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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프링버드 Nov 10. 2020

"놓아주렴, 샐리 제인."

<강물이 흘러가도록>  바버러 쿠니 그림 / 제인 욜런 글




아름답고 평화로운 마을에 작은 강이 흐른다. 강의 이름은 스위프트. 영어 원제 'Letting Swift river go'를 있는 그대로 옮기면 '스위프트 강을 보내주렴' 정도가 아닐까 싶다. 이 강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강을 보내주지 못하는 누군가가 있는 모양이다...

 

이 그림책은 저수지에 수몰된 어떤 마을과 그곳에 살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산으로 첩첩 쌓인 작은 마을이다. 산이 있으면 계곡도 있어서 그곳으로 물이 흘러들며 강을 이룬다. 맑고 깨끗하고 맛있는 강물 주변에는 사람이 모이고 마을이 형성된다. 여기 그림 속의 이런 마을처럼.


길은 집과 교회와 방앗간으로 이어지고, 그 길을 따라 걸어가면 네거리에서 나를 기다리는 친구들이 있었던 마을. 


그림책의 주인공 섈리 제인은 친구들과 도시락을 싸서 공원묘지로 소풍을 가고, 뒤뜰 단풍나무 아래 누워 밤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했다. 그러면 멀리서 기차 소리가 들려왔고 때로는 올빼미 기척도 들리곤 했다. 침실 창가에는 바람이 버드나무 가지를 스치며 불어 들어오고, 겨울이면 아빠가 작은 호수에서 얼음을 잘라왔다. 너무나 평화로운 생활이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고 전격적인 변화가 이 평화로운 삶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멀리 떨어진 대도시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이 일대에 저수지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깨끗하고 맑고 맛 좋은 계곡물을 내주는 대신 돈과 새 집을 받아 이사를 떠난다. 


오랫동안 삶의 터전이 되어왔던 이곳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무덤이 있었는데 아빠는 눈물을 흘리며 무덤을 옮겼다. 가족 같은 오래된 나무와 집과 방앗간과 교회와 학교도 허물어졌다. 친구들과는 잘 가라는 작별 인사조차 나누지 못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어른이 된 샐리 제인은 아빠와 이곳을 찾아와 저수지로 배를 타고 나간다.  아빠는 물 밑을 내려다보며 말씀하셨다. 저기 저 자리에는 시냇가로 이어지는 길이 있었고, 저기에는 교회가, 저기에는 학교가, 저기에는 방앗간이 있었다고. 아빠가 가리키는 물 밑에는 아직 그 길이 있을까? 물고기들이 그 길을 따라 헤엄치려나?


가슴이 아려오는데, 문득 세월 저편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놔주렴, 샐리 제인.


인간 사회의 발전사를 놓고 어둡고 비판적인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다. 실제로 이 책은 퀴빈 마을 역사 연구 협회에서 보관하고 있는 자료를 바탕으로 했다. 하지만 글 작가와 그림 작가는 이야기를 다른 결로 풀어낸다. 한때 너무나 사랑했던 존재가 떠나갔을 때, 사라졌을 때, 떠나보내는 이의 애도에 초점을 맞췄다고 할까. 


지나간 것을 보내주는 일은 어렵다. 내 마음의 일부가 거기에 가 있어서 그것이 떠나가면 내 마음도 아프게 떨어져 나가기 때문이다.  마음이 떨어져 나가 생긴 생채기에서는 피가 흐르고 때로는 오랫동안, 마치 영원처럼 오래, 고통은 이어진다.


내가 놔주어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 샐리 제인에게는 스위프트 강으로 기억되는 고향의 모든 것 혹은 고향에서의 모든 아름다운 기억과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에게는? 


소중한 것을 빼앗겼을 때, 슬픔의 끝에는 때로 격렬한 미움과 분노가 때로 진한 회한이 기다린다... 


그림책의 이야기는 시종일관 차분하지만 '세월이 더 흘러 내가 어른이 되었을 때'까지 스위프트 강은 샐리 제인의 마음에서 내내 흘러나가지 못한 것 같다. 세월의 저편에서 엄마가 강을 놓아주라고 하는 걸 보면 말이다. 그것은 엄마의 목소리처럼 들렸지만 실은 강의 목소리였는지도 모른다. 


나를 놓아줘, 샐리 제인...


어쩐 일인지 강과 관련된 이야기라면 무조건 끌렸다. 지금도 그렇다. 이유가 뭘까, 나조차도 궁금한데 어쩌면 내 안에서도 누군가가, 무엇인가가, 놓아달라고 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지금 내가 할 일은, 마음의 울타리 안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는 그 무엇을 흘러가도록 터주는 것, 손아귀의 힘을 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설사 그 무엇이 무언지 모른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퀴빈 마을의 아름답고 정답던 스위프트 강은 저수지 밑으로 사라졌다. 사라진 것은 사라진 것이다. 그것은 샐리 제인의 일부를 떼어가지고 떠나갔다. 그래서 아프다.  






다시 그림책 표지를 본다. 아이가 다리 위에 서서 작은 강을 내려다보고 있다. 아이 뒤로는 정겨운 마을이 보이고 강가에는 나무가, 언덕에는 가는 붓으로 그린 듯한 부드러운 곡선의 길이 나 있다. 아름다운 풍경이다. 이 풍경은 이제 없다. 이곳으로 가려면 샐리 제인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우리 마음속에도 이처럼 풍경이 하나씩 들어있을 것이다. 현실에는 이미 사라져 버린 풍경. 이 그림책은 수몰 마을의 역사를 한 장 한 장 넘기듯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역사는 샐리 제인의 마음속에서 재현되는 개인적 아픔이기도 하다. 시간을 되감아 그림책의 첫 장에서 마지막 장으로 옛날 그 일을 천천히 회상한다. 애도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기 위해, 놔주어야 할 지점으로 이르기 위해. 그 과정이 샐리 제인에게는 어른이 될 때까지의 긴 세월이 필요했고, 또 누군가에게는 그보다 더 긴 세월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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