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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프링버드 Jan 14. 2021

<그림으로 글쓰기>

유리 슐레비츠 지음




혹시 이 그림책을 보신 분이라면 그림책이 진정한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끼셨을 것 같다. 작가는 유리 슐레비츠, 글과 그림이 다 되는 예술적 재능이 넘치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매우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의 소유자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 있는데, 바로 그가 쓴 그림책 이론서 <그림으로 글쓰기>다.

  




1985년에 발표했는데 2017년에 한글로 번역 출간됐으니 상당히 늦은 감이 없지 않다. 무려 삼십 년이나 뒤에 이 책을 접한 우리는 그 사이 어쩌면 유능한 그림책 작가가 될 수도 있었을 사람들을 무수히 잃었을지 모른다. 참 아쉽다.


그림책 문외한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내 눈에는 이 책이 전혀 삼십 년 전 책 같지 않다. 값진 정보들이 넘치고, 무엇보다 그림을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림책 작가가 되려는 사람에게는 훌륭한 교과서가 될 수 있을 것 같고, 나 같은 그림책 애호가들에게는 그림책을 더 잘 감상할 수 있게 도와주는 유익한 안내서다.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돼 있는데, 1부는 이야기를 쓰는 법에 대해서, 2부는 그림을 구상하는 법에 대해서, 3부는 그림을 그리는 법에 대해서 다룬다.  <그림책의 힘>에서 일본 그림책 편집자 마츠이 다다시는 그림책이란 그림과 글이 동등하게 조화를 이룬 책이라고 했는데, 유리 슐레비츠도 같은 말을 하지만 막상 창작을 할 때는 이미지에 더 기댔던 것 같다:


이야기가 내 머릿속에서 영화처럼 전개되었다. 나는 카메라가 되어 그림들이 전달하는 행위들을 지켜보았다.


독자로서, 특히 유아들이 그림책을 접할 때는 인쇄된 글을 읽는 중간 단계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귀로 이야기를 듣는다는 점, 따라서 시청각적으로 이야기를 전달받는다는 점을 들어서 그는 그림책이 '연극과 영화, 특히 무성영화에 더 가까운 독특한 형식의 예술작품'이라고 보았다.


1부의 글쓰기에서는 좋은 스토리텔링의 일반적 원칙에 더해서 그림책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점들을 상기시켜주는데, 글과 그림이 상호 보완하면서 만들어내는 예술적 정신적 효과를 계산해야 한다는 점과, 독자가 어린아이들이라는 점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점을 특히 강조하는 것 같다. 성인 소설처럼 결말이 모호하게 열려있다거나 비극적으로 끝나는 것은 좋은 동화일 수 없다고 그는 본다:


좋은 동화는 어린이 독자로 하여금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인물들이 그들의 삶을 성공적으로 영위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를 떠날 수 있게 해 준다.


글에는 쉼표와 마침표가 있다. 소리 내어 읽지 않고 눈으로만 읽는데도 우리한테는 숨 돌릴 짬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림책의 경우에는?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기는 행위가 쉼표와 마침표의 역할을 한다:


이야기책에서는 쉼표와 마침표가 휴지기를 결정하지만, 그림책에서는 글자를 읽는 속도와 책장을 넘기는 행위로 만들어지는 침묵의 시간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내게는 1장에서 66~69쪽의 내용이 굉장히 신선했는데, 유리 슐레비츠가 <새벽>을 작업할 때 썼던 초안을 읽을 수 있다. 산문과 운문의 차이랄까, 긴 이야기글이 단순하고 아름다운 그림책의 글로 바뀌는 것은 한마디로 장르의 전환이다.


그림책의 그림 작가들은 단연코 2장과 3장에 관심이 더 많으실 것 같다. 나 같은 사람은 그저 그림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그림의 초안이 바뀌는 과정도 볼 수 있고:




구스타브 도레라는 천재적인 화가의 작품을 보며 탄성을 지르기도 했다:



그림책은 예술작품이다!!!


요즘은 전자책도 많이 나오고 오디오북도 부상하고 있다. 나도 두 방식으로 책을 읽어본 적이 있는데, 전자책은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좋고, 좋은 낭독자가 읽어주는 오디오북은 웬만한 영화와 드라마를 뛰어넘는 감동을 주는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내게는 책의 물리적 감촉이 필요하다. 한 장 한 장 종이를 넘기는 맛, 손과 팔에 전달되는 묵직한 중량감, 종이 냄새까지 책의 구체적 질감을 사랑한다! 책도 그런데 그림책은 더더욱 물리적 형태로 접해야 할 것 같다. 책 읽기는 우리에게 몸의 체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 아이가 장난감을 찾는 이야기를 읽을 때) 독자가 책장을 넘기며 찾는 행위에 동참함으로써, 잃어버린 장난감을 찾는 행위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신체 경험으로 바뀐다. 책장을 넘기는 신체 경험이 글의 의미를 확장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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