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가 내리는 한 주 동안에도 텃밭에서는 열매가 익고 식물이 자라기를 멈추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려드렸죠. 이번 주에 다시 비가 내린다고 해서 텃밭에서 여름 채소와 열매들을 많이 거둬들였어요.
아래는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얼갈이, 루꼴라, 바질, 상추입니다. 얼갈이는 잔뜩 벌레가 먹어서 겉절이를 하기엔 마땅치 않아 모두 데쳐 냉동실에 넣었네요. 내년까지 된장국으로 끓여 먹을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양입니다. 루꼴라도 크기가 제각기라 몽땅 데쳐서 ’된장+고추장+참기름=환상적 맛‘으로 거듭날 예정이고요. 상추나무는 로메인상추와 합쳐서 새콤달콤한 상추김치를 담갔습니다. 브런치작가 강영진 님께서 상추대가 맛있다고 하셔서 부드러운 부분은 잘라서 같이 썰어 넣었어요^^
바질은 수확을 못했습니다. 세 포기는 죽었고 어린 바질들도 잎이 타고 있네요. 왜 안 되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까맣게 죽은 바질 주변으로 바질향이 여전히 진하게 맴도네요.
그리고 드디어 옥수수 꽃이 폈습니다.
옆 밭에는 2미터도 넘는 옥수수가 자라고 있는데 저희 텃밭은 미니미니한 미니흑찰옥수수입니다! 아주 야무져요.
들깨도 잎을 깔끔하게 따서 말끔해졌습니다.
파에 대해서는 맛있게 먹기만 했지 별로 아는 게 없었는데 이번 기회에 외대파와 조선파, 삼동파를 구분할 만큼은 배웠습니다. 조선파는 흰 대가 짧다더니 정말 그렇더군요.
왼쪽은 마트에서 주로 파는 외대파이고 오른쪽은 조선파예요. 둘 다 아주 짱짱하고 쌩쌩합니다. 어떤 분들은 질기다고 하실지도 모르겠어요. 조선파를 잘 보시면 줄기가 새로 나뉘고 있지요? 조선파는 이렇게 번식을 한다네요.
감자를 수확하고 난 자리에 심은 서리태가 싹을 냈습니다. 까만 콩 말입니다. 2주쯤 자란 모습이에요. 예쁘네요. 서리태란 이름은 서리 내릴 때까지 자란다고 해서 붙었답니다,
애플수박은 초보가 감히 넘볼 수 없는 작물이라고 생각했더랬어요. 모종을 심어놓고도 크게 기대를 안 했는데 잘 자라서 열매가 맺혔네요. 감개무량하고 황송하기까지 합니다. 하나는 너무 일찍 따서 속이 하얀 수박맛을 봤는데, 두 번째 애플수박은 적절할 때 수확을 했습니다.
덜 익지도 않고 너무 익지도 않고 딱 좋게 익었습니다! 큰 수박보다 부드럽고 껍질도 얇네요. 당도도 아주 좋습니다. 수박이 작으니 씨앗도 작아요.
마지막으로 남겨둔 가장 중요한 얘기가 있습니다. 밭에서 잡초를 뽑아서 일부를 한편에 모았더랬어요. 두세 달 정도 쌓아놓았는데 잡초가 부식돼서 퇴비가 됐습니다! 이렇게요!
강낭콩을 수확한 이랑에서 지지대와 잡초를 정리하고, 이 부식토를 뿌린 다음에 호미로 잘 섞어서 이랑 모양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요!
작은 텃밭에서 퇴비를 만들어가며 농사를 짓긴 어려워요. 공간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시험 삼아 조금 해보는 것도 재밌고 살아있는 공부가 되네요. 그야말로 소꿉놀이죠. 하지만 진지하게 자연농법을 실천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인생을 걸고, 나의 시간과 노력을 이 일에 다 내어주겠다는 마음으로요.
인생에서 그런 일을 만나는 사람은 아마도 드물겠죠. 짐작건대 그 '일'은 전폭적 희생과 눈먼 애정과 과감하고 무조건적인 몰입으로 이루어지지 싶어요. 내 의지가 아니라 어떤 큰 힘에 의해 등이 떠밀려서 나아가는 게 아닌가 의심하게 되는 일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본 재밌는 다큐 한 편을 소개할게요. 운명이 새끼손가락으로 삶의 궤도를 살짝 건드린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https://youtube.com/watch?v=A5AIaNSl0IA&si=7zlhjUn04V0iLYZM
참, 올해는 가을감자를 심어볼까 해서 지난번에 수확한 감자에서 자그마한 것들 스무 개를 골라냈습니다. 창문 아래 두고 싹을 내려고 해요.
밭에서 작물들을 수확하니 밭이 공백이 생겨 시원하고 마음도 따라서 시원해집니다. 하지만 가을재배 시기가 곧 오고 그러면 새로 씨앗을 뿌리고 모종을 심어가며 또 뭔가를 열심히 욕심껏 키울테죠. 자라는 걸 보며 뿌듯해할 테고요. 그다음엔 다시 수확을 할 테고, 그러면 또 빈 자리가 생길 테고, 그러면 다시 마음이 홀가분해지고 자유로워질 겁니다. 아, 이 맛이야, 자유와 해방의 맛!
차야지 비움의 기쁨을 아는 것 같습니다. 찬 자리는 빈 자리가 되고 다시 차고 또 비웁니다. 벌써부터 늦가을의 쓸쓸한 빈 밭이 그리워지네요. 그때까지는 초록한 밭을 풍성하게 채워보려고요.
민트와 라벤더, 로즈마리를 작은 컵에 꽂아놓고 코를 파묻습니다. 향기가 한가득, 마음을 두드립니다, 똑똑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