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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프링버드 Oct 12. 2020

인간의 본성에 대한 알레고리

<백만 마리 고양이> 완다 가그 그림/글


저작권 등록이 무려 1928년도인 아주 오래된 그림책이다. 이 그림책은 표지를 빼고는 모두 흑백이다. 그런데 책을 다 보고 나면 이상하게도 일부 장면은 붉은 핏빛으로 기억된다. 


완다 가그는 유럽의 옛이야기들을 재구성해서 그림책으로 만든 작가라고 하는데, 이 이야기 역시 민담스럽다. 옛날 옛적 어느 산골에 꼬부랑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고 있었다. 할머니는 예쁜 새끼 고양이를 갖고 싶었다. 애처가 할아버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굵고 짧게 대답했다:


"내가 한 마리 구해다 주리다."


그래서 언덕을 넘고 넘어... 고양이들로 가득 찬 언덕까지 갔는데 웬걸. 그곳에는 수백 마리, 수천 마리, 수백만 마리, 수억 마리(!)도 넘는 고양이들이 있었고 설상가상으로 한 마리 한 마리가 모두 예뻤다. 할아버지는 어쩌다 보니 그 많은 고양이들을 모조리 데려가게 됐다. 왜 그런 때가 있지 않나, 나도 모르게 상황이나 자기 통제력을 상실해서 순식간에 주객이 전도되고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빠져버리는 순간들. 살다 보면 가끔씩 그런 아찔한 순간들을 겪게 된다. 할아버지도 그랬던 것 같다. 욕심 때문에, 아니면 시각적인 아름다움에 현혹되어, 한 순간 판단력을 상실했던 게 아닐까.  


고양이들이 어찌나 많았는지 가는 길에 연못의 물을 모두 마셔버렸고 언덕의 풀을 모두 뜯어먹었다. 고양이 한 마리 한 마리는 예쁘고 사랑스러웠을지 모르나 그들이 모여서 만들어낸 거대한 무리는 무시무시하다. 그들이 지나가는 길은 물과 풀이 사라져 생명이 살 수 없는 황폐한 땅으로 변해버렸으니까.  이윽고 집에 도착한 엄청난 고양이 무리를 보고 할머니는 깜짝 놀랄 수밖에: 


"영감!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고양이 한 마리만 있으면 되는데 이게 다 뭐래요?"


이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삶의 터전은 순식간에 폐허가 되기 직전이었다. 삶의 위기 앞에서 우리를 구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제일 먼저 신을 떠올릴지도 모르겠으나, 그것보다는 보다 인간적인 것, 다시 말해서 인간의 내면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지혜, 인생을 오래 산 사람들에게서 발견하게 되는 그것.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기지를 발휘한다. 할머니는 누가 그곳에 살지를 고양이들에게 결정하게 했고, 할아버지는 그 기준을 제시했다: 


"너희들 가운데서 누가 가장 예쁘지?"


고양이들은 서로 자기가 제일 예쁘다며 싸웠다. 끔찍한 소리를 질러대며 저희들끼리 물어뜯고 할퀴고 잡아먹었다. 모두가 죽음에 이를 때까지. 단 한 마리, 수풀 속에 숨었던 새끼 고양이 한 마리만 그 살육의 현장에서 살아남았다. 


그러고 보면, '누가 가장?'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질문이다. 고대 서양에서 트로이 전쟁도 황금 사과를 놓고 누가 제일 아름다운 여신인지를 따진 데서부터 시작된다. 불화의 여신 에리스는 올림푸스 신들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하자 결혼식장에 황금 사과를 놓고 간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신이 이 사과의 주인이라는 글과 함께 말이다. 헤라와 아프로디테와 아테나가 이 사과를 가지고 싸우자 제우스는 한 양치기 소년에게 그것을 물어보게 했는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신부로 주겠다는 아프로디테의 말에 소년은 사과 주인으로 아프로디테를 선택한다. 그 여자가 헬레네였고 양치기 소년은 트로이의 파리스 왕자였다. 파리스가 헬레네를 납치하여 자기 나라로 데려갔고 그리스 연합국은 트로이로 쳐들어가 십 년에 걸친 전쟁 끝에 트로이를 멸망시킨다. '누가 가장?'은 한 나라를 무너뜨려 그곳의 모든 남자들을 죽였고 그들의 어머니와 아내와 자식들을 모두 노예로 전락시켰다.  


신화와 역사가 버무려진 이 이야기가 아니어도 질투와 경쟁이 인간 심성에 얼마나 뿌리 깊게 박혀있는지 아마 다들 경험으로 알지 싶다. 이를테면, 형제들 간에 누가 공부를 잘하고 누가 예쁘고 누가 성공했는가가 한 자리에서 비교되는 가족 모임은 참 씁쓸하다. 열등한 위치에서 느끼는 가슴 찌릿한 고통은. 부모들 중에는 심지어 부러 질투심을 자극하며 자식들을 경쟁에 몰아넣는 사람도 있다. 결과는, 바싹 마른 연못과 벌거숭이 언덕처럼 황폐해지는 마음밖에. 물론 이런 감정에 예민하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지 않아서 옛날에는 속수무책으로 질투와 경쟁심에 몸부림을 쳤고 지금은 어쨌거나 요령껏 잘 다스려보려 애쓰고 있다. 


민담은 무서운 이야기도 아무렇지 않게 한다. 이 이야기도 죽음에 이르는 끔찍한 싸움을 아무렇지 않게 해 버린다. 수억 마리 고양이들이 흘린 피를 떠올려보라... 우리 안에 내재된 질투와 경쟁심의 알레고리라고 할까.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해치는 날카로운 칼날을 우리 안에 품고 있다. 그러니 모쪼록 마음을 잘 살펴서 조심 조심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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