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과연 봄의 여왕입니다. 식물이며 동물이 가장 아름다워지는 시기가 5월인 것 같아요. 완전히 만개하기 전, 신선하고 상큼하고 솜털이 보송한 앳된 봄의 정취가 텃밭에 가득합니다. 꽃들이 이 밭 저 밭에서 화사하게 터지고 있어요. 오늘은 텃밭 수십 개를 보듬은 주말농장에서 발견한 어여쁘고 신기하고 까무러치게 예쁜 꽃들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먼저 이 밭부터 구경해 보실래요?
제가 꿈꾸던 텃밭정원을 먼저 실현하신 분이 계셨어요. 밭주인과 아직 인사를 못 나눴습니다만 기필코 한번 뵈어야겠습니다. 파와 상추와 옥수수와 아욱과 고추가 카모마일, 모란, 구절초와 조화롭게 어우러진 밭이 주말농장 가운데 숨어있어요.
이웃 텃밭의 우등생 왈, 이분은 약도 치지 않으신다는데 파(오른쪽)가 저리도 튼실하네요. 토양이 건강하면 식물은 벌레도 병도 이겨낼 수 있다는 걸 생생하게 증명하고 있습니다.
자, 이제 꽃구경을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요.
이건 무슨 꽃이냐 하면 바로바로 쑥갓 꽃입니다. 쑥갓이 이렇게나 예쁜 꽃을 피웁니다. 작년에 쑥갓을 너무 많이 심어서 이불속을 대신해도 될 만큼 무성했는데요. 그래서 일부는 꽃이 피게 나뒀더랬어요. 올해는 몇개만 심어서 열심히 뜯어먹느라 꽃을 잊고 있었는데 다른 밭에서 핀 예쁜 쑥갓 꽃을 봤네요.
요것은 카모마일입니다. 꽃을 우려서 차로 마시면 마음이 진정되고 잠도 잘 온다는 허브예요.
제 밭에서도 작년의 카모마일이 어딘가 씨를 숨겨놓았는지 조그맣게 싹을 틔우더니 어느새 꽃몽오리가 맺히며 꽃을 벌리고 있어요. 올봄에 밭을 뒤집어엎었는데 어떻게 흙을 뚫고 나왔을까요? 게다가 카모마일 씨앗은 정말 작습니다. 식물이란... 참 대단해요.
이건 돌나물 꽃입니다. 아주 작은 꽃이에요. 보려면 쪼그리고 앉아서 고개를 숙여야 합니다. 겸손해지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꽃입니다. 이 다년생 풀은 낮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조용히 퍼져나가며 무던히 자랍니다. 아주 겸손해요. 그래서 이곳은 꽃과 사람이 겸손하게 만나는 자리입니다.
파꽃입니다. 제 옆밭에서도 또 다른 밭에서도 파꽃이 피었습니다.
파는 키우기가 참 어려워요. 약을 많이 쳐야 하는 것 같습니다. 작년에도 실패했고 올해도 실패 중이에요. 이웃 밭의 우등생이 삼동파 몇 개를 주셔서 심어놨지만 글쎄요, 별로 기대하지 않으려고요. 어려워서 파는 포기!
텃밭의 인기 필수 작물 두 종입니다. 왼쪽은 토마토, 오른쪽은 고추예요. 모두 꽃이 아래를 향하고 있네요. 얘들아, 너희들 얼굴 좀 보자~~
오이도 텃밭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기 작물이지요. 꽃이 정말 예쁜데 호박꽃이랑 비슷하게 생겼어요. 작고 야무지면 오이꽃이고 큰 치맛자락을 너풀거리면 호박꽃입니다. 꽃에 아기 오이가 달린 거 보이시나요?
감자꽃입니다. 권태응의 시를 다시 읽어볼까요?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 보나 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 보나 마나 하얀 감자
왼쪽은 완두콩이고, 오른쪽은 누에콩이라고 해요. 처음 보는 꽃이라서 사진에 담아 검색해 봤지요. 둘 다 콩맛 나는 콩들을 곧 맺겠지요?
