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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프링버드 Jun 11. 2024

내 방식이 있다고욧!


3월 말에 강낭콩을 심었습니다. 이제 두 달이 넘어가고 있네요. 강낭콩은 넝쿨로 자라는 품종이 있고 아닌 품종이 있는데요, 텃밭에서는 지지대를 만들어주기가 번거로워서 비넝쿨성 강낭콩을 심었어요. 그런데 어라, 한 그루가 길게 넝쿨을 뻗네요. 얘는 돌연변인가 보다, 생각했어요.

마침 이웃 텃밭 우등생 아저씨가 계시길래 여쭤봤죠.

-얜 좀 이상한데요? 왜 이럴까요?

-넝쿨 강낭콩 심으셨어요?

-아뇨. 얘만 이상하게 이러네요.

-섞여 들어온 거죠, 뭐.

순간 아차 싶었습니다. 꿈에도 그 생각은 못하고 그저 강낭콩이 별종이라는 생각만 했네요. 비넝쿨성 강낭콩 속에서 혼자 넝쿨을 뻗는 강낭콩을 이상하다고만 했던 제 사고방식의 편협함을 반성했습니다. 비넝쿨성 강낭콩들 속에 우연히 섞이게 된 넝쿨성 강낭콩은 자기 방식대로 자라고 있는데 이상하다고 흉을 보다니, 문득 안데르센 동화의 <미운오리새끼>가 생각나네요...


텃밭의 식물들 모두 자기 방식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고추는 이런 모습을 만듭니다.  

Y자로 줄기를 벌리면서 자라요. 이걸 방아다리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방아다리에서 첫 꽃을 피워요. 이걸 따줘야 고추가 열매 맺는 걸 미루고 성장하는 데 영양분을 쓴다고 하네요.  


토마토는 고추와 다릅니다. 줄기를 하나로 쭉 뻗으며 일자로 자라요.

그러면서 주 줄기에서 잎을 내고 가지를 뻗으면서 무성해집니다. 잎이 뻗어 나오는 가지 사이로 새로운 가지가 나오는데 이런 가지들을 곁가지라고 불러요. 곁가지를 요령껏 잘 제거해 줘야 토마토도 영양분을 성장하는 데 집중한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가지는? 고추와 비슷하게 방아다리를 만들며 Y자 모양으로 자랍니다.

그리고 곁가지들을 뻗습니다. 이것들을 어떻게 제거하고 남길까, 궁리를 해봅니다. 올해는 키를 너무 키우지 않고 우산처럼 넓게 퍼지게 만들고 싶습니다.


그럼 딸기는 어떻게 자기 모습을 만들어갈까요? 줄기 번식을 합니다. 이렇게요. 하얗게 뿌리를 내고 있는 게 보이시나요?

올해 한 포기가 내년에는 열 포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제가 작년에 심었던 딸기는 번식을 해서 아주 무성해졌어요. 올해는 텃밭 가장자리를 딸기로 예쁘게 둘러서 내년 봄에는 하얀 딸기꽃으로 텃밭을 장식하고 싶습니다.

같은 딸기라도 설향딸기는 아주 새초롬합니다.

줄기를 잘 뻗지 않는 것 같아요. 작년 설향딸기가 모두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죽어서 올해 새로 네 포기를 사서 심었는데 겨우 한 포기만 살았네요. 꽃이 선홍색으로 아주 예쁜데 올해는 아쉽게도 보지 못했습니다.


바질은 줄기를 잘라주면 Y자로 벌어지는 특징이 있어요.

며칠 전에 잘라준 원줄기에서 줄기가 새로 두 개 나왔습니다. 줄기를 적당히 봐가며 잘라주면 점점 많아지겠죠? 줄기를 자르지 않고 그대로 키우면 스스로 Y자를 만드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궁금하네요.


같은 허브라도 민트는 전혀 다르게 번식합니다. 땅밑에서 뿌리를 뻗어서 싹을 내요. 그 힘이 엄청납니다. 향도 아주 강한데 그걸 견디고 잎사귀를 갉아먹는 벌레도 있더라고요. 입맛도 참 다양하죠.


그렇다면 상추는 어떨까요? 마트에서 사 먹기만 하다가 밭에서 키워보니 상추는 품이 큰 대인배였더라, 말하고 싶습니다. 너풀너풀 잘 자라고 뜯어먹으면 또 잎을 내고 또 잎을 내서 그야말로 '아낌없이 주는' 상춥니다! 웬만해서는 벌레 피해도 없어요. 상추는 시원한 그늘을 좋아하죠. 이쯤 되면 매난국죽 못지않게 수묵화의 소재가 될만하지 않습니까?!

상추는 잎사귀를 중앙에서 계속 올립니다. 그래서 바깥에서 돌아가며 잎사귀를 뜯는데 이렇게 하다 보면 상추가 마치 나무처럼 쭉 커져요. 그래서 독특한 상추나무가 완성됩니다.


새빨간 비트를 한번 볼까요. 다른 무와 달리 비트는 정말 색이 짙습니다.

손질하다 보면 손에 피 칠을 한 것 같아서 섬뜩해요... 비트는 생으로 먹으면 좀 뻑뻑하고 밍밍한데 살짝 찌면 부드럽고 달콤해지더군요. 비트는 왜 이렇게 빨간색을 만들어야 했을까요? 사연이 궁금합니다.  


파도 품종마다 방식이 달라요. 외대파라고 하는 외래종 파는 하나로 곧게 자라고 흰 대가 깁니다. 파의 맛은 흰 대에 있다지요? 마트에서 파는 주로 외대파입니다. 텃밭 하기 전에는 몰랐는데, 재래종 파가 있더군요. 제 밭에는 두 종류의 재래종 파가 자라고 있습니다. 하나는 조선파, 다른 하나는 삼동파입니다. 아래 사진은 집에서 모종을 만들어서 밭에 심은 조선파에요. 외대파와 달리 옆으로 더 벌어지는 편이고 흰 대도 짧아요.


아래는 나무위키에서 가져온 삼동파 사진입니다. 잎 끝에 아기 파가 여러 개 달린 게 보이시나요? 이걸 주아라고 부르더라고요.

삼동파의 주아를 따서 심으면 당당한 파로 자라고, 조선파는 뿌리를 분화해서 여러 개의 파를 만듭니다. 그래서 이 두 품종은 무한 증식을 합니다! 흰 대가 길지 않아서 마트에서는 별로 인기가 없다고 하는데 왠지 전 토종파를 편애하고 싶네요. 파가 맛이 없으면 얼마나 없겠어요?^^


그 밖에도 텃밭에 자라는 모든 식물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자라고 있습니다. 크는 모양도 다르고 생의 주기도 다르고 번식 방법도 다르고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도 다릅니다. 누구는 비료를 많이 달라고 하고 누구는 물이 싫다고 하고 누구는 그늘을 만들어달라고 하고 누구는 일광욕을 사랑합니다. 자연 그대로 놔두면 모두들 자기가 좋아하는 곳에서 자랄 텐데, 인간이 열 평 밭에 모아놓고 이렇게 자라라 저렇게 자라라 요구만 하니 식물들은 얼마나 피곤할까요. 게다가 왜 너는 혼자서 넝쿨을 만드냐고 타박까지 합니다...


텃밭에서 식물들에게 또 한 수 배우는 하루였습니다.

고수가 하얗고 하늘하늘한 꽃을 예쁘게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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