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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프링버드 Sep 19. 2023

5. 붉은 행성을 위한 블루스

<코스모스> 5장


<코스모스> 5장은 화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맷 데이먼이 나온 <마션>이라는 영화 보셨나요? 이 영화가 바로 화성을 배경으로 하고 있죠. 화성의 모습이 궁금하시다면 이 영화를 보세요.





화성은 지구와 매우 유사합니다. 지구에서 표면을 관측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행성이고요. 화성의 두 극, 즉 극관은 얼음으로 뒤덮여서 하얗게 보입니다. 하늘은 분홍빛으로 청명하고 흰 구름이 떠있습니다. 거대한 모래 언덕, 광대한 계곡, 강바닥도 있다고 하네요. 그리고 맹렬한 흙먼지 광풍이 붑니다. (영화 <마션>에서 맷 데이먼은 바로 이 모래바람 때문에 동료들로부터 떨어져 화성에 홀로 남겨집니다.) 그리고 붉은 지표면은 계절에 따라 변하고, 하루도 지구처럼 24시간입니다. 이쯤 되면, 누군가 혹은 뭔가가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만도 하지요.


바로 이 생각, 즉 지구 이외의 세상에  생명이 존재할지 모른다는 생각은 인류에게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두려움과 희망입니다. 허버트 조지 웰스가 1897년에 <우주 전쟁>이라는 공상과학소설의 첫 장은 인간의 두려움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우주의 심연 저 너머에서는
짐승과 우리 사이의 격차만큼이나
우리보다 뛰어나고 냉철한 지성을 갖춘
지적 존재들이 우리를 호시탐탐 노리면서
지구를 공격할 확고부동의 계획을
서서히 수립하고 있었다...


하지만 희망은 두려움보다 더 강했고, 그랬기 때문에 지금의 우주과학산업이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겠죠. 책에서 칼 세이건은 퍼시벨 로웰(1855-1916)이라는 사람을 소개합니다. 그는 우주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자신의 관심을 현실적으로 실험해 볼 수 있을 정도로 부자였다고 해요. 그래서 대규모 개인 천문대를 세워서 화성 연구에 일생을 바칩니다.


그와 동시대인인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조반니 스키아파렐리가 로웰의 열정을 더 부추깁니다. 스키아파렐리는 화성 표면에서 직선들이 복잡하게 얽힌 망을 발견했고 여기에 '카날리'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카날리는 이탈리아어로는 '가늘고 길게 파인 홈'을 뜻하는데 영어로는 '운하'로 번역이 됐어요. 홈과 운하는 굉장히 의미가 다르죠. 운하는 그것을 건축한 지적 존재가 있다는 걸 뜻하니까요.



스키아파렐리가 그린 화성 지도. 직선과 곡선으로 표현된 것이 그가 말하는 '카날리'.



로웰은 스키아파렐리의 관측 결과를 이어받아서 자신의 천문대에서 화성 표면을 열심히 관찰합니다. 그리고 표면의 특징을 자세히 스케치한 그림들을 많이 남깁니다. 그는 이 운하, 즉 카날리가 거대한 관개 시설이라고 믿었습니다. 이 믿음은 이것을 건설한 '지성을 갖춘' 오래된 종족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이어졌고요. 많은 천문학자들이 그와 비슷한 관측 여건에서 이 믿음을 뒷받침해 줄 어떤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은 로웰을 지지했다고 해요.


현대는 인공위성이 화성 주위를 돌며 화성을 자세히 정찰할 수 있는 시대지만 아직까지 로웰의 운하망은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 로웰은 똑같은 운하를, 그것도 몇 년씩이나 계속 그릴 수 있었을까요? 칼 세이건은 '좋지 않은 시상 조건에서 인간의 손가 눈과 뇌가 잘못 작동한 종합 결과인 것 같다'고 추정합니다.  


칼 세이건은 1970년대에 미국 나사에서 진행한 화성 탐사 계획에 참여했던 경험을 이 장에서 실감 나게 풀어놓습니다. 바이킹 계획으로 불리는 이 계획은 화성 탐사선인 바이킹 1호와 2호를 화성에 착륙시키는 데 성공합니다. (바이킹은 궤도선과 착륙선으로 구성돼 있어서, 바이킹 우주선이 화성 궤도에 진입하면 각각의 우주선은 착륙선을 화성의 특정 장소에 착륙시키는 것이지요.)


태양 주위를 돌아서 1억 킬로미터의 먼 거리를 가로지르는 1년 반에 걸친 여행의 끝에 바이킹 선단의 궤도선-착륙선 통합체가 화성의 궤도에 진입해서 바이킹 1호의 착륙선이 보낸 영상을 칼 세이건은 '넋을 놓고' 들여다봤다고 해요. 과연 어땠길래요?


이건 외계의 세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의 콜로라도나 애리조나나 네바다 주 등에도 그런  지역들이 있다.
지구상의 어느 풍경과 다를 바가 없는
자연 그대로의 바위 덩이와 모래 언덕들이
무심하게 놓여 있었고
지평선 멀리에는 높은 산이 자리 잡고 있었다.
머리가 반백이 된 광산 채굴꾼이
노새를 끌면서 모래 언덕 뒤에서
나타나기라도 할 것 같았다...
화성의 경관은 황량하고 붉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여기에 생명의 징조는 없었습니다.  화성은 지구보다 태양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기온이 상당히 낮습니다. 대기도 희박한데, 주로 이산화탄소로 이루어져 있고, 대기압이 너무 낮아서 물이 급격히 증발해 버리기 때문에 물은 액체 상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존의 함량도 적어서 살균력이 강한 태양의 자외선이 화성의 표면에까지 거침없이 도달합니다. 그런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생물이 있을까. 여기에 대해 많은 미생물학 실험이 이루어집니다.  


