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7장
7장은 칼 세이건의 어린 시절 회상으로 시작됩니다. 그는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에 무한한 호기심을 느꼈나 봅니다. 하지만 어른들에게 물어보면 "하늘의 불빛이지, 꼬마야."라는 대답밖에 돌아오지 않았다고 해요. 그래서 도서관에 갈 수 있는 나이가 되어 처음으로 본격적인 과학적 지식(!)을 접했을 때 그는 숨이 멎을 정도로 경이로움을 느꼈다지요.
그는 자신의 경험을 인류사에 대입해 봅니다. 원시 인류는 별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그들도 별을 '하늘의 불빛'으로 생각했을까? 칼 세이건은 원시인이 되어 그들의 생각을 추측해 봅니다.
별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언덕이나 나무 위로 올라가도
전혀 가까워지지 않는다...
저것들은 도대체 뭘까?
별은 다른 세상의 사냥꾼들이
밤에 피우는 모닥불이 아닐까...
보츠와나 공화국 칼라하리 사막에 사는 !쿵* 족은 이보다 정교한 생각을 했습니다. 그들이 사는 지역은 위도상으로 은하수가 그들 바로 위에 위치하고 있어요. 그래서 그들은 다른 상상을 했죠.
하늘은 거대한 짐승이고
우리는 그 짐승의 뱃속에서 살고 있다.
저 위의 은하수는 그 짐승의 등뼈다.
그래서 !쿵 족 사람들은 은하수를 '밤의 등뼈'라고 부릅니다. 은하수가 밤을 지탱해 주는 덕분에 어둠은 그들 위로 쏟아지지 않습니다.
모닥불이나 은하수의 등뼈 같은 상상은 시간이 흐르면서 다양한 신관으로 발전합니다. 이제 여러 이름의 신들이 자연의 현상들을 조종하는 주체가 되는 것이죠. 자연은 변덕스럽습니다. 가뭄, 폭풍우, 지진, 화산, 전염병 등등으로 인간은 자연에 휘둘립니다. 그러니 신도 변덕스러울 수밖에요. 약자인 인간은 변덕스럽고 심술궂은 신들을 달래야 합니다. 이런 생각 뒤에는 자연을 통제하고 이해하고자 했던 인간의 심리가 작동하고 있겠죠.
헤라 여신도 그런 신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헤라는 원래 사모스 섬의 수호신이었어요. 그러다가 올림포스 신의 제우스와 결혼하는 여신으로 발전했고, 신혼 첫날밤을 사모스 섬에서 지냈다는 이야기가 만들어집니다. 이때 헤라의 유방에서 젖이 뿜어져 나와 밤하늘에 흐르면서 빛나는 띠가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은하수입니다. 그래서 아직도 은하수는 '젖 길 Milky Way'이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재밌는 상상을 자극하는 이름 아닌가요? 그래서 이런 그림책도 나올 수 있었지 싶습니다.
수많은 세월이 흘러 인류의 지성이 도약하는 시대가 열립니다. 지금부터 2500년 전, 이오니아의 사모스 섬에서 말이지요. 사모스는 여러 섬들로 이루어진 지역으로, 배들의 왕래가 활발한 무역의 중심지였어요.
이오니아에서 혁명적인 사고의 전환이 일어나게 된 데에는 지리적 영향이 있었습니다. 이오니아를 이루는 섬들은 문화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매우 다양한 사회였어요. 그들을 하나로 묶는 강력한 중앙 권력이 없었던 덕분에 이오니아 인들은 지적으로 매우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새롭고 대담한 발상들이 발화하게 됩니다.
고대 이오니아 인들은 우주의 내재적 질서를 생각합니다. 자연 현상에는 모종의 규칙성이 있어서 자연의 비밀을 밝혀낼 수 있다고 말이죠. 그들은 변덕스러운 신들의 비위를 맞추는 대신에 우주의 질서를 믿었어요. 그리고 거기에 '코스모스'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자연에는 반드시 따라야 할 규칙이 있다.
