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연이어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잠시 비가 그친 틈을 타서 텃밭을 갔습니다. 일주일이나 비가 내려 텃밭은 아마도 엉망진창이 됐겠지 하면서요.
아직 익지 않은 작은 토마토며 호박, 오이, 고추 열매들은 무르지 않았으면 떨어졌겠거니, 그 상태 그대로 유지됐다면 그나마 최선일 테지, 기대를 완전히 내려놓았는데 말이죠.
질척이는 밭 사잇길을 따라 찾아간 제 밭에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어요.
여리고 가늘었던 호박은 일주일 새에 빗속에서 거대 호박으로 탈바꿈했고,
토마토도 새빨갛게 익었네요. 물이 많아서 토마토가 터졌어요.
파종해 놓은 서리태는 빗물에 쓸려나갔거나 썩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용케 싹을 내밀었지 뭡니까. 신통해라.
게다가 몸 약한 오이가 일주일 사이에 노각을 하나 떡하니 만들어놨네요.
원래 씩씩한 가지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씩씩하게 자랐고, 고추도 잘 매달려 있습니다.
전혀 변하지 않은 열매가 있긴 합니다. 애플수박은 참 더디 크네요. 그래도 떨어질까 노심초사 걱정스럽게 보고 있는데 그러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입니다.
비가 잠시 그친 틈을 타서 강낭콩을 빨리 수확해야 했어요. 강낭콩은 장마철에 꼬투리 안에서 뿌리를 낸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익지 않아도 장마 전에는 수확을 해야 한다더라고요. 그래도 잘 익어서 갈색으로 변한 꼬투리가 꽤 보였습니다. 초록색 꼬투리들은 어쩔 수 없죠, 모두 수확하는 수밖에요.
한 알의 밀알이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말이 성경에 있지요?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속담도 있지요? 강낭콩 한 알이 많은 열매를 맺었고, 강낭콩을 심었더니 강낭콩이 났네요. 성경 말씀과 속담 말씀은 모두 옳습니다!
옥수수는 무럭무럭 자랍니다. 거의 손이 안 가는 효자 작물입니다.
이랑 한 끝에 쪼그리고 앉아서 맞은편 끝을 바라봅니다. 마치 작은 숲 같습니다. 더 과장해서 열대우림이라고 할까요. 붉고 큰 잎사귀의 상추나무들이 우뚝 우뚝 서 있는 사이로 침엽수 로즈마리가 자라고 거대한 초록뱀이 어디선가 스르륵 기어 나올 듯한 분위깁니다. 푸른 쑥갓 나뭇잎들 사이에서 화려한 원색의 열대조류가 낯설고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지도 몰라요. 펄럭이는 옥수수나무들 사이로 어두운 숲길이 이어집니다. 끝도 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깊은 숲길이에요. 저 길로 들어가고 싶은 유혹을 느낍니다.
나를 작게 작게 줄이면 텃밭 식물은 상대적으로 거대해지고, 그 찰나에 현실은 상상으로 비약합니다. 놀라운 착각의 세계가 열리는 거죠. 그 안에서 잠시 머물고 싶은, 아주 짧디 짧은 찰나의, 매혹적인 세계가 저기 저 안에 있습니다.
이번주의 텃밭 기록을 합니다:
7월 6일 : 강낭콩을 수확했다. 쑥갓과 아욱을 모두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