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에서 가장 먼저 심은 작물이 감자입니다. 3월 16일에 주말농장 관리실에서 설봉 씨감자를 1킬로에 5천 원을 사서 심었다고 제 텃밭 공책에 기록돼 있네요. 씨감자란 보통 감자입니다. 특별한 건 아니에요. 감자 중에서 적당한 걸 골라서 싹을 틔우는 거죠.
감자는 싹이 나고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자라고 자라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여러 개의 감자들을 키워냈어요.
세 달하고 일주일이 걸렸네요. 아래 사진에 반쪽을 낸 씨감자가 보이시나요? 아직도 썩질 않았네요. 신기하죠? 채 자라지 못한 아주 작은 감자알들도 보입니다.
감자에게는 긴 여정이었습니다. 감자가 솜털이 보송보송한 조그만 싹을 틔웠던 게 쌀쌀한 초봄이었는데요.
감자는 봄볕 아래서 잎을 열심히 냈습니다. 어떤 건 좀 더디게 어떤 건 좀 빠르게 자기 속도대로 컸습니다.
5월로 접어들며 기온이 따뜻해지고 일조량도 많아지자 연둣빛 감자 잎사귀는 점점 깊은 초록색으로 변해갔습니다. 어리고 귀여운 느낌은 없어지고 억세고 튼튼한 식물로 컸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꽃을 피우더군요. 나는 흰 감자야,라고 선언하면서요. 꿀벌이 찾아옵니다. 감자가 열매를 맺으려면 반드시 수정이 필요한 건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반가운 손님입니다.
어느 시기부턴가 감자가 부쩍 기운이 없어졌어요. 전 뭐가 잘못됐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밭 감자들도 그렇더라고요. 감자가 수확할 시기가 되면 이렇게 시들면서 넘어진다는 걸 알았습니다. 작년에는 그걸 눈치 못 챘네요. 이렇게 작물이 수확을 앞두고 쓰러지는 걸 '도복한다'고 하더라고요. 전문용어를 쓰면 왠지 전문가가 되는 듯한 이 기분...^^
다른 밭을 기웃거리며 이제 '옆사람 따라하기'를 할 준비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감자를 캘 때 저도 따라서 캐는 거죠. 6월 22일 토요일이 바로 그날입니다. 한 이랑만 심었지만 전 야심 찬 착각을 했네요. 이마의 땀을 훔치며 감자를 하루종일 캘 줄 알았거든요. 종이상자를 하나만 가져와서 부족할까 걱정도 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한 시간 만에 뚝딱 끝나버렸네요. 상자는 하나로 충분했습니다. 감자는 쑥쑥 뽑혔고, 땅속의 감자는 호미질 몇 번에 금방 다 나왔어요. 감자를 상자에 담는 건 일도 아니었습니다. 상자를 더 가져왔으면 괜히 짐만 됐을 뻔했어요. 어쨌거나 알이 들쭉날쭉, 보드랍고 촉촉한 미색의 예쁜 감자들이 옹기종기 상자에 모였습니다. 풍년이에요~ 풍년~ 하고 감자들이 노래를 부르네요^^
오전에 캔 감자를 오후에 냄비에 넣어서 쩠습니다. 관리실 아주머니께서 자부심 뿜뿜, 강원도에서 직접 사 왔다며 자랑하시던 감자답게, 껍질이 터지는 포슬포슬한 감자였어요. 소금에 찍어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한 알 감자는 수십 개 감자알이 됐다가 다시 한 알로 돌아갑니다. 감자 한 알은 영원한 감자 한 알입니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드네요, 감자를 키워보니.
주말농장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감자를 캐느라 등을 돌린 채 쪼그리고 앉아서 호미질하던 모습, 짙은 고동색 흙 위에 감자가 동글동글하게 모여 있던 모습이 마치 한 편의 이야기 같습니다. 땅속에 있다가 세상 밖으로 나와 처음으로 햇빛을 쬐는 감자들이 이야기 속에 그대로 담깁니다. 감자의 한살이는 참으로 알차고 성실했습니다!
전 마음이 조급해서 감자를 캐고 난 다음날 빈자리에 들깨 모종도 심고 서리태도 파종했는데요. 일주일만, 아니 단 며칠만이라도 그대로 둘 걸 그랬어요. 감자를 추억하며 잠시 그대로 둘 걸 말이죠... 내년에는 그러겠다고 결심합니다.
이번주의 텃밭 기록을 합니다:
6월 23일: 감자 밭에 들깨 모종을 옮겨 심고 서리태를 파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