우주의 질서는 훌륭하게 정돈되어 있다.
이오니아는 여러 문명이 교차하는 길목에 있는 까닭에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위대한 문화를 포함해서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의 문화가 공존하게 됩니다. 각종 편견과 다양한 언어와 각양각색의 문화적 사상이 만나고 섞이는 과정에서 온갖 신들도 당연히 이곳에 소집됩니다. 신의 정체성은 유일성과 특별함인데, 어라, 신이 여럿이네, 하는 각성은 신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 의심은 다른 깨달음을 불러오게 되죠.
신을 가정하지 않고 세상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원리와 힘, 자연의 법칙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이오니아에서 과학의 시대를 활짝 열게 됩니다. 인류 사상사에서 위대한 혁명이 기원전 600년~400년, 이오니아에서 일어나게 된 배경입니다. 이 위대한 최초의 과학자들이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이라고 뭉뚱그려서 불리면서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음을 칼 세이건은 안타까워합니다. 그는 단언합니다. 그들의 사고는 현대 과학과 더 잘 어울린다고요.
이오니아의 과학자들이 강하게 영향을 준 시대가 겨우 200~300년밖에 이어지지 못했음은 이오니아의 각성기와 이탈리아의 부흥기(르네상스) 사이에 태어나서 살다 간 수많은 사람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이었다.
칼 세이건이 소개하는 최초의 과학자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밀레투스의 탈레스
밀레투스의 아낙시만드로스
폴리크라테스
테오도루스
히포크라테스
엠페도클레스
데모크리토스
아낙사고라스
피타고라스
아리스타르코스
탈레스- 그는 세상을 만든 주체는 신들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물리적 힘의 결과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주 대담했죠.
아낙시만드로스- 생명은 진흙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했으며, 최초의 동물들은 가시로 덮인 물고기로서, 이들 중 일부가 뭍으로 올라와 변이를 통해 다른 동물로 진화했다고 주장했다네요. (그렇다면 그는 이미 진화론의 밑그림을 그린 게 아닌가요?) 그리고 세상에는 무한히 많은 수의 세계가 있고, 그 세계 모두에 생명이 서식하고 있어서 소멸과 재생을 반복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폴리크라테스와 테오도루스- 두 사람 모두 굉장한 발명가이자 공학자였습니다.
히포크라테스- 모두가 아는 의학자죠. 그가 저술했다고 알려진 <고대 의술에 관하여>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간질을 신이 내린 것으로 여기는 이유는 그 병의 정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모두 신이 내렸다 여긴다면 그 목록에 끝이 있겠는가? 빛나는 지성입니다!
엠페도클레스- 그는 공기도 물질이라는 사실을 물도둑이라고 불리는 시계를 이용해서 증명했습니다.
이 기구에 물을 채워 넣고 엄지손가락으로 대롱 끝을 막으면 물이 흘러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손가락을 떼면 물이 쏟아져 나오죠.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기구 안에 있어서 물을 잡았다가 놓는다고 추론했고, 그 무언가의 정체는 바로 공기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공기는 입자가 너무 작아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물질임에 틀림없다고 그는 생각합니다.
데모크리토스는 원자의 존재를 더 구체화해서, 모든 물체는 원자의 집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가 생각과 감각에 대해서 다분히 유물론적으로 접근했다는 점이에요. 그에 따르면, 우리가 손에 펜을 쥐고 있다는 걸 인식하는 것은 손에 주어지는 물리적이고 기계적인 자극 때문이고, 따라서 생각과 감각은 영혼의 속성이 아니라 물질의 속성입니다.
데모크리토스는 은하수가 수많은 별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별들의 집단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어요. 천문학적 기구 없이 말입니다.
