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말하는거 아녔어요? 똥.
똥 변이 아니라 변명의 변이라고요?
어이고 참... 내가 뭘 잘못했다고 변명을 하래요?
뭐이? 남의 걸 먹었다고요? 배추랑 무요?
아니, 그게 왜 남의 거래? 배추랑 무에 니 거 내 거가 어딨드래요?
뭐이? 주말농장에서 고소를 했다고요?
어머머머... 세상에 살다살다 별일이 다 있네!!!
말세야, 말세....
...흠...
...
내 존경하는 소크라테스쌤도 고소를 당하셨드랬죠. 쌤은 이런 말로 변론을 시작하셨드랬죠.
인간 여러분, 나를 고발한 사람들로 인해 여러분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난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그들로 인해 나 스스로도 거의 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어버릴 지경이었습니다. 그 정도로 그들은 설득력 있게 말하고 있었던 거죠. 하지만 진실에 관한 한은 그들이 사실상 아무것도 말한 게 없다 할 수 있습니다.
쌤은 아무 죄도 없이 억울한 비난을 당하셨는데 나도 딱 그 짝이 났네.
쌤처럼 나도 당당하게 내 생각을 말하지 아니할 수가 없는 운명에 놓여부렀다고요.
자, 봅시다.
인간 여러분, 여러분은 자신이 누구라고 생각하슈?
오늘 여러분은 아침에 일어나 이불 속에서 한참 꾸물대다가 겨우 나왔겠쥬?
커피로 잠을 겨우 깼겠쥬? 머리는 산발을 했겠쥬? 그리고 뭘 했으까나?
밥!!! 밥을 먹지 않았습니껴? 안 먹었다고유? 그럼 어젯밤에는? 먹었쥬? 먹었쥬?
하루 세끼 아닙니껴!
밥은 그냥 먹었슈? 맨밥만 먹진 않았을텐데...
김치 먹었쥬? 배추 김치? 아님, 알타리? 김치 싫어한다고요?
그럼 깍뚜기는 좋아하나? 살짝 달콤하게 만들면 참 맛있다는 소문이 있더만.
여러분은 어떻게든 뭔가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그럼 나는 어떻겠슈? 나도 뭔가를 먹고 살아야 한단 말이쥬.
생명체는 아무 것도 안 먹고 살 수는 없단 말이쥬.
자, 또 봅시다.
그 배추랑 그 무는 어디서 왔을까요? 당연히 밭에서 왔겠쥬.
대한민국 동서남북 밭이란 밭에선 죄다 배추랑 무를 심는 줄 내 다 아는디.
주말농장에서 내가 남의 걸 먹었다고 고솔 했다는데,
배추랑 무가 왼통 주말농장 거라고 하는 말이 과연 맞을까나?
네? 배추 모종 네개에 천원씩 주고 샀다고요?
무는 돈 주고 씨를 사서 뿌렸다고요?
싹이 안 나서 또 돈 주고 모종을 샀다고요? 그건 댁 사정이고...
그럼 흙도 샀슈?
1년 열평 사용료를 냈다고요?
아니, 아니, 그거 말고, 흙 말이유.
지구 흙이 니거 내거 있냐, 하는 원론적인 질문을 내가 하는 거드래요.
원론적 질문을!!!
알았슈, 알았슈, 그럼 흙은 그렇다 치고, 공기는 누구거유? 여러분 거유?
바람이 쉭 부는데 이게 여러분 거유?
어구구, 바람 절로 날아가부렀네... 어쩌까나... 빨리 가서 잡으슈!
또 햇빛은 누구거유? 여러분 거유? 한 포대기 담아서 집에 가져갈 수 있슈?
내가 말이야, 광합성이란 거 모르지 않거등.
배추랑 무가 쪼꼬맸던 시절을 내가 다 봤거등.
걔들이 햇빛이랑 물이랑 공기랑 가지고 저렇게 자란 거 내 다 알거등.
여러분이 물을 줬다고요?
그럼 비 온 거는? 비가 쎤~하게 왔을 때 그 비도 여러분 거드래요?
배추랑 무를 키운 건 자연이 최소한 9할은 된다, 이런 말씀!
난, 딱 그걸 먹었다, 이런 말씀!
자연이 나한테 준 거. 공짜로 준 거.
모종은 안 먹었다, 여러분 거는 안 먹었다, 이런 말씀!
내 친구 톡톡이도 도둑질을 안 했다, 이런 말씀!
근데 말투가 이상하다고요? 이 사투리 저 사투리 섞어쓴다고요? 암시롱.
모종이 전라도에서도 오고, 충청도에서도 오고, 경상도에서도 오고, 강원도에서도 와서 그렇쥬.
그런 말 모르드래요? 먹는 것이 곧 그 사람이다.
전라도 거, 충청도 거, 경상도 거, 강원도 걸 섞어 먹으니까 사투리가 기냥 사통팔딸이야.
"난 서울말도 참 잘합니다. 모종이 서울에서 자랐기 때문이지요."
네? 경기도라고요? 허허... 경기도 사투리는 도대체가 특징이 없어서...
아구구... 근데 내가 한가하게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는데.
내가 아주 바쁘드래요. 배추가 결구를 하는 때거등.
배추 잎사귀가 안으로 겹쳐서 동그렇게 속이 들자뉴. 그걸 결구라고 하는 거여.
배추잎이 딱 닫히기 직전에 그 안에 쏙 들어가면 배추 한 통을 나 혼자 다 먹을 수 있지롱!
텃밭주인이 그걸 어디서 주워듣고는 배추 속을 어찌나 들여다보는지, 원, 들어갈 수가 있어야지.
참 신경 쓰이는 인간이야... 어제 왔으니까 오늘은 안 오겠지...
우리 소크라테스쌤은 의연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씀하시고 운명을 받아들이셨쥬.
이제 나도 쌤을 본받아 당당히 내 갈 길을 가겠드래요.
나는 누군가. 달팽이쥬. 자연의 자식이쥬.
여러분은 누군가. 인간이드래요. 자연의 자식이드래요.
긍께 우리는 형제 아닌교?!
자, 그럼 이것으로 나의 변론을 마치며 마무리는 소크라테스쌤의 말로 갈음하겠습니다.
아니, 벌써 떠날 시간이 되었군요. 나는 죽으러 (아니, 아니, 그건 아니고) 나는 먹으러, 여러분은 살러 (정확히는 먹으러) 갈 시간이. 우리 중 어느 쪽이 더 좋은 일을 향해 가고 있는지는 신 말고는 그 누구에게도 분명치 않습니다.
텃밭주인: 반론할 기회를 주겠다고요? 아, 아, 됐고요, 전 그냥 이 노래나 들을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6ejdyc1u9o
https://www.youtube.com/watch?v=bCMTgsFnc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