 에세이 <태평육아의 탄생> 저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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