아낙사고라스- 인생의 목적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태양과 달과 하늘에 관한 탐구라고 대답했다고 하네요. 그리고 태양과 별이 불타는 돌덩어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피타고라스- 지금도 수많은 수학 열등자들로부터 원성이 자자한 사람입니다. 지구가 둥글다고 추론한 최초의 인물이고 '코스모스'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했습니다. 그는 우주를 아름다운 조화가 있는 전체라고 주장했으며, 종교의 창시자이기도 하죠. 피타고라스학파는 수학을 통해서 완벽한 현실 즉 신의 영역을 들여다볼 수 있다고 믿었으며, 우리에게 익숙한 세상은 완벽한 세계의 불완전한 투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피타고라스학파는 자연에 수학적인 근본 얼개가 있다고 가르침으로써 과학적 사고를 부흥시켰지만, 과학을 소수 엘리트만의 전유물로 제한하고, 실험을 천시했으며, 신비주의를 용인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실용적 가치를 얕잡아보는 풍조가 고대 사회에 만연하게 됩니다. 이오니아의 자유로운 사상은 그 이후로 죽어버립니다.
과학사를 연구하는 벤저민 패링턴은 고대 과학의 쇠퇴 이유를 노예제도에서 찾습니다. 이오니아의 중상주의적 전통은 과학의 발전을 가져온 원동력이었지만, 그와 동시에 노예 경제가 발전하는 계기가 됩니다. 육체노동은 노예들의 영역이고, 과학 실험도 육체노동으로 취급되면서 과학은 결정적으로 쇠퇴하게 됩니다.
아리스타르코스- 이오니아의 마지막 과학자입니다. 그는 불경하게도 지동설을 주장해서 동시대인들을 분노케 했습니다. 태양이 행성계의 중심이고 모든 행성은 지구가 아니라 태양의 주위를 돈다고 주장한 첫 번째 인물이 아리스타르코스였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해가 뜬다" "해가 진다"라고 말하며 알게 모르게 지구 중심 우주관 속에 살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그러한 우주관으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그 험난한 길을 용감하게 걸은 과학자들 덕분에 우리는 지금 더 정확하게 우주를 알게 됐습니다.
그림을 감상하려면 우리는 뒤로 좀 물러서야 하죠. 어떤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려면, 역시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관조할 거리가 필요합니다. 그림이 크면 클수록, 사건이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그 거리는 비례적으로 더 멀어져야 합니다. 뒤로 물러난다는 것,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비단 과학에만 적용될 말은 아닌 것 같기 때문입니다.
뒤로 물러나는 행위는 겸손 혹은 겸허라는 언어로 번역될 수 있지 않을까요? 과학적 실체를 포함해서, 마음의 실체, 세상의 실체, 심지어 신의 실체까지도 '뒤로 물러남'을 통해서 더 가까이 더 선명하게 더 분명하게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좀 뜬금없는 생각을 해보면서, 칼 세이건의 다음 말로 글을 마무리합니다.
생각해 보라.
태양은 벌겋게 달아오른 돌멩이였고
별들은 천상의 불꽃이었으며
은하수는 밤하늘의 등뼈였다.
이론적 모형을 이렇게 지속적으로 구축하고 또 파기하는 과정을 뒤돌아보면서
우리는 인류의 진정한 용기가
과연 어떠했는가를 실감하게 된다.
아리스타르코스 이래 과학자들의 임무는
우주 드라마의 중심 무대에서부터
우리 자신을
한 발씩 뒤로 물러서게 하는 것이었다...
인류사의 위대한 발견과 대면하게 될 때마다
우주에서 인류의 지위는 점점 강등됐다...
우리 가슴과 가슴 깊숙한 곳에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며 초점이며
지렛대의 받침목이기를 바라는
아쉬움이 아직 숨어있다.
하지만 우리가 정녕 코스모스와
겨루고자 한다면
먼저 겨룸의 상대인 코스모스를
이해해야 한다...
자신의 위상과 위치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주변을 개선할 수 있는
필수 전제이기 때문이다.
* 느낌표! 는 이 소리를 낼 때 앞니 안쪽에 혀를 대면서 /ㅋ/발음을 하라는 것. /딱-쿵/이 가장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