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사랑의 모습이란 뭘까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을 때에야,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by 다흰

다시 글을 쓰는 데에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중요한 시험을 준비하고 있기도 했고 당신과의 이야기를 쓰려니 별로 쓸 것이 없었다. 나는 꽤나 오랫동안, 어쩌면 지난 글을 쓴 이후로 계속 당신에게 그 어떤 감정도 느끼지 않았다.


내가 이별을 고하자 당신은 "급하니까 본성이 드러나는구나"라고 했었다. 당장 사흘 뒤에 나에게 있어 중요한 시험이 있었는데 그렇게 급박한 시간에 이별을 고한 건 그만큼 당신이 싫다는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저런 방식으로 생각한 당신이 너무나도 기가 찼다. "너에게 남아 있는 이유가 사랑인지 동정인지 모르겠어"라고 말했던 당신이 저렇게 말할 자격이 있는지.


헤어짐을 생각한 건 꽤나 오래되었다. 내가 우울증을 고백하자 이별을 말하던 당신을 마주쳤을 때, 일 년도 더 된 그때 이미 나는 이별을 생각했다. 그리고 이별을 말할 용기를 내는 데에, 발바닥까지 땅을 쳐버린 나의 자존감을 다시 끌어올리는 데에 일 년이 넘게 걸렸다. 그리고 이별의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이 영화였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 Daum 영화

매 년 이맘때면 나는 아카데미 후보로 지명된 영화를 본다. 매 년 수상작을 예견하는 것은 꽤나 재미가 쏠쏠하다. 작년 아카데미에서는 나의 영원한 시리우스, 게리 올드만이 오랫동안 받지 못했던 오스카를 타는 일을 보는 순간이 나에게 가장 중요했다. 하지만 그만큼 인상적이었던 건 바로 티모시 샬라메가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는 사실이었다. 비록 나는 그를 <레이디 버드>를 포함한 소수의 영화에서 접했지만, 그 영화에 대한 궁금증이 컸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그 퀴어 영화를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본 건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다. 평소 퀴어 영화를 좋아했던 나는 당신에게 함께 보자고 권했지만 당신은 동성애 영화를 보고 싶지 않다며 거절했었다. 그때 나는 왜 혼자 보러 가지 않았을까. 그때 봤다면 나는 좀 더 빨리 당신이라는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을 텐데.


ⓒ Daum 영화

시험 3주 전 마침내 그 영화를 보았다. 그 날 따라 유난히 지쳐 빨리 집에 돌아왔고 침대에 누워서 쉬다 넷플릭스를 넘기다 우연히 마주쳤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연달아 두 번이나 보았다.


영화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살면서 그렇게 아름다운 영화를 처음 봤다 싶을 정도로 온 장면이 모두 눈이 부시게 빛났다. 중간중간에 어색하고 부족하다고 느껴졌던 장면이나 카메라 앵글이 있었지만, 그 서툰 장면조차 나에겐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아름다움의 향연으로 둘러싸인 그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바로 아버지와 엘리오가 대화하는 장면이었다.


너희 둘이 있었던 것은 똑똑함 그 자체이기도 하지만 똑똑함과는 아무 상관이 없기도 해. 그는 좋은 사람이었어. 둘 다 서로를 찾았으니 운이 좋은 거다. 왜냐하면 너희 둘은 좋은 사람들이니까.

가장 예상치 못할 때 본성은 교활한 방식으로 우리의 약점을 찾는단다.

지금은 아무 감정도 느끼고 싶지 않을 수도 있어. 평생 느끼지 않고 싶을지도 몰라. 어쩌면 이런 이야기를 내게 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지만 네가 분명히 느꼈던 것을 느껴라.

우린 빨리 치유되려고 자신을 너무 많이 망쳐. 그러다가 30살쯤 되면 파산하는 거지. 그러면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줄 것이 점점 줄어든단다. 하지만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고 아무것도 느끼지 않게 만들다니 그런 낭비가 어디 있니?

어떤 삶을 살든 그건 네 마음이다. 다만 이것만 기억해. 우리 몸과 마음은 단 한 번만 주어진 것이고 너도 모르는 사이 마음이 닳고 닳게 된다는 걸. 몸 같은 경우에는 아무도 쳐다봐 주지 않는 때가 와. 지금은 슬픔과 아픔이 있어. 그걸 없애지 마라. 네가 느꼈던 기쁨도 말이야.


저 시대에 저렇게 똑똑하고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아버지가 있다니. <브로크백 마운틴>, <캐롤>, <글리> 등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사랑을 한다는 줄거리가 주된 내용인 미디어를 주로 접했던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 장면에서 나에겐 이 대사가 더 와 닿았다.