이건 강낭콩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콩이에요. 완전히 희지는 않고 사알짝 붉은빛이 도는 강낭콩 꽃은 소박하면서도 우아하고 담백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실물은 기절할 만큼 예쁩니다. 정말 고혹적이에요. 햇빛 아래 빛나는 붉은빛을 보고 있자니 눈이 멀 것만 같노라... 마음은 이미 멀었노라... 무슨 꽃이냐고요? 역시나 강낭콩입니다. 강낭콩 중에 이런 붉디붉은 꽃을 피우는 것도 있네요. 재래종이라고 하는데 이름은 모릅니다. 텃밭정원을 꾸미신 그분 텃밭에서 자라고 있어요.
딸기죠, 딸기! 올해는 설향딸기의 선홍빛 꽃은 보지 못했습니다. 아쉬운 마음을 알았는지 빨간 딸기가 대신 빨갛게 웃어주네요. 딸기는 줄기 번식을 해요. 줄기를 뻗어나가며 자라는 성장세가 워낙 좋아서 주말농장 텃밭들 중에는 딸기로 밭 가장자리를 예쁘게 두른 낭만파들이 군데군데 있습니다. 저도 거기에 끼어보려고 밭 가장자리를 따라 딸기줄기 가닥을 잡아주고 있는데 옆밭주인이 예쁘다고 하셔서 줄기 가닥을 끊어서 드렸습니다. 그래서 제 딸기들 머리가 다시 짧아졌어요.
제가 한번 키워보고 싶은 유채입니다. 유채는 가을에 심어서 겨울을 넘겨 봄까지 키운다고 들었는데요. 나물로도 맛있고 꽃도 이렇게 예쁩니다.
요건 아스파라거스 꽃이고요. 하늘하늘 노랗게 흔들리는 모습이 나름 정취가 있어요. 올해 아스파라거스를 수확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네요. 작년에 뿌리 여러 개가 하나만 남기고 다 죽어서 금이야 옥이야 고이고이 키우고 있습니다.
주말농장에는 6월을 향해 꽃 피울 준비를 하는 식물들이 줄줄이 대기 중입니다. 옥수수는 한 뼘 정도 키가 자랐고 호박꽃도 곧 피겠죠. 부추도 고수도 잘라먹지 않고 그대로 놔두면 꽃대를 올려서 하얗고 작은 꽃을 피울 겁니다. 가지도 감자만큼이나 정직해서 보랏빛 열매를 맺을 보랏빛 꽃을 피우겠지요. 우리가 잡초라고 명명하는 풀들도 열심히 꽃을 피우고 있는 중이고요.
식물들은 소리 없이 흙에서 솟아올라 소리 없이 자라고 소리 없이 꽃을 피우고 소리 없이 열매를 맺고 다시 소리 없이 흙으로 돌아갑니다. 생명은 그렇게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지우며 이어집니다. 지구는 24시간에 한 바퀴를 돌며 빠르게 자전한다지만 우리는 그걸 못 느끼죠. 생명의 순환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그건 거대하고 심오하며 현란한데 우리는 생활인으로 사느라 바빠서 그런 걸 생각할 짬이 없어요. 그래서 식물들이 둔감한 우리에게 꽃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게 아닐까요? 세상 그 어떤 문자로도 옮길 수 없는, 꽃이 보내는 신비한 메시지를, 눈으로 마음으로 고이 받아 지니고 싶은, 찬란한 계절 봄입니다!
이번주의 텃밭 기록을 합니다:
5월 22일: 삼동파를 심었다. 얼갈이배추와 로메인상추 씨를 뿌렸다.
5월 26일 : 3차로 옥수수 씨를 뿌렸다. 아욱과 루꼴라 씨를 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