화성의 토양을 가지고 이루어진 실험에서 유기물의 증거는 단 한 건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유기화학 실험의 결과입니다. 즉 화성에서는 어떤 유기 분자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코스코스>를 쓸 당시까지는 그랬다는 것인데 지금은 어떤 상황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책에서 칼 세이건은 화성에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다는 쪽에 강한 희망을 걸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가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로서, 우선 우주에는 탄소가 풍부하다는 사실을 듭니다. 탄소는 대단히 복잡한 분자들을 만들 수 있어서 각종 생명 현상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사람도 탄소와 물을 기초 물질로 하는 생물이죠.


우주는 분자들로 구성된 어떤 물질을 인간 같은 복잡 미묘한 존재로 진화시켰고, 따라서 다른 행성에서도 그런 일을 해냈을 가능성이 있다고 칼 세이건은 추정합니다. 그의 생각에, 원자는 물론이고 분자 수준에서도 많은 세상의 외계 생명들이 단백질이나 핵산과 같은 지구 생물과 동일한 기본 분자들로 이루어져 있을 것인데, 단 조합 방식이 우리에게 낯선 것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문합니다. '화성에서는 생명이 물과 탄소가 아닌 다른 물질로 만들어지지 않을까?' 상당히 신빙성 있게 들리죠.


그런데 이 지점에서 칼 세이건은 한 발 더 나아갑니다.   


-> 화성에 생명이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 화성에 생명이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여러분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이 가정 자체가 지금으로서는 너무 모호해서 그 뒤의 물음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가 아무 의미가 없을 수도 있어요. 지금 이걸 놓고 왈가왈부할 시간에 우주 기술 개발에 더 집중해야겠죠. 그럼에도 이 물음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과학 기술에는 선악의 가치관이 없지만,  그것의 사용은 이 물음에 어떻게 답할 것인가에 달려있으니까요.

 

화성에 생명이 있다면, 칼 세이건은 화성을 화성 생물에게 맡겨야 한다고 말합니다. 인간이 지구를 잘못 오용한 사례를 반성해 본다면 화성을 그렇게 만들 우려가 너무나 높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지요. 저도 적극 동의합니다.


그러나 화성에 생명이 없을 경우, 칼 세이건은 아주 개척가다운 의견을 내놓습니다. 화성을 지구처럼 바꾸자고 하네요.   


화성의 대기 밀도는 한때 높았을 것이고, 화성 극관의 얼음 덩어리 속에 물이 모여 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지구 미생물들 중 일부는 화성에서 생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합니다. 화성의 광대한 얼음 극관에 이를 테면 이끼류의 어두운 색깔의 식물 씨를 뿌려서 극관을 어둡게 변색시키게 되면, 극관은 태양 광선을 효율적으로 흡수해서 얼음이 녹게 되고, 그렇게 되면 화성의 대기가 극적으로 변화하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는 논리적으로 추론해 나갑니다. 이러한 작업을 '지구화'라고 부른다지요.


지구화란, 외계 행성의 환경을 인간이 살기에 적합하도록 바꾸는 것입니다. 과학 기술은 화성의 대기를 바꿔서 대기압을 증가시키고, 물도 액체 상태로 만들어 화성의 적도 지대로 운송하게끔 만들 수 있다고 칼 세이건은 상상합니다. 그의 상상이 지금 얼마나 현실화되어가고 있는지, 과학도가 아닌 나로서는 알 길이 없지만, 우리 인류가 얼마나 똑똑한가요. 언젠가 인류의 상상은 현실이 될지 모릅니다.  


앞서 로웰이라는 사람은 화성에 지적인 존재가 살아서 운하를 건설했다고 믿었습니다. 칼 세이건은 그의 생각을 '정확한 예언'이라고 '믿고 싶다'라고 말합니다. 언젠가 화성의 지구화가 실현된다면 화성에 영구 정착해서 화성인이 된 인간들이 거대한 운하망을 건설하게 될 테니까요. 로웰이 상상한 바로 그 '화성인'은 미래의 인류라는 뜻이죠. 영화 <마션>의 맷 데이먼처럼 말이에요.  


그런데 나는 이 대목에서 칼 세이건에게 동의하지 않습니다. 심정적으로 거부감이 느껴집니다. 아메리카 대륙을 탐험하고 개척했던 인류의 진취성은 순수한 탐험 정신으로만 끝나지 않았어요. 우리가 '나는 집이 있어/없어.'라고 표현하는 것을 'I have/don't have a house.'라고 말하는 이들, HAVE로 너무나 많은 것들을 표현하는 사고방식의 사람들은 화성도 '갖고' 싶어 합니다. 많이 가져서 나쁠 게 있나 싶지만, 인류의 소유욕이 얼마나 끔찍한 비극을 저질렀던가를 떠올려보면, 두렵습니다. 과연 그래도 될까, 묻게 됩니다.


우주 탐험은 순수하게 탐구정신으로만 이루어질 수는 없는지, 순진한 생각을 해봅니다. 우주에서 생명체를 발견한다면 그들과 대화하고 그럼으로써 우리 인류의 정체성을 더 확실히 알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 애초에 칼 세이건이 주장한 바였습니다. 그런데 화성을 보고는 탐을 내네요. '지구화'를 꿈꾸면서요. 화성에 생명이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화성을 그냥 놔두면 안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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