둘이 서로를 찾은 건 행운이었어 너도 좋은 사람이니까
올리버가 저 보다 더 좋은 사람 같아요 저보다 훨씬
올리버는 반대로 말할 걸
그럴 것 같아요


당신은 나에게 자주 물어봤었다. 새벽까지 통화를 할 때면 이런 질문을 하곤 했었다. "나는 너로 인해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으로 바뀐 것 같아. 너는 나로 인해 어떤 식으로 바뀐 것 같아?" 난 단 한 번도 이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부끄러워서 혹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서가 아니라, 나는 당신처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을 만나면서 단 한 번도 나를 좋은 사람으로 본 적이 없다. 나는 당신을 만나면서 나의 최악을, 그리고 내가 보고 싶지 않았던 나의 모습을 보았다.


사랑을 하면 처절해진다. 특히 상대가 나를 떠나는 위기가 찾아온다면 나의 바닥까지 보여주게 된다. 하지만 나의 바닥을 상대방에게 보여주는 것과 내가 나 자신의 최악을 보는 것은 다르다. 나는 나 자신의 최악을 보았다.


ⓒ Daum 영화

얼마 전 친구가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했다. 대학 내내 한 사람을 만나고 헤어진 지 일 년쯤 된 이제야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나는 오랫동안 말하지 못했던 당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친구는 꽤나 놀란 눈치였다. 10년이 넘게 날 봐왔기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었고 내가 얼마나 자존감이 높은지, 자신감에 넘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내가 재작년과 작년에 겪은 일을 들으니 충격적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보기엔 네가 아니라 걔가 자존감이 낮았던 것 같아"


일 년도 훨씬 넘게 지난 일이지만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그때 당신이 왜 그렇게도 나의 자존감을 깎아내렸는지, 왜 나에게 항상 "너는 너 자신에게 왜 그렇게 자신감이 없어?", "너는 자존감이 너무 낮은 것 같아", "너 우울증 있는 거 알고 있었어. 왠지 그럴 것 같더라"라고 했는지. 어쩌면 내가 아니라 당신이 자존감이 낮았을지도 모른다. 당신은 당신의 상처를 나에게 돌렸고 그 화살에 나는 무참히 맞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손 쓸 새도 없이 나는 가라앉았고 나 자신을 최악으로 끌어들였다.


You make me want to be a better person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대사이다. 예전엔 이 영화의 대사를 잘 이해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어렴풋이 느껴지는 듯하다. 어쩌면 당신은 이 대사를 진작에 이해했는지도 모른다. 줄기차게 나에게 이렇게 말했으니까. 나는 이제야 알았다.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 상대방을 만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 Daum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올리버와 엘리오는 상대방을 존중하고 사랑한다. 그 바탕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높은 자존감이 있다. 자존감과 자존심은 다르다. 자존심은 연애를 할 때 상대방을 위해 때로는 내려야 할 필요가 있지만 자존감을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게 상대방을 사랑하는 일이고 더 나아가 나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다. 자존감이 낮다면 상대방을 더욱더 괴롭히게 된다. 하지만 이때 중요한 건, 자존감을 지키는 것은 오로지 나에게 달린 일이라는 점이다. 자존감을 높이거나 낮추는 일은 오로지 나만이 할 수 있다.


한 때 나는 낮은 자존감이 사랑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좀 더 낮게 들어가고 잘해준다면 상대방이 나를 떠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랑을 하면 한 없이 작아졌다. 그러다 망가져버린 나 자신을 발견하고 '이게 아닌데'라고 생각하며 그 잘못된 사랑의 과정에서 빠져나오는 방식이었다. 이번에는 좀 달랐다. 나뿐만 아니라 상대방 역시 낮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었다.


당신으로 인해 바닥을 치고 있는 나 자신의 자존감을 올리는 데에는 일 년이 넘게 걸렸다. 나 자신을 믿고 나 스스로에게 좋은 말을 해주었다. 어쩌면 그 일 년동안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이 사랑이 잘못되었다고 깨달은 후 나는 줄곧 나 자신을 위해 살아왔으니까. 나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당신이 나에게 했던 그 최악의 말을 들은 이후 나는 결심했던 것 같다. 내가 최고의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있을 때 당신과 헤어지기로. 참으로 유치하고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는 생각이 이제야 들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편하다. 나를 갉아먹는 사람 없이 온전히 나 자신으로만 존재하고 있다.


ⓒ Daum 영화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삶을 공유한다는 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이지만 그만큼 위험 부담이 큰 일이다. 그 사랑으로 인해 내가 최고의 사람이 될 수도, 그리고 최악의 사람이 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일생에 있어서 만나는 유일한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오로지 나만이 나의 삶을 결정할 수 있다. 오로지 나만이 나의 자존감을 결정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두 사람이 만나야 좋은 사랑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도 아직 답은 모르지만, 나 자신을 제대로 사랑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올리버가 된다면 엘리오를 만날 수도 있겠지. 그리고 이 영화처럼 찬란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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