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프링버드 Sep 22. 2023

6. 여행자가 들려준 이야기

<코스모스> 6장





목성의 엄청난 기후 변화에 우리는
마치 최면에 걸린 듯했다.
이 행성은 정말 엄청나게 크다.
아마 태양계의 다른 모든 행성들의 질량을
다 합쳐도
목성 질량의 절반에도 못 미칠 것이다.
산도 없고 계곡도 없고 화산도 없고 강도 없다.
지표면과 대기의 경계도 없는 듯하다.
단지 엄청난 가스와 구름의 층들이 보일 뿐,
표면이라고 부를 만한 곳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가 목성에서 본 모든 것들은
다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무인 우주선인 보이저호가 만약 유인 우주선이었다면 목성을 보고 우주선 함장은 이런 항해일지를 쓰지 않았을까, 칼 세이건은 상상합니다. 이 장의 소제목인 << 여행자가 들려준 이야기>>에서 '여행자'는 태양계 외곽을 연구하기 위해 망망한 우주를 항해하고 있는 보이저 1,2호를 말합니다. 이름 그대로 여행자 VOYAGER입니다.    


소위 '대항해 시대'라고 불린 시대가 있습니다. 본래는 'AGE OF DISCOVERY' 즉 '발견의 시대'를 의역한 것이라네요. 유럽인들이 항해술을 발전시켜 15세기 초중반부터 대서양 방면으로 다양하게 항로를 개척해 나가서 16세기 초반에 정점에 달한 그 시기를 가리킵니다. 유럽-아메리카 항로를 개척하고 인도 항로를 개척하고 세계일주 항해를 하면서 유럽인들은 놀라운 지리상의 발견을 해냅니다. 그 항로를 이용해서 스페인 정복자들은 식민제국을 건설했고, 영국과 네덜란드는 동인도회사를 설립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발판으로 삼아 근대 제국주의시대가 열립니다.  


현대는 인류가 우주의 바다를 항해하기
시작한 시대이다



15,16세기의 범선에는 사람이 타고 있었지만 이 현대판 범선, 보이저호에는 사람이 타고 있지 않습니다. 이 무인 우주선은 그 대신 미국 국립항공우주국 소속 제트추진연구소가 원격으로 완벽하게 제어하고 있습니다. 미지의 세계를 탐험한다는 점에서는 옛날의 범선이나 보이저호나 같지만, 이제는 바다가 아니라 우주를 항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류는 놀랍게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정신의 대담성 면에서는 변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1977년 발사된 보이저 1호와 2호는 태양계의 외곽에 위치한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등을 탐사하는 것이 주 임무이며, 그 뒤로는 태양계를 떠나 별들 사이의 광막한 우주를 영원히 항해할 예정입니다. 다시 말해, 보이저는 돌아오지 않는 영원한 여행을 떠난 겁니다. 칼 세이건의 표현에 따르면, 이 무인우주선은 '기막히게 잘 설계된 고도의 지능형 로봇'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괜히 감정이입이 되네요. 돌아오지 않는 여행자라니요...


보이저호의 항해 경로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우주선은 화성 궤도를 커다란 호를 그리며 통과한 뒤 소행성대를 지나 목성권에 접근합니다. 그리고 목성의 열네 개 남짓한 위성들을 지나간 다음, 목성의 중력을 이용해서 가속력을 얻어 토성을 근거리에서 통과하게 되고, 다시 토성의 중력으로 천왕성을 향해 날아갑니다. 천왕성과 해왕성을 지난 뒤에는 태양계를 떠나 성간을 날아가게 되는 것이죠. 정말 미지의 세계로 말이에요.






발사된 지 약 2년 만에, 엄청난 거리를 항해하여 보이저호는 1979년 목성권으로 진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보이저 1호는 목성과 그 위성들의 사진을 총 18000여 장,  2호 역시 비슷한 양의 사진을 촬영해서 지구로 보내줍니다.






칼 세이건은 단언합니다. 보이저 우주선은 17세기 범선의 직계 후손이며, 그 기원은 네덜란드의 과학자 크리스티안 하위헌스의 과학적 전통과 상상력에 있다고요. 크리스티언 하위헌스가 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이런 말을 했을까요?


그는 17세기 네덜란드에서 태어납니다. 당시는 강력한 스페인 제국의 지배에서 독립한 신생공화국 네덜란드가 항로 개척 사업으로 최고의 번영을 구가하던 시기입니다. 이 작은 공화국은 개방적 사고와 생활양식, 물질적 풍요와 새로운 세계에 대한 탐험과 개척 정신으로 진취성과 활력이 넘쳤으며, 적극적으로 계몽주의 사조를 받아들여 합리적이고 질서 정연하며 창의적인 사회였습니다. 외교 노선은 철저한 평화 정책이었고, 정통에서 벗어난 사조에 대해서도 비교적 관대했습니다. 사상의 자유를 억압받던 유럽 지성인들에게 네덜란드는 문자 그대로 이상향이었다고 해요. 예를 들자면, 지동설을 주장해서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위협을 받았던 이탈리아의 과학자 갈릴레오는 네덜란드의 지원으로 첫 번째 천체 망원경을 만들 수 있었고, 이 망원경을 통해 태양의 흑점, 금성의 위상 변화, 달의 운석공, 목성 주위의 네 위성 등을 관측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크리스티안 하위헌스가 출현합니다. 그는 말했다고 하지요. "전 세계가 나의 고향이며, 과학이 바로 나의 종교다."라고요. 다른 시대, 다른 사회였다면 이런 인물이 나올 수 없었을지 모릅니다. 그는 5미터 길이의 굴절망원경을 제작해서 지구 외의 다른 행성의 크기를 최초로 측정했고, 금성과 화성에 대한 중요한 관찰들을 해냈습니다. 토성의 고리도, 토성의 위성 타이탄을 발견한 것도 이 사람입니다. 그는 우주 저 너머에 다른 태양들이 있을 것이라는 다중 세계의 실재성을 수용했고, 우리의 태양계처럼 미지의 태양계 어느 행성에 생물이 살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보이저호가 보내준 영상에는 목성계 행성들에 대한 엄청난 정보들이 담겨있었습니다.

