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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프링버드 Nov 23. 2020

집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마이클 모퍼고 글 / 케리 하인드먼 그림




한눈에 사람의 눈을 사로잡는 선명한 빨강.

빨간 가슴털이 배경의 흰 눈과 대비를 이루어 그러지 않아도 예쁜 모습이 더 예쁘게 느껴지는 이 새의 이름은 스칸디나비안 울새. 로빈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고도 한다.


크리스마스에 딱 어울리는 색깔이지 싶은데, 아니나 다를까, 울새들 가운데 스칸디나비아 울새는 해마다 스칸디나비아에서부터 영국과 서유럽으로 내려와 겨울을 나는 철새고 그래서 유럽에서는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새로 여겨지는 모양이다. 책 뒷장의 설명에 따르면, 울새가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의 머리에 박힌 가시를 부리로 뽑아내려고 애를 쓰다가 가슴털이 예수님의 피로 젖었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사람들의 상상력을 감동적으로 자극한 것은 새에 대한 사랑이었을까,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었을까? 어쨌거나 해마다 철마다 찾아오는 철새는 가족 같고, 기다려지고, 애틋하고, 기특하다.  


이 그림책은 울새가 추운 북부에서 따뜻한 남쪽 집으로 찾아오는 이야기다. 3일에서 7일 정도가 걸리는 울새의 이동은 목숨을 건 여행이다. 그림책 첫 장에서 울새는 힘차게 날아오른다.


나는 지금 머나먼 여행을 시작하려고 해.

사랑하는 나의 날개야, 날자!


혹시나 '철새 이야기야 뭐 뻔하지.'라고 생각했다면 글의 운율은 '그건 오산이야.'라고 노래한다. 이건 그저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마음을 감싸는 이야기라고.  


혹독한 눈보라가 휘몰아치기 전에,

나를 데려다줘. 나를 집에 데려다줘.

나는 집으로 돌아갈 거야.

내 길을 떠날 거야.


혹시나 '학습을 겸한 그림책이겠군.' 하고 생각했다면 새의 목소리는 우리의 이성과 냉소를 녹인다. 새의 간절함은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껴안는다. 집의 이미지를 마음 저 깊은 곳에서 불러내면서.


앞으로 가야 할 길이 아주 멀.

나는 집으로 돌아갈 거야. 반드시.


울새는 숲을 벗어나 들판 위로, 계곡과 강을 따라, 길을 찾아간다. 길 끝에는 고향이 있고, 고향에는 사랑하는 그녀가 있다. 울새는 최선을 다해 빨리 날아가지만 침착하려고 노력한다. '서두르면 일을 그르칠지도' 모르니까.


우르릉 천둥이 치면서 울새는 폭풍우를 만나고,

매에게 낚아 채이고,

눈보라를 만나고,

개똥지빠귀 떼와 잠시 고마운 동행을 하고,

바다 안갯속을 날다가,

큰 파도에 맞아 내동댕이쳐진다...  


울새는 꿈을 꿨다. 집에서 그녀를 만나는 행복한 꿈을. 문득 깨어나 보니 아직 바다 위. 그러나 마음 착한 선원이 따뜻한 손길로 울새를 보살핀다. 이야기는 당연히 이래야 마땅하다. 크리스마스의 이야기니까. 우리에게는 마음 저 깊은 구석에 내버려졌던 선함을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을 이야기가 필요하니까.


울새는 다시 떠날 준비가 되었고, 고향에, 집에, 무사히 도착한다. 사랑하는 그녀와 소중한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에.


이 이야기는 울새의 독백으로 노래된다. 그래서 내게는 더 내 안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고향과 집이라는 말이 주는 아련한 느낌은 슬픔이기도 하다. ' 나 지금 집에 가.'라고 가만히 되뇌어보면 이런저런 일들과 이런저런 감정들이 떠오르면서 그 속에서 문득 심리적 거리감이 또렷해진다. 지금 내가 있는 곳과 저기 집이 있는 곳 사이의 거리감이.  '나는 집으로 돌아갈 거야. 반드시.' 하고 거듭 다짐하고 다짐하며 힘껏 날갯짓을 하는 울새를 응원하게 되는 까닭이 다 있다.  


다 큰 어른인 나도 가끔씩 집에 가는 꿈을 꾸는 걸 보면 심리적으로는 아직도 타지를 떠돌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그림책을 읽으며 힘을 낸다. "나는 집으로 돌아갈 거야, 반드시." 그렇다면 아이들에게는 이 그림책이 더 큰 힘이 되어주지 않을까. 불안해하고 외로워하는 아이들에게 부디 이 책을 읽어주면 좋겠다!


마이클 모퍼고의 소설을 최근에 읽고 덕분에 알게 된 그림책이었다. 그림책의 글이 이렇게 아름다운 운율을 탈 수 있다는 것을 모퍼고의 글을 읽으며 새삼 느꼈다. 운율이 있는 글이 마음을 더 울리는 건, 우리에게 음악적 본능이 있고 운율이 그 본능을 일깨워서일 거라 짐작한다.


* 알라딘 인터넷 서점에서 이 책을 검색하면 저자 마이클 모퍼고가 이야기 전문을 낭독하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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