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리,
윤동주라는 시인이 쓴 동시 몇 편을 우리 같이 읽었지. 이 시들이 너에게 정서적으로 얼마나 멀게 느껴질지 짐작하면서도, 손에 쏙 들어오는 작고 완벽한 컴퓨터인 스마트폰으로 전 세계의 구석구석을 보고 있는 너에게 동시가 얼마나 싱겁게 느껴질지 알면서도, 너에게 시를 같이 읽자고 했어.
까치가 울어서
산울림
아무도 못 들은
산울림
까치가 들었다
산울림
저 혼자 들었다
산울림
무려 90년 전에 쓴 이 시와 너 사이의 거리는 시간적으로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상상할 수 없이 멀다는 걸 알아. 나도 이 시를 온전히 느끼려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가만히 그리고 천천히 시어를 읊어보아야 하는 걸. 깊은 산,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의 큰 공간, 푸른 산 공기, 초록 숲, 나의 야호 소리가 멀리 퍼져나가서 건너편 산봉우리에서 반사돼 돌아오는 메아리의 늦박자, 고요하고 홀로 있는 순간. 그리고 문득 누군가는 들었을 거라는 알아차림. 눈에 띄지 않는 까치 같은 누구.
눈 위에서
개가
꽃을 그리며
뛰오.
흰 눈 밭에 개가 뛰어가며 남긴 발자국들을 보며 이런 시를 썼어. 똑같은 행동을 개가 뛴다고 하지 않고 꽃을
그린다고 말할 수 있다니.
가자, 가자, 가자,
숲으로 가자.
달 조각을 주으러
숲으로 가자.
그믐밤 반딧불은
부서진 달 조각
가자, 가자, 가자,
숲으로 가자.
달 조각을 주으러
숲으로 가자.
넌 반딧불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했지? 언젠가는 볼 수 있기를. 하지만 달 조각이란 말을 안 것으로도 충분하지. 달이 뜬 밤에 문득 달 조각을 줍는 이 시가 떠올랐으면 좋겠다.
시인은 아름다운 동시를 쓰던 때를 지나 혼란스럽고 힘든 시기를 맞았어. 나라를 뺏기고 민족이 고통을 당하는 시대를 시인은 살아야 했거든. 절망의 시간이었어. 정의가 사라진 사회에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 속에서, 시인은 자책하고 괴로워했어. 그래서 동시가 아닌 어른의 시들을 썼지. 자신이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증언하듯이. 그런데 그 시들이 동시와 똑같이 한결같이 아름다워.
앞으로 어떤 시간들이 너에게 펼쳐질지 생각해 본다. 순탄하고 행복하길 바라. 하지만 걱정도 하지. 힘든 일이 있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해. 더 정확히 말하면, 힘든 일로 네가 너무 괴로워하면 어쩌지, 힘든 일을 잘 넘어가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 그럴 때 시인의 시가 도움이 된다면 좋을 텐데. 그때를 위해서 시 읽는 법을 알려주고 싶었는데 시는 너에게 너무 먼 게 아닐까? 그래도 조금 가까워졌으면 싶은데.
모르는 낯선 길 위에서 시를 표지판 삼아서, 지팡이 삼아서, 우산 삼아서 잘 걸어갔으면 좋겠다. 길이 아름다우면 좋겠고, 아름답지 않아도 어쩌겠니. 그 길이 지나면 다른 길이 나오고 그 길은 또 다른 길로 이어지겠지. 길이 항상 아름다울 순 없겠지만 걸음에 대해서는 달리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아. 길을 걸어가는 마음은 항상 아름다울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시인을 보면 그런 생각을 하게 돼. 그래서 오늘도 꿈꿔보지. 나의 마음만은 아름답기를. 오늘 읽은 윤동주 시인의 동시가 너의 마음에 스며들어 앞으로 언젠가 막다른 길처럼 느껴지는 곳에서 놀랍고도 반갑게 만나는 깨끗한 샘이 되기를 바라.
<샐리를 위한 그림책> 브런치 북을 마무리합니다.
올해 봄, 설레는 마음으로 처음 샐리를 만나서 여름과 가을, 세 철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제 깊은 겨울 속으로 들어가고 있어요. 긴 겨울을 지나면 터널을 빠져나오듯 새 봄을 맞이하겠지요. 샐리는 낯선 어른인 저와 만나는 게 어땠을지 모르지만 저는 행복했습니다. 물론 조금은 부담스러웠어요. 무슨 일이든 마냥 가볍게 가볍게 행해지는 법은 없는 것 같습니다. 특히 사람을 대하는 일에 있어서는요. 많은 나이차가 있는 청소년과 어른, 학생과 선생의 위치에서 샐리도 저도 부담스러운 건 비슷했을 거라고 짐작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조금 편해졌다고 말하고 싶어지네요.
그림책으로 샐리에게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약간이라도 도움이 됐을까. 적어도 재미는 있었을까. 자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림을 좋아하는 샐리가 그림책들에 터뜨린 작은 탄성이 반가웠어요. 무해하고 선량하고 곱고 아름답고 순한 그림책의 정서가 샐리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기를 바랍니다.
자주 의심하고 회의하면서 올린 그림책 글의 긴 여정을 함께 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어른의 세계에서 그림책을 펼쳐드는 건 뭔가 대단한 착오 같기도 하고 퇴행적 행동 같기도 하지만 가끔은 착오와 퇴행 속으로 부러 들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림책을 읽는 일은 어린아이들과 천진하게 놀기, 바다에서 헤엄치기, 수영장에서 잠수하기, 바삭거리는 낙엽 길을 걷기, 눈 내리는 숲으로 들어가기, 춤추기 같은 행동들과 비슷해요. 그들을 동일하게 엮는 공통분모가 있습니다. 자기 자신 안의 가장 맑고 선량한 자리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지요. 또한 그 자리는 두려움이 없는 자리일 것 같습니다. 어린이와 청소년도 그럴 테고 어른도 가끔은 안심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지요. 그런 자리, 그런 시간을 만들어주니 그림책은 참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