우선, 목성의 형성과 관련해서 볼까요. 태양계가 성간 공간에 존재하는 가스와 고체 입자로부터 생성된 것처럼 목성도 그런 과정을 거쳐서 형성됐을 것으로 보입니다. 태양 형성에 쓰이고 남은 물질의 일부도 목성의 형성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만약 이런 물질들을 지금보다 수십 배 정도로 많이 끌어모을 수 있었다면 목성은 태양처럼 내부에서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며 별 즉 항성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죠. 그래서 칼 세이건은 말하네요.


거대한 행성 목성은 별이 되려다 실패한
비운의 천체이다.



뭘 그렇게까지 감상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만.

만약 목성이 항성이 될 수 있었다면 지구의 하늘에는 해가 둘이 되었을 겁니다. 이른바 쌍성계입니다. 칼 세이건은 이런 쌍성계가 우주에 많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목성과 그 위성들은 하나의 축소판 태양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책에서는 목성의 위성들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여기서는 생략하고 목성에 대해서만 간단히 요약하려고 합니다.


목성 내부의 압력은 지구 표면 대기압의 300만 배입니다. 이런 조건에서는 수소는 액체 수소로 존재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목성의 내부는 금속성의 액체 수소가 바다를 이루고 있을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짐작합니다. 그러나 내부 한복판에는 암석과 철로 이루어진 핵이 있을 가능성이 있는데, 엄청난 압력 때문에 두꺼운 가스층이 목성 표면을 덮고 있어서 그것을 확인할 방도는 없습니다.  


보이저호는 목성을 지나 토성으로 진입해서 또 많은 영상들을 보내옵니다.

토성은 목성보다 약간 작다는 점만 제외하면 물질 조성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측면에서 목성과 매우 비슷합니다. 토성도 목성처럼 여러 위성들을 거느리고 있는데, 특히 관심을 끄는 위성이 있습니다. 바로 타이탄입니다.


타이탄은 태양계 안에 있는 위성들 중에서 가장 거대하고 상당 수준의 대기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이 타이탄을 관심 있게 보는 이유는 바로 생명의 가능성 때문입니다. 타이탄은 태양에서 멀어서 표면 온도는 섭씨 0도도 안 될 것이 확실한데, 그럼에도 유기 물질이 풍부하고, 태양에서 오는 복사 에너지와 활화산 주위에서 예상되는 고온의 상황 등을 고려한다면, 타이탄에 생명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해요.  


토성의 고리 입자의 주성분은 물로 된 얼음입니다. 토성의 고리 바깥쪽 먼 곳에 크기가 수백 킬로미터에서 거의 화성에 버금가는 타이탄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위성들이 자라는 것에 미루어 추정해 보건대, 태양계에 있는 행성과 위성들은 모두 처음에는 고리를 이루며 돌던 미세 입자들이었다가, 차츰 서로 엉겨 붙으면서 큰 천체로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보이저 호는 태양계의 경계를 넘어서 그 바깥세상으로 날아갑니다. 태양풍의 영향이 미치지 못하는 곳, 성간을 떠도는 양성자와 전자들의 압력이 태양풍의 압력을 능가하는 영역으로 말입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보이저 1호는 태양계를 2012년에, 보이저 2호는 2018년에 벗어났다고 하네요. 그리고 2026년까지는 통신이 유지될 것이라고 해요. 그 이후에는 아마도 영원한 작별을 하게 되겠지요.


칼 세이건은 말합니다. 보이저호가 우리의 은하수 은하의 중심을 한 바퀴 다 돌 때쯤이면 지구에서는 이미 수억 년의 세월이 흘렀을 것이라고. 시간이란 이런 것입니다.


보이저호에는 지구에 대한 정보를 담은 음반이 실려있습니다. 음반에는 지구의 소리와 사진들이 담겨있다지요. 어느 외계 문명인이 있어서, 보이저호가 갖고 가는 메시지를 받게 될까, 상상해 봅니다. 메시지를 받아 들고 그 누군가는 그것을 해독해 보려고 애를 쓰겠지요. 그리고 우리처럼 밤하늘을 바라보겠지만, 상상하는 우리와 달리 그들은 확신을 할 겁니다. 저 멀리, 아주 먼 곳에, 누군가가 있구나, 하고요. 과학은 이렇게 때로는 낭만과 다정히 손을 잡습니다.

 




이전 07화 5. 붉은 행성을 위한 블루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